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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양극명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楊克明 庚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양극명에게 답함 경오년(1930)
그리워하던 차에 받은 편지 한통은 백붕(百朋)도 어찌 이보다 값지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물음이 있었는데 답이 없으니 아마도 저를 버리셨네요?"라는 말에 대해서는 제가 저버린 것이 부끄럽고 무거워 천금 또한 가볍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 상자를 열어보니 과연 봄에 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서신 가운데 나를 일깨우는 말이 있어서 곧바로 답장을 썼을 터인데, 지금 무슨 말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답장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망망하여 답장의 유무를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자질이 혼약하여 50이 되기도 전에 정신이 막히고 혼미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가련히 여겨 용서해주시고 노여워 마십시오. 비록 그러하나 나의 어두움은 자질의 병이지 몸의 병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땅히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데, 다스리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병은 자세히 헤아려보니 곧 몸이 받은 절실한 병폐로 다스리지 않으면 낫지 않고, 약을 쓰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스림은 심히 어려운 것이 아니고 다만 급히 도모하는 것의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통쾌하게 보고 통쾌한 말을 들어서 제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오(吳)객, 태자(太子)의 고사주 44)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찌 〈7계(七啓)〉주 45)의 수단이 있겠습니까? 그만두지 않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일찍이 금강산을 노닐었는데 비로봉(毗盧峯)에 올라서 창해를 굽어보니 마치 작은 연못 같았고, 저 열도(列島)에 웅거해서 각자 주인 노릇하는 이들은 작고도 작아보였습니다. 구룡폭포를 보니 천장길이의 흰 비단에 만곡(萬斛)의 진주인 양, 멀리서 바라보니 눈을 놀라게 하였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정신이 혼미하여, 진실로 천하의 장관이었고 평생의 통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최칠칠(崔七七 최북)주 46)의 광우(狂愚)함을 비웃었으나 또한 그 절속(絶俗)함을 찬탄하였습니다. 또 정양사(正陽寺)에 오르니 만이천봉이 모두 반쯤 얼굴을 노출하여 운하가 걷히고 펼쳐지는 가운데 출몰하였습니다. 아침저녁의 변화가 황홀하여 기이한 형상을 형용하기 어려웠는데, 우암 송시열의 "산과 구름이 함께 흰색이라, 구름인가 산인가 구분하기 어렵더니. 구름은 돌아가고 산만 우뚝하니, 일만이천 봉우리로다."라는 시가 거의 잘 비유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산을 떠나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니 하얗기는 한겨울의 눈을 뒤집어쓴 것 같았고, 뾰족하기는 연꽃이 물위에 솟은 것 같아서 깨끗하고 맑고 상쾌하여 반점의 티끌도 보이지 않아 사람의 심신(心神)을 깨끗하게 씻어줌이 무릇 인간세상의 슬픔과 번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시에 씻어 내렸습니다. 고질병이 든 자가 금강산을 맞이한다면 그 고질병이 반드시 떠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라 오객(吳客)이 광릉의 파도를 가지고 비유를 설파한 것과는 다르니 그대도 그럴 뜻이 없는지요? 발과 눈이 이르는 것을 갑자기 실행하기 어렵다면 먼저 마음으로 그 청쾌한 기상을 상상하여 그대의 가슴 사이로 흘려보낸다면, 아마도 신기(神氣)가 평안해짐을 느낄 것이니 무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견해는 어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주석 44)오(吳)객, 태자(太子)의 고사
- 한(漢) 나라 매승(枚乘)이 오객(吳客)과 초 태자(楚太子)의 문답 형식으로 지은 '칠발 팔수(七發八首)'에 광릉(廣陵) 곡강(曲江)에 이는 파도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文選》
- 주석 45)7계(七啓)
- 문체의 하나로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지은 글이다. 이러한 문체로 칠발(七發), 칠격(七激) 등의 명문이 있다. 자연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하여 이를 통해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 주석 46)최칠칠(崔七七)
- 최북(崔北)이다. 칠칠은 최북이 자신의 이름 '북(北)'자를 파자한 것이다. 술과 유람을 매우 좋아하여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서 술에 취해 "천하의 명인(名人) 최북은 마땅히 천하의 명산(名山)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일화가 전한다. 《金陵集 卷13 崔七七傳, 韓國文集叢刊 272輯》
答楊克明 庚午
懸念頭一書, 百朋何足多也.但有問無答遐棄等語, 愧負之重, 又千金反輕也.發視舊筴, 果有殷春書.而語多警發, 想必隨卽修謝, 而今不記將何語奉答, 則亦無有乎爾否.追想茫茫, 莫辨有無, 生稟昏弱, 未五十而精魄之遁已若此, 可哀恕而勿怒也.雖然賤子之昏, 質病非身病也.只當自治, 治亦未易.細審所示美愼, 乃肌膚所受切近災者, 不治不瘳, 不藥不治, 治亦不甚難, 只在亟圖之如何爾.見快事聞快語以祛之, 亦或一道.高明之求我以吳太子故事者, 以此也.然僕安有七啓手段耶? 無已則有一焉.僕曩遊金剛山矣, 上毘盧之峰, 俯視滄海, 小若曲沼, 彼雄據列島而各伯者, 又小之小者也.觀九龍之瀑, 千丈白練, 萬斛眞珠, 遠望駭眼, 迫視眩精, 眞天下壯觀, 生平快事.笑崔七七之狂愚, 而亦歎其絶俗.登正陽之寺, 萬二千峰幷露半面, 而出沒於雲霞卷舒中.朝暮變幻, 奇形莫狀, 宋尤菴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峰之詩, 差可謂善喩也.離山而遠, 通看全體, 則晧晧若大冬之封雪也, 尖尖若芙蓉之出水也, 潔淨明爽, 不見半點埃氛, 令人心神灑落.凡世間諸相可悲可惱者, 幷不覺一時消下.使有沈痾者當之, 其祛體也必矣.此又皆實事, 而非如吳客廣陵濤之設諭者, 高明其無意乎.足目之到, 如難猝辦, 先須心到, 想其淸快氣像, 而流注於胸隔間, 則庶覺神氣平怡, 不爲無益矣.未知雅見以爲如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