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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한유성종연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韓有聲 鍾淵 戊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0.0001.TXT.0027
한유성종연에게 답함 무진년(1928)
예전 음인(陰人 오진영)의 화를 만나 사생(死生)이 닥쳐올 때에 함께 화를 당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찍이 지나며 안부를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직 그대만이 편지를 보내서 위로하고 은덕으로 나를 권장해주니 그 풍모가 탁연하여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이러한 시기에 그대의 이런 행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기에 나의 감사함에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때때로 청풍이 동남쪽에서 불어오면 문득 '이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우리 운남(雲南) 사시는 분의 소식이다.'라고 하면서 흠뻑 맑은 바람에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바람은 허공의 실체가 없는 형상임에도 오히려 그대가 있는 곳에서 불어왔기 때문에 마음의 기쁨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뜻을 같이하는 그대의 편지 한통이 지금 내 책상위에 놓여 있음에 어떠하겠습니까? 도를 근심하고 세상일에 번뇌하는 절절한 언사와, 도를 안고 세상을 피하려는 간절한 뜻이 나를 깨우쳐주는 바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처럼 기쁘고 마음 트이는 일이 근래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옥(獄) 중에서 상서(尙書)를 읽고, 배 안에서 대학(大學)을 공부한다."라는 말씀은 지금 시절의 의리에 딱 들어맞아서 사람을 잘 인도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일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주자(朱子)가 이른바 "한 숨결이라도 남아있으면 조금의 게으름도 용납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 이미 설파하여 남음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오히려 굶주리면 먹고 졸리면 잠을 자면서 얼마나 많은 숨결이 앞에 남아있는지 모르면서도 세도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다스리는데 조금이라도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 강학하는 제자들이 있어서 그 즐거움이 어떠하신지요?"라는 축하의 말은 그대의 밝은 지혜로도 한 가지 일을 잘못 헤아림을 면치 못했습니다. 즐거움이란 기쁨 이후에 얻어지는 것인데 이미 기쁨이 사라졌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제 원로들이 모두 떠나고 늙은이 중 여전히 선비의 명성을 띠고 있는 자가 드뭅니다. 그리하여 인가의 자제들 중 서책을 끼고 방황하는 자들이 기약하지 않고 스스로 이르는데 나 또한 오늘날 청년들의 독서가 그 이름만으로도 매우 귀하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대처럼 바깥에서 막연히 생각하면 우리 가운데 볼 만 한 자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모두 명성만 있을 뿐 실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는 믿음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배우는 자는 진실한 공부가 없어서 서로가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의 죄는 만방과 관계가 없고, 만방의 죄는 그 책임이 나에게 있다."주 33)라는 가르침처럼 가르치는 자의 허물은 배우는 자와 관계가 없지만, 배우는 자의 허물은 가르치는 자에게 과오가 있으니 이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대는 오랫동안 학문을 돈독히 하고 지조를 지켜 우뚝 빼어난 선비가 되어서, 기쁘게도 한 고을의 믿음이 있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요사이 학문하는 절도를 자세히 알지 못해 울적해하다가 원기산(元氣山)에 집을 짓고 학생들에게 강독하고 있다."