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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族弟希淑 甲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0.0001.TXT.0003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
풍년에는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쌀알이 흩어져도 아낄 줄 모르다가 흉년엔 배가 텅 비어 흩어진 쌀알을 구해도 얻지를 못한다. 나는 현제(賢弟)에게 유시할 것이 있다. 한창 동당에서 무릎을 좁힐 때에는 착한 말이 양양하게 충만하여 변함없이 지속되리라 여기지만 급기야 소식이 끊겨 쓸쓸하게 앉은 연후에 전날의 놀이를 회상하면 천상의 즐거움 같다. 지난번에 준 두 편지는 감사하게 받았다. 전씨를 준엄하게 질책했으니 그 마음을 깨우겠고 정씨를 명백하게 유시한 것은 그의 미혹을 돌이킬 만하여 모두 후세에 전해져 떳떳할 만하다. 이와 같은데도 깨우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면 또한 다시 어찌하겠는가. 이처럼 시비가 전도되고 착란한 날을 맞아 그대 같이 곧지만 각박하지 않고 상세하지만 번다하지 않는 문필(文筆)로 유연히 사람을 감동시키고 크게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다행히 동지 가운데 있고 더욱 더 다행히도 동종(同宗) 가운데 있는 것이 어찌 우연이랴. 나는 심히 기뻐하노라. 듣자니 올 겨울에 문장에 크게 힘을 쏟았다고 하는데 진실로 그러한가? 뿌리가 이미 견고하고 체재 또한 갖추어져서 일은 절반이지만 공은 반드시 배가 될 것이다. 힘쓰고 힘쓴다면 강하(江河)가 터지듯이 패연(沛然 세찬 모양)하여 막지 못함을 볼 수 있으리라. 나는 젊어서부터 문자에 자못 우활하고 게을러 힘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이단을 물리치는 일을 당하여 문사가 뜻과 어긋나 전달하기 어려움을 느끼니 매우 스스로 후회하고 한스럽게 여긴다. 저들이 짊어진 죄가 산과 같은데도 교만하게 날뛰며 스스로 득의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단지 그들의 해미(蟹尾)와주 7) 같은 글을 믿는 것이니 더욱 애통하고 가증스럽다. 그렇지만 천하의 시비는 의와 불의일 뿐, 저들이 글을 쓴다면 나는 나의 의(義)를 쓸 것이니 내가 어찌 저들을 두려워하겠는가. 기억하건대 옛날에 선사께서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오이견(吳而見 오진영의 자)의 글은 기이함을 숭상하여 본받을 것이 없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종현(鍾賢 김택술의 자)의 문장은 또한 스스로 뜻을 전달하니 삼가 기이함을 숭상하는 오이견의 글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비록 근본을 중시하고 기대와 면려에서 나온 것으로 내가 문장에 능하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오이견의 문장을 취하지 않으신 뜻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할 것도 없으니 어진 아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그대가 편지에서 용감하게 나아가고 견해가 분명하여 조용히 (사문의 도를) 발휘한다고 나를 인정하고 심지어는 전 호남의 명맥이 나 한 몸에 달려있다고 여기니,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로되 인물평주 8)의 잘못됨이 이 지경에 이른단 말인가. 설사 몇 가지 근사한 것이 있어도 어찌 이렇게 여러 어른 가운데에서 우열을 따진단 말인가. 어찌 사체(事體)와 예의에 합당하겠는가. 내가 희숙이 나를 알지 못한다고 여긴 것은 곧 이 점에 있고, 마땅히 갈고 닦을 것도 이 점에 있다고 여기네. 그러나 그대의 뜻은 진실로 덕으로써 사랑해 주는데서 나왔으니, 도타운 뜻을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주석 7)해미(蟹尾)
게가 기어가는 것처럼 가로로 쓰는 글자라는 의미로 한문 이외 영어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석 8)인물평
원문은 월조(月朝)로 월단(月旦)과 같아 인물평으로 해석하였다.
答族弟希淑 甲子
樂歲合哺鼓腹, 粒米狼戾, 而不知惜也.饑年饉秋, 腹枵然, 而求狼戾之米, 不可得也.吾於賢弟有喩焉.方其促膝于同堂, 昌言洋洋充然, 以爲常久也, 及乎鴈斷魚沈, 索然悄坐然後, 回想前遊如天上樂也.二書向荷投示, 責田峻切, 可警其心, 喩丁爽白, 可回其惑, 皆可傳有辭於後, 若此而不警不回, 則亦復何哉? 當此是非倒錯之日, 如君直不傷刻, 詳不失煩之筆, 有能油然感人轟然警人者, 幸而在同志中, 又尤幸而在同宗中, 豈偶然哉? 吾深喜之.聞今冬大肆力于文章云, 信然否? 根旣固矣, 體又具矣, 事將半而功必倍矣.勉旃勉旃, 江河之決, 吾見其沛然莫禦也.吾則於文字, 少頗迂懶不致力.今當言距之役, 覺得戞戞乎難達, 殊自悔恨.彼邊之負罪如山, 而驕騰跳踉, 自以爲得者, 徒恃若爾輩蟹尾之文, 尤極痛憎.雖然天下是非義與不義而已, 彼以其文, 我以吾義, 吾何畏彼哉? 記昔先師雅言曰, 吳而見之文, 尙奇不足法, 又謂之曰鍾賢之文.亦自達意, 愼勿效尙奇如而見文.此雖出於重本期勉, 而非謂澤述之能於文也, 然其不取吳文之意, 較然矣, 然則不惟不當畏.亦不足畏, 未知賢弟以爲如何? 若盛喩之以進勇見明, 從容發揮與我, 至謂全湖之命脈, 在我一身.君非不知我者, 月朝之失, 一至於此.設有一二近似者, 遽此軒輊於諸丈中, 豈當乎體禮? 吾以爲希淑之不知我者, 正在此處, 所當磨礱處, 亦在於此也.然其意則固出於以德之愛, 厚意曷不領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