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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양극명에게 답함 경진년(1940)(與楊克明 庚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양극명에게 답함 경진년(1940)
옛날 현자는 난세를 만나면 깊이 은둔하거나 멀리 떠나서 끝내 화를 면했습니다. 예컨대 하복(夏馥)이 임려산(林慮山)에서 나무를 가옥으로 삼은 것과주 47) 신도반(申屠蟠)이 양탕(梁碭)지역에서 자취를 끊은 것주 48) 등입니다. 오늘날이 그런 시절임에도 여전히 뒤처져 있습니다. 다만 그대는 날이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분연히 해냈으니 어찌 그리 용감하신지요? 올 여름 풍우로 그대의 정원에 감과 밤이 크게 손상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이것조차도 한미한 선비의 먹을거리로는 사치라고 여겨서 그것을 덜고자 했는가 하여 웃어봅니다. 나 또한 덕유산과 두류산, 두 산 사이에 뜻을 둔지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한스럽게도 늙어서 이미 농사지을 힘도 없고 자손 또한 따르는 이가 없으니 어찌해야 하는지요? 한갓 간절히 그대를 부러워할 뿐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 또한 선비가 변란에 처하는 것이니 이치를 궁구하고 식견에 전진하여 몸을 완성하고 세상을 선하게 하는 유업(儒業)의 성취를 어찌 잠시라도 잊겠습니까? 바라건대 모름지기 성인의 훈계인 "즉이학문(則以學文)"에서 즉(則)자의 뜻을 체인하여 농사짓고 나무하는 여가에 부지런히 서적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리하여 날로 성실하게 공부하여 얻은 것과 의심나는 것을 풍(風)편에 보여주시어 강론상장(講論相長)의 이익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주석 47)하복(夏馥)……것과
- 하복은 후한 때 사람이다. 영제(靈帝) 때 국정의 잘못을 거침없이 말했다가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환관들의 미움을 사 체포령이 내린다. 이에 성명과 모습을 바꾸고 임려산(林慮山)에 들어가 품팔이꾼이 되어 살다가 죽었다. 《後漢書 卷67 黨錮列傳 夏馥》
- 주석 48)신도반(申屠蟠)……끊은 것
- 은사인 신도반은 한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보고 양탕(梁碭) 지역에 자취를 숨기고 은둔하여 살았다. 《後漢書 卷53 申屠蟠列傳》
與楊克明 庚辰
古之賢者, 遭亂世, 深藏遐擧, 卒以免禍.如夏馥之林慮樹屋, 申屠蟠之粱碭絶迹.今其時也, 而尙屬晩矣.惟賢不俟終日, 奮然能之, 何其勇也? 今夏風雨, 貴園柿栗想大損, 豈天以此謂寒士食侈而欲減之耶, 奉呵奉呵, 僕亦留意德裕頭流兩山之中久矣.但恨老矣, 旣不能服田, 子孫又無可從者, 柰何柰何? 徒切健羡而已.雖然此皆士之變處, 處變則然, 而至於窮理進識, 用究成身淑世之儒業, 何可須臾忘也? 望須深體聖訓則以學文則字之意, 耕樵餘力, 勤親簡編.日有慥慥, 以所得所疑, 因風示及, 資講論相長之益如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