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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 서(書)
- 오사익에게 보냄 경인년 (1950)(與吳士益 庚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 서(書)
오사익에게 보냄 경인년 (1950)
일전의 편지에 박진호(朴震鎬)가 선사가 그의 조부 창암(蒼岩)에게 보낸 편지를 인쇄 배포하여 김용승(金容承)이 찬한 창암의 행장 중 "간옹에게 손색이 있다."는 말을 실증했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듣고 너무도 통탄스러웠습니다. 대개 선사가 섬으로 들어간 것은 세상의 변란을 보기 싫어했기 때문이니, 이는 "태사(太師)는 제(齊)나라로 갔다."는 이하의 여러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은둔했던 것주 89)과 같으며, 이것으로써 스스로 큰 법도를 세우기를 마치 범찬(范粲)의 수레주 90)나 문산(文山)주 91)의 다락처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이 편지는 아마도 섬을 나가는 것과 관련된 여러 의론의 가부를 물어서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어서 오직 의를 따를 뿐이다."주 92)라는 극치를 구하고자 한 것이지, 반드시 섬을 나가고자 해서 물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사의 문인이 된 자들은 다만 굳건하게 의론을 세워서 현자를 모욕하고 선사를 범하는 마음을 주벌해야 할 따름인데, 어찌 그 문으로 달려가 말을 좋게 꾸며서 마치 실제로 섬을 나가려는 마음이 있고 실제로 대덕의 법도를 넘는 일이 있는 것처럼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박군의 조부가 선사를 존모했던 입장에 있었으니 어찌 감히 이와 같이 말했겠습니까? 권순명(權純命)과 유숙(柳塾)이 한 짓은 "우리 조부가 간옹(艮翁)을 존모했는지 여부는 우리 조부에게 물어본 뒤에 알 수 있다."고 박진호에게 비판을 받은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선사에게 누를 끼친 것으로는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습니까. 저쪽이 하는 것은 매번 대부분 이와 같으니, 또한 매우 통탄할 뿐입니다. 형은 이미 금지하지도 못하고 또 그들과 함께 하니, 이는 매우 잘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 주석 89)태사(太師)는……것
-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태사 지는 제나라로 가고, 아반 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 요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 결은 진나라로 가고, 북을 치던 방숙은 하내로 들어가고, 도고를 흔들던 무는 한중으로 들어가고, 소사 양과 경쇠를 치던 양은 해도로 들어갔다.[太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小師陽擊磬襄入於海]"라고 하였다.
- 주석 90)범찬(范粲)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충신으로 자는 승명(承明)이다. 태재중랑(太宰中郞)이 되었을 때 사마사(司馬師)가 국정을 잡고 위 제왕(魏齊王) 조방(曹芳)을 폐하여 금용성(金墉城)으로 옮기자, 병을 핑계하고 문밖을 나가지 않았다. 조정의 부름이 이어지자 미친 체하여 36년간 말하지 않고 수레 위에서 자며 땅을 밟지 않다가 생을 마쳤다. 《진서(晉書)》 권94 〈범찬열전范粲列傳)〉
- 주석 91)문산(文山)
-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을 가리키며 문산(文山)은 그의 호이다. 남송(南宋) 말기에 원병(元兵)과 싸우다 잡혀가 3년 동안 연경에 잡혀 있을 때 절의를 지켜 다락에서 내려가지 않고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결국 피살되었다. 《송사(宋史)》 권418 문천상열전(文天祥列傳)〉
- 주석 92)가함도……뿐이다
-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공자(孔子)는 "군자는 천하의 일에 있어서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어서 오직 의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無莫也, 義之與比]"라고 하였다.
與吳士益 庚寅
日前見喩,朴震鎬之印布先師與渠祖蒼岩書以實金容承所撰蒼岩行狀中"艮翁有遜色"之語,聞極可痛.蓋先師之入島,惡見時變,若太師適齊以下諸人之避地,非以此自立大閑若范粲之車、文山之樓也.且是書也,想是詢及出島諸議之可否,以求"無適莫惟義比"之極致,非必欲其出島而問之也.爲先師門人者,只當毅然立論,誅其侮賢犯師之心而已,豈可趨門善辭,有若實有出島之心,實踰大德之閑? 而但在君祖尊慕之地,豈敢如此之云? 若權、柳之爲也,宜其得吾祖之尊慕艮翁與否問於吾祖然後可知之譏於震鎬也.其貽累先師,孰甚於此? 彼之所爲,每多如此,亦甚痛歎.兄旣不能禁止,又與之同伴,此不思之甚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