라는 것을 편지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주자(朱子)께서 이르시기를 "공자의 덕은 태화원기(太和元氣)"라고 하였은즉 그대가 강론하고 있는 공자의 유훈과 남은 가르침 또한 천지의 원기가 아니겠습니까? 천지의 원기를 원기산에서 강론하고 있으니 사람과 땅이 서로 어울리고 이름까지 부합합니다. 이는 고시(古詩)에 이른바 "정자 가운데 이르기도 전에 명성이 이미 좋다."주 34)라는 것과 진실로 부합합니다. 이제 그 실질을 확충하여 부합시키는 일은 오직 그대의 힘쓰는 여하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일상의 진덕수업(進德修業)하는 교수의 과목들을 적어 보내서 나로 하여금 참고할 수 있게 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사람이 사람 되는 실질은 윤리강상(倫理綱常)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위아래로 모두 어두워져 윤리강상이 실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친권이 박멸하고, 군신이 평등하며, 이혼하고 스스로 중매하며, 나이가 많아 쓸모없다는 등의 설이 결국 공론(公論)과 상식이 되었음에도 막는 이가 없습니다. 사륜(四倫)이 이와 같으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금수가 되어가니 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 기수(氣數)가 변천하여 이적(夷狄)에게 물들어 이처럼 큰 화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대도 선비라는 자가 지위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금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분통함과 근심으로 절반이라도 이를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작금의 선비들은 구하려는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삼년상을 틈타 혼례를 행하여 부자(父子)의 은혜를 해치고, 선왕의 법을 범하여 올바른 가정의 시작부터 어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자가 비단 한, 두 명에 그치지 않습니다. 윤리 강상을 무너뜨리고 몸소 금수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일을 차마 한다면 무슨 일인들 차마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일을 보고 들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담이 떨리고 심장이 꺾입니다. 그대 또한 이런 말을 들으면 크게 놀라고 깊이 애통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금일 선비들이 마땅히 강론하여 밝혀야 할 것이 윤강(倫綱), 두 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내 말을 그르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그대 또한 이 뜻을 잘 생각하여 보존하고, 수행하여 행동의 다스림으로 삼으십시오. 또 언어로 삼아 드러내고 저술하여 문장으로 삼으십시오. 나아가 안으로 가정에서 실천하고 밖으로 고을에까지 미치게 한다면 풍속이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윤강(倫綱), 두 글자를 하나의 큰 제목으로 삼아서 높이 선창하고 자세히 깨우쳐주어 크게 포상하고 무겁게 폄하(貶下)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의 도에 많은 도움이 있게 하는 것이고 실로 천지의 원기를 도와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진덕수업의 나머지로 삼고 미루어 나가 학생을 교수하는 과목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저 성리(性理)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윤리강상의 본원(本源)이 되고, 문장의 묘함은 또한 윤리강상의 시용(施用)이 됩니다. 