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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양극명에게 답함 계해년(1923)(答楊克明 癸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양극명에게 답함 계해년(1923)
오늘 동짓날 그대의 편지를 받고 학업과 밝은 덕이 아울러 빛나고 분수에 따라 깊이 독서하시어 여행 중에도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음을 알고서 나의 마음에 족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 나아가 "계구(戒懼)하는 것이 부족하고 작은 사특함을 제거하기 어려워 날로 허물이 쌓인다."라고 근심하시었는데 그것이 곧 공자가 말한 극기(克己)이고, 맹자가 말한 구방심(求放心)입니다. 그것을 일관되게 꿰뚫으면 우리는 능히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벗은 간절히 그것을 근심하시니 스스로 기약한 제이등인을 범치 않으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것을 듣고 기뻐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 나를 쫓아 절차탁마하겠다는데 이르러서는 구익(求益)을 급히 하여 먼저 외(隗)로부터 시작한다는주 37)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비록 내 몸이 미치지 못하지만 어찌 감히 끝내 침묵하여 그대의 은근한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오호라! 기(己)는 사사로움입니다. 한번 사사로움이 행해지면 억만의 선행이 사라지고 그것을 몸에 두면 몸이 망하고, 가정에 두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에 두면 국가가 망하고, 천하에 두면 천하가 망하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아성인 안자(顔子)께서 일삼은 것이고 정자(程子)께서 경계하신 것으로 그와 같이 명백한데도 저 어두운 이들은 일찍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달게 그 욕망을 따르는 자들은 그만이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간간이 사공(事功)에 뜻을 둔 자들도 가정, 국가, 천하에 급급하여 예(禮)가 아닌데 움직이고, 의(義)가 아닌데 일삼는 것을 걱정할 겨를이 없습니다. 비록 요행히 일을 이루고 공(功)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진실한 덕을 잃고 성현의 법문(法門)을 잃은 것이니 도리어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동중서(董仲舒)가 이른바 "그 의만을 바르게 행하고 그 이익은 꾀하지 않는다. 그 도만 밝히고 그 공은 계산하지 않는다."주 38)라는 두 마디가 족히 최고의 목표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극기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안회(顔回)는 그 마음에 삼 개월 동안 인(仁)을 어김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삼 개월 이후에는 때때로 인을 어기는 것을 면치 못한 즉 이는 마음을 놓친 것입니다. 이를지나 더 나아갔다면 변화해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맹자께서는 "학문의 도는 다름이 아니라 그 놓친 마음을 구할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방일자자(放逸自恣)한 것이 방심(放心)임을 알지만,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합리(不合理)한 것이 방심이라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구하는 도는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기(記)에는 구용(九容)주 39)이 있고 어(語)에는 구사(九思)주 40)가 있습니다. 구용을 갖추어 불면이중(不勉而中)에 이르고, 구사를 갖추어 불사이득(不思而得)에주 41) 이른다면 그것이 곧 구방심(求放心)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부디 도(道)와 의(義)에 힘쓴다는 동중서의 훈계와 구용(九容), 구사(九思)의 방도에 뜻을 더한다면 전날의 근심이 족히 근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는 모두 생각을 분별하고 행동을 독실하게 하는 일이니, 이에 앞서 박학심문(博學審問)의 공부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벗처럼 천분이 약간 노둔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편지 중 "가난하여 유학할 수 없는 이 상재(傷哉)의 탄식주 42)은 어찌하겠습니까?"에 이르러서는 천고지사의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그러나 또한 천명이 있으니 분수 밖에서 구해서는 안 됩니다. 