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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 족제 희숙 현술에게 답함 무오년(1918)(答族弟希淑 賢述 戊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0 / 서(書)
족제 희숙 현술에게 답함 무오년(1918)
덕행과 문장, 학업을 합일해야한다는 말에서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는 성대한 뜻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하기를 덕행은 문장과 학업을 포함하지만 학업과 문장은 덕행을 포함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세 가지에 각각 치력(致力)한다면 끝내 합일되기 어렵거니와 오로지 덕행에 힘쓴다면 두 가지는 합일을 기약하지 않아도 합일할 것이다. 때문에 말하기를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말이 있다."주 1)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온축하여 덕행이 되고 실행하여 학업이 된다."주 2)고 하였으니 참으로 미더운 말씀이다. 요순과 문왕 주공은 큰 덕행으로 빛나는 문장과 드높은 공업을 이루었으니 가장 으뜸이다. 공자와 안자 이하의 여러 성현은 문장이 진실로 여기에 있었으나 곤궁하여 지위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천하를 제도하진 못했으나 옛 성인을 이어 후학에게 길을 열어준 공적은 요순보다 뛰어나다. 이윤(伊尹)과 부열(傅說), 여상(呂尙)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학업이 저같이 탁월한 것은 그들이 성인의 도를 참여하여 들었고 몸소 군자의 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훈(伊訓)과 열명(說命)주 3), 단서(丹書)와 출사표(出師表)주 4)의 문장이 또한 후인의 보배가 된 것이다. 저 한유는 비록 문장에 뛰어난 자이나 끝내는 성현의 무리로 중시하는 바가 여기 덕행에 있었기 때문에 홀로 제자(諸子)의 으뜸이 되었고 불교를 배척한 학업 또한 위대하였다. 위앙(衛鞅)과 왕맹(王猛) 같은 족속이나 유주(柳州 유종원)와 미산(眉山 소동파)의 무리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은 자들로 비루하여 끼어 줄 것이 없다. 공문(孔門)의 사과(四科)주 5)에서 문학의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나 정사의 중유(仲由)와 염구(冉求)가 어찌 일찍이 덕행에 힘쓰지 않았으랴. 오직 그 힘쓸 바 덕행에 전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과 정사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덕행의 안연과 염옹(冉雍)이 문학과 정사에 짧다고 말한다면 확실한 의론이 아니다. 이것이 이른바 오로지 덕행에 힘쓰면 문장과 학업 두 가지는 저절로 합일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내온 문장을 보니 문사가 씩씩하고 뜻이 확고하여 족히 나약한 사람을 일으킨다. 그러나 세운 과목의 중요성의 여부와 용력(用力)의 전일함과 느슨함에 있어 혹 구별이 작기 때문에 나의 어리석은 견해를 개진하니 살피고 정정하여 회교(回敎)하기 바라노라.
- 주석 1)덕이……말이 있다
- 《논어》 〈헌문(憲問)〉에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으나 훌륭한 말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 주석 2)온축하여……된다
-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누편(陋篇)〉에 "성인의 도를 귀로 듣고 마음속에 간직하여 그것을 몸에 쌓아 두면 덕행이 되고, 밖으로 행하면 사업이 된다. 저 문사만을 일삼는 사람은 비루하다.〔聖人之道 入乎耳 存乎心 蘊之爲德行 行之爲事業 彼以文辭而已者 陋矣〕"라는 말이 나온다. 《근사록(近思錄)》 〈위학(爲學)〉에도 실려 있다.
- 주석 3)이훈(伊訓), 열명(說命)
- 《서경》의 편명이다. 〈이훈〉은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훈계한 내용이고, 〈열명〉은 은나라 고종(高宗)과 부열(傅說)에 대한 글이다
- 주석 4)단서(丹書), 출사표(出師表)
- 《단서》는 주 무왕(周武王)이 즉위할 때 강태공(姜太公)이 올린 경계의 말씀이다. 《출사표》는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북벌(北伐)할 적에 2대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표문으로 우국충정의 내용이 담긴 명문장으로 유명하다.
- 주석 5)공문(孔門) 사과(四科)
- 《논어》 〈선진(先進)〉에 보면 공자께서 제자들을 평하여 "덕행(德行)에는 안연과 민자건, 염백우와 중궁이고, 언어(言語)에는 재아와 자공이고, 정사(政事)에는 염유와 계로이고, 문학(文學)에는 자유와 자하이다."라고 하였다. 후세에 이를 공문 사과(孔門四科)라고 불렀다.
答族弟希淑 賢述 戊午
德行文章事業合一之喩, 可見不安小成之盛.然吾嘗以爲德行包文章事業, 事業文章不能包德行.故三者各致其力, 則終難合一.專務德行, 則二者不期合而自合矣.故曰有德者, 必有言, 又曰蘊之爲德行, 行之爲事業, 亶其信哉.堯舜文周之大德, 煥乎之文, 魏乎之功, 尙矣.孔顔以下諸聖賢, 文固在玆, 而窮不得位, 故雖無康濟天下, 繼開之功, 賢乎堯舜.伊傳呂葛之業, 如彼卓然者, 以其與聞聖人之道, 而躬行君子之德也.故伊訓說命丹書出師表之文, 亦足爲後人拱璧.如韓愈氏, 雖工於文者, 終是聖賢之徒, 而所重在此, 故獨擅雄於諸子, 而闢佛之業, 厥亦偉矣.至若衛鞅王猛之屬, 柳州眉山之類, 棄本逐末者, 陋矣不足齒.如孔門之四科, 遊夏之文學, 由求之政事, 何嘗不務德行者哉? 惟其所務不專, 故止於此而已.然謂顔冉之德行, 短於文與政, 則非確論也.此所謂專務德行則二者自合者也.竊觀來章, 辭壯志確, 足以起懦.然於立科之賓主, 用力之專歇, 或少區別, 故爲陳瞽見 諒訂回敎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