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9
  • 서(書)
  • 방옥경 관에게 답함 기축년(1949)(答房玉慶 琯 己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9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9.0001.TXT.0025
방옥경 관에게 답함 기축년(1949)
옛날 간재 선생을 모시고 그대의 병사(丙舍)주 98)에 머물러 공부 할 적에 그대는 관각(丱角)주 99)이었고, 나는 약관(弱冠)이었습니다. 약관과 동자는 비록 다르지만 나이는 실로 견수(肩隨)주 100)인지라, 나의 생각에 피차 나이가 넉넉하고 거처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주 101) 거의 해마다 상종하여 종신토록 서로 힘쓰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이별은 많고 모임은 적어 이삭(離索)주 102)한 것이 오래되어 관선(觀善)주 103)이 드물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근자에 길이 막혀 그대를 만나지 못한 것이 이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아이가 남쪽으로 가서 그대를 알현하게 되어 근년에 안부를 갖추어 알게 되었고, 또 그대의 편지까지 받들고 와서 나에게 묻는 안부가 주밀하고 진지하여 정의(情誼)가 많이 넘치는 것을 보게 되니, 여러 번 완미하고 송독함에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싫증나지 않습니다.주 104)
말씀하시기를, "국정이 실마리를 이룰 길이 없고, 또 예의가 전일과 같지 않으며, 세속이 오랑캐의 지경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진실로 옳고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재주도 없고 지위도 없어서, 한갓 근심만 할 뿐 이익 됨이 없습니다. 다만 제공(諸公)이 오묘한 계책을 내서 시대의 폐단을 잘 구하여, 나라의 운명을 더욱 새롭게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한 겨울의 절개를 우뚝 세우고, 세상을 구제할 경륜을 품으라"는 말씀에 이르러서는, 천루한 제가 어찌 다 감당하겠습니까? 그만 두십시오. 그만 두십시오. 대개 세상의 변란은 무궁하니 우리 힘으로 능히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덕과 학문은 진보하기 어렵지만 우리 마음에 마땅히 더욱 면려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에 예의가 없고, 오랑캐의 풍속을 범하고, 학문의 실마리를 성취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는 외에는, 감히 다른 생각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마원(馬援)주 105)과 범익겸(范益謙)주 106)의 훈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당신의 뜻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대와 저는 모두 늙었습니다. 오늘 여러 해 만에 처음 받은 편지인데, 왕복하는 관례적인 말로 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이 경개(傾蓋)주 107)의 초심에 부응하기를 기약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세세한 말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행여 저를 헤아려 줄 수 있겠는지요.
주석 98)병사(丙舍)
원래 무덤 가까이에 지은 집이지만 여기서는 곁채를 뜻한다.
주석 99)관각(丱角)
총각, 동자(童子)이다.
주석 100)견수(肩隨)
윗사람과 함께 걸을 때, 예를 갖추는 뜻으로 윗사람보다 조금 뒤에 떨어져서 따라가는 것이다. 《예기 곡례(禮記 曲禮)》 상편에 "내 나이보다 10년 이상이면 형님으로 모시고,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따라 간다.〔十年以長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 라고 하였다.
주석 101)
본문의 연월(燕越)은 원래 북쪽 끝 연(燕) 나라와 남쪽 끝 월(越) 나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주석 102)이삭 (离索)
이군삭거(离群索居)의 줄임말로,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친지나 벗들과 헤어져서 혼자 외로이 사는 신세를 말한다. 자하(子夏)가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지낸 지가 오래이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석 103)관선(觀善)
상관이선相觀而善의 줄임말로, 친구들끼리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대학의 교육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예(豫)라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을 시(時)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르치는 것을 손(孫)이라 하고,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을 마(摩)라고 한다. 이 네 가지가 교육이 흥한 이유이다.〔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 此四者敎之所由興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104)
본문의 무두(無斁)는 《시경》 국풍(國風)의 주남(周南) 〈갈담(葛覃)〉의 두 번째 구절에 "칡덩굴이 쭉쭉 뻗어, 골짜기 가운데에 뻗어가서, 그 잎새가 빽빽하거늘, 그 덩굴을 베어 삶아서, 굵고 가는 갈포옷 지으니, 입으매 싫지가 않도다.〔葛之覃兮, 施于中谷. 維葉莫莫, 是刈是濩. 爲絺爲綌, 服之無斁.〕"라고 하였다.
주석 105)마원(馬援)
중국 후한(後漢) 때의 장군이다. 마원이 호협(豪俠)하여 의리를 중시하는 두보(杜保)를 자기가 애지중지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제대로 본받지 못할 경우에는 그지없이 경박한 사내가 되고 말 것이니, 이는 이른바 "범을 그리다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거꾸로 개같이 되고 마는 것이다.〔畫虎不成反類狗〕"라고 조카들을 경계시키면서 아예 그를 본받지 말라고 훈계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석 106)범익겸(范益謙)
송나라 사람 범충(范沖)으로, 익겸은 그의 자이다. 범익겸은 열네 가지 좌우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주석 107)경개(傾盖)
수레를 멈추고 일산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길에서 잠깐 만나는 것을 뜻한다.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鄒陽列傳)〉에 "속어에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어도 처음 사귄 듯하고, 수레를 멈추고 잠깐 만났어도 오래 사귄 듯하다.'라고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서로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諺曰, 白頭如新, 傾蓋如故, 何則, 知與不知也.]"라고 하였다.
答房玉慶 琯 己丑
昔倍先師留學尊門丙舍也, 尊則丱角, 我則弱冠.冠童雖殊, 年實肩隨, 意謂彼此年富, 居不燕越, 庶可課年相從, 終身交勖矣.孰謂中間別多會少, 離索久而觀善稀也.邇來阻閡, 比前尢甚.不意兒子南行, 獲拜門屛, 備審近年之安矦, 又奉尊函而來, 有以見問訊周摯, 情誼譪溢, 屢回玩誦, 感荷無斁.所喩國政之就緖無路, 禮義之無復前日, 世俗之入於夷虜, 誠然誠然.然吾輩無才無位, 徒憂無益.只望諸公之妙出籌策, 善救時弊, 益新國命而已.至於挺立大冬之節, 濟世經綸之懷, 尢何敢當於淺陋哉, 已之已之.蓋世變無窮, 非吾力之所能如何.德學難進, 在吾心之所當加勉.弟常恐吾身之無禮義, 犯夷虜, 而學無就緖外, 不敢有他念.亦以馬援范益謙之戒, 不可不思也, 未知尊意以爲如何.尊與我俱老矣.今於積歲初書, 不欲以往復例語仰答.竊期終副傾蓋初心, 不覺覼縷至此, 幸得見諒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