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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9
  • 서(書)
  • 전사견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田士狷 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9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9.0001.TXT.0021
전사견에게 답함 병자년(1936)
신헌(愼軒)이 몰래 사순(士順)과 자경(子敬)에게 준 편지에 여차여차 '감히 변명하지 못하고 항거하지 못함을 두려워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재(全齋)주 79)의 비문은 선사께서 친히 고친 것입니다. 때문에 《고변록(考辨錄)》 가운데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씨는 《고변록》에 기재된 것과 같은 세 선생의 질의(質疑)에 관해 설(說)한 것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비록 말하기를, "선사께서 이르기를, '사고(私稿)를 정리하여 바르게 하는 것은 오로지 이견(而見)주 80)을 의지했다고 말하기에 우리가 이것을 빙자해서 임의대로 스스로 개찬(改竄)하였습니다."라고 했는데, 그러나 다만 선사가 이정(釐正)이라 말하였지, 어찌 일찍이 개찬이라 말하였던 것인가요? 또한 오이견에게 맡겨 이정한 이 일은 임술년(壬戌年) 5월에 친히 이정하기 이전에 있었은즉, 이미 때가 지난 훈계에 속합니다. 이미 때가 지난 훈계이므로 마땅히 근거로 해선 안 됩니다. 저들의 설이 근거가 없는 것이 이와 같은데도, 저들의 미풍에 겁을 먹고 먼저 근심하고 두려워 할 마음을 품으니, 어찌 이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고 기를 기르는 것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주석 79)전재(全齋)
임헌회(1811 ~1876 )이다. 조선 말기의 학자이다.
주석 80)이견(而見)
오진영의 字이다.
答田士狷 丙子
愼軒以陰與士順子敬書有所云云有懼其不敢封辨不得抗拒之意, 殊不然也.全碑是先師親改.故不言於考辨錄中.田不關傳三先生說質疑, 有如考辨錄所載矣.渠雖曰先師云私稿釐正, 專恃而見, 籍此而任自改竄, 然只曰釐正,何嘗曰改竄乎.且此在壬戌五月親自釐正之前, 則己屬過時之訓.而不當爲據也.彼說之無據也如此, 而㥘於威風, 先懷憂懼豈非見理不明養氣未充之故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