오늘날의 화는 아시아 풍조나 유럽 사조의 동탕함에서 오로지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리설이 밝혀지지 않은 까닭에 어두워졌다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윤리 강상의 도가 밝게 행해진다면 마을의 민요마저도 문장의 쓰임이 되는데 흠이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성리설의 다툼은 도리어 서로 싸움을 초래하기에 이르고, 문장의 기이함은 쉽게 배우의 희롱으로 귀결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학문으로 이름난 선비들 중, 그 상류는 현담(玄談)이나 공리(空理)를 설하여 명목만을 다투고, 그 하류는 교묘하고 화려함을 다투어 꾸미는 것만 힘씁니다. 그리하여 서당의 급한 임무는 윤리 강상의 원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대사임에도 여기에 마음을 극진하게 쓰지 않으니 늘 그 점을 개탄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은근하고 같은 뜻을 가짐에 감동하여 이렇게 말이 크게 길어졌으니 부디 산만하다고 꾸짖지 마시고 더욱 헤아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석 33)내 몸의……있다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서경》 〈탕고(湯誥)〉
주석 34)정자……이미 좋다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 시 중에 "주인은 금 거북 풀어 술 산 노인이니, 정자 가운데 이르기도 전에 명성 이미 아름답네(主人定是金龜老, 未到亭中名已好)"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문진보》
答韓有聲 鍾淵 戊辰
曩遭陰禍, 死生迫頭, 同禍幾人以外, 未嘗見過而問焉者.惟賢座致書以慰藉之, 用德以勸獎之, 風義卓然, 令人可感.然賢座此時此爲, 非以私也, 乃以公也, 則吾之感之, 亦豈有他? 時有淸風自東南來者, 輒曰此吾雲南同人信息也, 未嘗不恰然而醉風.是虛空無形之物, 猶以其自仙鄕方面而來故, 心悅之若是, 矧玆一幅華函, 實出乎吾同人心畵, 而現墜於吾案乎.而切切然憂道憤世之辭, 懇懇然抱道遯世之志, 有所警發於陋劣者爲多.其所欣豁, 蓋比來初事.獄裏尙書舟中大學之喩, 可謂切中時義, 亦可謂善導人也.然此事約而言之, 朱子所謂一息尙存不容小懈者, 已道破無餘.今吾輩尙此飢打食困打眠, 不知其幾多息在前, 安可諉以世道無柰而少懈於自治乎? 屛墻有徒, 其樂何如之賀? 賢座之明, 不免一籌錯料.樂由說而後得, 旣無其悅, 安有其樂? 但今長德幷逝, 老蒼而尙帶士名者亦鮮.故人家子弟之挾書彷徨者, 不期而自至, 吾亦以今日年少之讀書, 其名可貴故受之.自外而遙想, 其中似有可觀者, 然敎與學者, 皆以其名而不以其實.故上無孚感之動人, 下無朴實之用功, 可謂胥失之矣.然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則敎者有過, 無以學者, 學者有過, 過在敎者, 是之愧耳.久知賢座敦學有守, 蔚爲秀士, 充然喜一方之有恃.然猶以未悉近日爲學節度爲鬱, 玆承結屋元氣山中, 與朋徒講貫, 朱夫子謂孔子之德爲太和元氣, 則卽此賢座所講孔子之遺訓餘敎, 亦非天地元氣乎? 講元氣乎元氣之山, 人地相得, 名與之符.是則古詩所謂未到亭中名己好者, 充其實而符之, 惟在賢座自勉之如何.何不幷以日間進德修業牌下敎授課目而示之, 使膚淺者有所取法也? 竊惟人所以爲人之實, 以倫綱在也.見今上黲下瀆, 倫喪綱墮.親權撲滅, 君臣平等, 離婚自媒, 年多不用等說, 遂成公論常式而莫之遏.四倫如此, 友道之信, 尤不待言矣.人而禽獸, 慘不可說也.噫! 氣數變嬗, 夷狄染化, 致此大禍.爲士者無位無權, 無可禁之術.其憤痛憂惻, 思所以救得一半分之心, 豈得已乎? 乃或近日之爲士者, 不惟無思救之心, 甚而至於乘三年之喪而行婚嫁, 賊父子之恩, 犯先王之法, 乖正家之始者, 不但一二數焉.其與於喪倫墮綱而身親爲獸行, 莫大於此.而所謂是可忍孰不可忍者, 聞見所及, 不覺膽掉而心折也, 賢座聞此, 得無大驚深痛者乎.吾故曰今日士子之所當講明者, 倫綱二字是已.賢座如不以鄙言爲非, 請自存之爲思慮, 修之爲行治, 發之爲言語, 著之爲文字, 以至內而用於家庭, 外而及於鄕黨, 大而化之風俗.另以倫綱二字, 立一大題目, 高唱細喩, 大褒重貶.使世道得有多少裨益, 寔扶植天地元氣之道也, 以此爲進德修業之餘, 推而作敎授朋徒之課目, 如何如何? 若夫性理之奧, 雖爲倫綱之所本源, 文章之竗, 亦爲倫綱之所施用.然今日之禍, 謂不專由於亞風歐潮之動盪, 而以性理說不明之故, 則疑若迂矣.苟倫綱之道明行, 里巷謠諺之作, 亦足爲文章之用而無欠矣.而况性理之爭, 反致戈戟相尋, 文章之奇, 易歸徘優作弄乎.而今之士之號爲學問名家者, 其上者談玄說空, 名目之是競, 下者騁巧鬪靡, 雕繪之是勤.至於堂下急務, 扶植倫綱元氣一大事, 不甚致意焉.此尋常慨歎于中者, 玆於俯詢之勤, 感聲氣之密邇, 不免發之太長, 幸不誚以冗蔓而加諒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