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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이문수덕래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李文修德來 辛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0.0001.TXT.0054
이문수덕래에게 답함 신유년(1921)
당신이 지은 〈맹달주 77)론(孟達論)〉에서 "끊임없이 배반하여 불충(不忠)한 사람이니 《통감강목(通鑑綱目)》에서 잘못 살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의리는 엄격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하여 중(中)을 잃고 주자(朱子)의 의도를 깊이 살피지 않은 듯합니다.
군자가 남을 논함에 본디 법도가 있어 그 생애 전체를 논하는 경우가 있고, 전반부만 논하는 경우가 있고, 후반부만 논하는 경우가 있으니 세 경우가 사람의 잘잘못을 가려주지는 못합니다. 맹달의 전반부는 참으로 임금을 배반하여 불충하였다고 해야 하지만 후반부는 마음을 바른 데로 돌려 죽음으로 충성한 점을 허여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전체를 통틀어 논하자면 앞은 욕되었지만 뒤는 충절을 지킨 것이 맞습니다.
지금 당신의 논의에서는 구분함이 없이 개괄하여 '끊임없이 배반하여 불충하였다.[反復不忠]' 4자로 그의 평생을 결단하였으니 사실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불안한 것은 화(禍)를 두려워한 데서 나왔다는 말은 당신의 논의가 옳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바른 데로 돌려 목숨을 걸고 충절을 지킨 마음까지 아울러 의심한다면 그의 마음을 깊이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이 과연 끝까지 화를 두려워 한데서 나왔을 뿐이라면 위(魏)의 임금을 아첨하여 섬겨서 총애를 단단히 받아야 옳고 원수를 제거하여 후환(後患)을 끊으려고 모의해야 옳고 신성(新城)이 오(吳)와 닿았으니 오가 위를 강하게 맞서면 오로 도망가는 것이 또한 옳으니,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화를 피하고자 도모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아쉬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몰래 모의하여 이미 배반한 임금과 피폐해진 촉에 돌아가서 만 번 죽을 상황에서 살길을 찾고자 했겠습니까?
대개 그의 불안한 마음이 화를 두려워한 데서 나왔을지라도 촉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죄를 뉘우친 데서 나왔으니, 죄를 뉘우치는 것은 의리(義理)의 바른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었으므로 성이 함락될 때 목숨을 잃으면서도 절의를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자가 이에 어찌 전날의 죄로 오늘날의 절의를 가려서 《통감강목(通鑑綱目)》에서 포장(褒獎)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주자께서 직접 《통감강목(通鑑綱目)》의 범례(凡例)를 정하면서 "장수가 죽음으로 절의를 지킨 경우 '죽었다.[死之]'라고 한다."라고 하였고, "《통감강목(通鑑綱目)》의 의례(義例)가 정밀합니다.주 78)"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 의도를 깊이 탐구하지 않고 사실을 자세히 구하지 않은 채 "주자께서 이 부분은 혹 잘못 보신 듯하다."라고 한다면 어찌 신중하게 생각하고 스승을 믿는 도리이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당신께 깊이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릇 군자가 남을 책망하는 것은 자기를 책망하는 것과 다릅니다. 자기를 책망하는 경우는 지극한 선(善)에 머물고자 하기 때문에 과오를 매우 섬세하게 살피지만, 남을 책망하는 경우는 이끌어 도(道)에 이르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취할만한 선이 있으면 죄과를 뒤미처 기록하지 않아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더욱 권면하였습니다. 전인(前人)이 만년에 세운 절의가 앞서의 허물을 충분히 덮을 점이 있다면 그 속에 속임수와 반역이 있다고 의심을 품어 마음을 해치고 게다가 후인들에게 권면하는 것을 막아서는 더욱 안 됩니다.