옛사람들이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서 힘써 행한다면 일이 절반은 넘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총명예지(聰明睿知)는 모두 경(敬)으로부터 나온다."주 43)라고 했으니 이는 모두 우리 벗의 분수에 들어맞아서 수용해야할 훈계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나이 40에 성취도 없이 또 세모를 맞이하여 다만 형주(荊州)자사 도간(陶侃)의 "살아서는 무익하고 죽어서는 알려짐이 없다."라는 한 구절을 쓸쓸히 읊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몸을 세간에 남겨두어 후진들에게 전거(前車)의 거울이 될 수 있다면 또한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 주석 37)외(隗)로부터 시작한다
- 선종외시(先從隗始)의 의미이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 주석 38)그 의만을……않는다
- 동중서는 천인책(天人策)에서 "대개 인인(仁人)은 그 의리를 바르게 하고 이익은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은 생각지 않는다.[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 《漢書 卷56 董仲舒傳》
- 주석 39)구용(九容)
- 군자가 수신하는 아홉 가지 몸가짐으로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눈은 바르게, 입은 신중하게, 말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똑바르게, 숨소리는 고르게, 설 때는 의젓하게, 낯빛은 단정하게 한다.[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 《禮記 玉藻》
- 주석 40)구사(九思)
-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로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집중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고서는 의리를 생각한다.[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논어》 〈계씨(季氏)〉
- 주석 41)불면이중(不勉而中), 불사이득(不思而得)
- "성(誠)의 경지에 이르면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과불급(過不及)이 없고,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터득해서 자연히 도에 합치되는데, 이런 분이 바로 성인이다.〔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중용장구》 〈제20장〉
- 주석 42)상재(傷哉)의 탄식
- "가슴 아프구나! 살아서는 봉양도 제대로 못했고, 죽어서는 예를 갖추지도 못하였네.〔傷哉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也〕" 《예기》 〈단궁 하(檀弓下)〉에 나오는 말로 가난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슬퍼한다는 뜻이다
- 주석 43)총명예지(聰明睿知)……나온다
- "총명예지가 모두 이 공경으로 말미암아 나오니, 이로써 하늘을 섬기고 상제에 제향하는 것이다.[聰明睿知皆由是出, 以此事天饗帝.]" 《논어집주》 〈헌문(憲問)〉
答楊克明 癸亥
卽承南至日惠函, 知學體有相, 與陽德幷昭, 隨分劇讀, 不以旅遊而少弛, 已足以慰相愛者心.又進而憂戒懼之未實, 隱慝之難除, 尤悔之日積, 此正孔子所謂克己, 孟子所謂求放心.透此一關, 吾人之能事畢矣.吾友切切然惟是之憂, 其不犯第二等人自期者斷斷矣.聞此而喜, 幾乎不寐.至於欲從淺陋而淬礪之, 則亦可見急於求益, 先從隗始之意也.顧雖躬之不逮, 安敢終於噤嘿以孤勤意乎? 嗚呼! 己者私也.一私之行, 億萬衆亡矣, 在身亡身, 在家亡家, 在國亡國, 在天下亡天下, 豈不畏哉? 顔聖之所事, 程子之所箴, 若是其明切, 而彼昏狂之曾不念知.而甘循其慾者, 已矣不足道, 間有有志事功者, 急於家國天下, 不暇恤於一動之非禮.一事之不義, 雖其幸而事成而功立, 其亡己之實德, 亡聖賢之法門, 則顧不大歟? 要之董子所謂, 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兩語, 足以爲究竟法, 此豈非克已之極致乎? 孔子曰, 回也其心三月不違仁, 三月之後, 不免有時乎違仁, 卽此是心之放也.過此以往, 乃化之之聖也.故孟子曰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人皆知放逸自恣之爲放心, 而不知心之少不合理者, 卽是放也, 求之之道, 當如何? 記有之曰九容, 語有之曰九思, 九容而至於不勉而中, 九思而至於不思而得, 則此豈非求放心之極致乎? 幸於道誼之訓, 二九之方, 加之意焉, 則向之所憂者, 不足憂矣.雖然此皆思辨行篤之事, 前此有博學審問工夫.而如吾友之天分稍魯者, 最不可闕.其於貧無以遊學, 何此傷哉之歎? 所以墮千古志士之淚也.然亦有命焉, 不可分外求之.古人云但於己知處, 力行之, 則思過半矣, 又曰聰明睿智.皆由敬出, 此又爲吾友分上適中受用之訓也, 如何如何? 澤述四十無成, 又此歲暮, 怛然而傷心, 只誦陶荊州生無益死無聞之句耳.然留此物於世間, 作後進前車之鑑, 則亦不爲無益也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