여곤(呂坤)주 79)만 유일하게 "공정한 논의는 율령(律令)보다 엄격하고 공정하게 논의하는 사람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벼슬아치보다 엄격하니, 율령으로 원통한 바는 공정한 논의 덕분에 밝혀지지만 공정한 논의로 원통한 바는 만고에 반안(反案)이 없다. 이 때문에 군자는 경솔히 남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주 80)"라고 하였으니, 이 말을 외울 때마다 남을 논의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를 아울러 보내드리니 밝게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주석 77)맹달
삼국시대 때 장수이다. 처음에는 유장(劉璋) 휘하에 있었다가 유비(劉備)에게 항복하였다. 관우(關羽)가 오나라 손권(孫權)과 전투를 벌이다가 포위되었는데도 성의 수비를 핑계로 구원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비의 원한을 사서 위(魏)에 투항하였다. 위나라에서는 조비가 그를 잘 대우하였지만 그의 사후 입지가 좁아지자 다시 촉에 귀순하려고 난을 일으켰다. 결국 사마의(司馬懿)에게 간파되어 기습을 받고 사망하였다.
주석 78)《통감강목》……정밀합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5 〈답유자징(答劉子澄)〉에 "《강목(綱目)》 역시 약 20권 정도 수정했는데 의례가 더욱 정밀해져서 상하 약 천 여년 동안의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참으로 행적을 숨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79)여곤
원문은 '呂抱'이다. 문맥을 살펴 '抱'를 '坤'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여곤은 자 숙간(叔簡). 호 심오(心吾) 또는 신오(新吾)다. 만력 연간에 진사가 되었으나 국사를 걱정하여 올린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에서 물러나 문하생과 함께 학문을 탐구하고 저술에 힘썼다. 저서에 《신음어(呻吟語)》가 있다.
주석 80)공정한……된다
《신음어(呻吟語)》 권2 〈수신(修身)〉에서 인용하였다.
答李文修德來 辛酉
盛作《孟達論》 謂之"反覆不忠之人, 而以《綱目》爲失照勘者" 義則雖嚴, 恐過嚴失中, 而又不深悉朱子之意也. 君子論人, 自有其法, 有論其全體者焉、有論其前一截者焉、有論其後一截者焉, 三者不可得以相掩也. 孟達之前一截, 固當謂之叛主而不忠也. 後一截則不得不許其反正而死忠也. 統其全體而論之, 則先黷而後貞可也. 今盛論無所區分, 而槪以反復不忠四字, 斷其平生, 則非其實也. 至於其心不自安, 出於畏禍, 則盛論是矣. 然幷與其反正死節之心而疑之, 則未知深得其情否也. 若使其心果始終出於畏禍而已矣, 則諂事魏主以固寵可也. 謀除讐隙以絶後患可也. 新城接吳, 吳强敵魏, 逃之吳, 亦可也. 凡所以圖免禍者, 宜無不至也. 何苦而密謀通書, 歸已背之主、疲弊之蜀, 求一生於萬死之中哉? 蓋其不安之心, 雖出於畏禍, 歸蜀之心, 乃出於悔罪, 悔罪者, 義理之良心也. 惟其有是心也, 故城陷之日, 能殞身而立節也. 朱子於此安得以前日之罪, 掩今日之節 而不褒之於《綱目》也. 朱子親定《綱目》凡例曰: "將帥死節曰死之." 又嘗曰: "《綱目》義例精密." 今不深原其意而詳求其實, 乃曰: "朱子於此, 或失照勘." 則豈謹思信師之道哉? 因此而深有所仰告於高明者. 夫君子之責人也, 與責己不同, 責於己者, 欲其止於至善也, 故省過察惡, 極其纖悉: 責於人者, 欲其引而至道也, 故其人有可取之善, 則不追錄罪過, 使之有以自新而益勸, 至於前人之晩節樹立, 有足以蓋前愆者, 則尤不當致疑逆詐於其間, 以害心術, 重沮後人勸也. 呂抱[坤]獨有言曰: "淸議酷於律令, 淸議之人酷於治獄之吏, 律令所冤, 賴淸議以明之, 淸議所冤, 萬古無反案矣. 是以君子不輕議人." 每誦此言, 未嘗不兢兢乎其論人也. 幷玆奉似, 幸唯亮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