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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 서(書)
- 오사익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吳士益 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8 / 서(書)
오사익에게 답함 병자년(1936)
답장을 받고서 제가 '극언운운(極言云云)'이라고 논한 것에 대해 해가 될 것이 없다고 하였고, 조헌경(趙景憲) 편지의 '모두가 변하는 날이다.[皆變之日]'라고 한 것은 '곧바로 오랑캐가 된다.[卽夷]'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은 모두 현광(玄狂)이 말한 것과 같다고 했다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제가 형에게 죄를 얻지 않게 됨을 다행이라고 여겼고, 또한 형이 그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강론을 끝마침에 마침내 더욱 사람 중에 이와 같은 자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형이 '의견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한 것이 일시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여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만약 형의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성대함이 아니라면 또한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전일에 편견과 시기심이 없는 것으로 형을 인정하고 즐겁게 함께 논한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비록 용렬하고 비루할 지라도 또한 어떻게 형에게 구하면서 억지로 떠들며 그치지 않겠습니까? 대개 음성(陰城)의 〈정절사전(鄭節士傳)〉이 믿고서 근거로 삼은 것은 오직 조헌경의의 편지인데, '모두 변하는 날'은 이미 '즉시 오랑캐가 된다 '는 차기가 있어 근거가 될 수 없으니, 그 시비득실은 여기에서 철저하게 판명이 나서 덧붙여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형은 마침내 또 '대설(帶說)'이란 말로 곡진히 비호하여 그것에 큰 장애가 없음을 찾았으니, 버린 것이 다 버리지 못하고 따른 것이 다 따르지 못해서 확연히 크게 공정하여 사물이 오면 순응하는주 35) 사체에 해가 있음을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매우 괴이합니다. 무릇 '대설'이라고 하는 것은, 예컨대 '해(害)'를 말하는데 '이해(利害)'라고 하고 '급(急)'을 말하는데 '완급(緩急)'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그 뜻은 갑에 있는데 을을 겸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음성이 지은 〈정절사전〉의 주의는 실로 단지 상구의 "천하가 오랑캐가 되어도 유자는 오랑캐가 되지 않을 수 있다.[天下夷而儒能不夷]"고 운운한 데 있고 하구의 "천하가 중화가 되어도 유자는 중화가 될 수 없다.[天下華而儒不能華]"고 운운한 데 있지 않은데, 형은 중점에 상구에 있고 하구는 '대설'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저의 견해로 논하면, 상구에 "천하가 오히려 중화가 되었다.[天下猶華]"고 하고,하구에 "천하가 곧바로 오랑캐가 되었다.[天下卽夷]"라고 하였는데, 상구는 오히려 느슨하고 하구는 가장 긴급하니, '유(猶)' 자와 '즉(卽)' 자로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중점이 하구에 있고 상구는 '대설'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저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자로(子路)가 "들으면 실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부형(父兄)이 계시니, 어찌 들으면 실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염유(冉有)가 "들으면 실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들으면 실행하여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주 36) 만약 형에게 단지 진덕자수(進德自修)만을 권하고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고 부정한 의론을 배척하도록 권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로에게 "들으면 실행해야 한다."고 권하고 염유에게 "부형이 계신다."고 경계하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무함을 변론하고 부정한 의론을 배척하는 것으로 형에게 권하고 진덕자수로 권하지 않는 것은 곧 공자가 염유에게 "들으면 실행해야 한다."고 권하고 "부형이 계시다."고 권하지 않았던 뜻입니다. 제가 비록 한심하지만 또한 오히려 옛 도를 행하고 있습니다. 형이 이내 선을 권하는데 선후와 경중의 순서를 잃은 것으로 병통을 삼는다면 이것은 아마도 말한 사람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고 아울러 스스로 살피는 도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편의를 차지한다.[占便宜]"에서 "허다한 안배가 있다.[許多安排]"까지는 오늘날 선비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논한 것이니, '매견(每見)' 두 글자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주 37) 그런데 형은 기어코 암암리에 자신을 비난한 것으로 간주하여 세 가지 모두를 범한 것으로 잘라 말하니, 실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형은 자수(自修)함에 있어서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노력하는 바탕이 되는데 방애되지 않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이와 같겠습니까? 또한 만약 그만두지 않고 굳이 형에게 말할 것을 찾아본다면 이른바 "편의를 차지한다."는 것은 아마도 조금 제거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여기시지 않습니까?
대개 이 음성의 〈정절사전(鄭節士傳)〉에 의론은 이미 대체적으로 같아졌으니, 사소한 완전히 합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저는 깊이 우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찌 전혀 뜻밖에도 형은 마침내 이른바 '불언지교(不言之敎)'에 대해서 "스승을 무함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단정을 했다가 갑자기 음성이 변론한 편지를 보고서 10년간 유지해온 정견(定見) 속히 바꾸고 "증거가 매우 분명하고 명백하여 꾸며서 지은 것은 아니다."고 하여 저도 모르게 간사한 자와 당을 같이하고 스승을 무함하는 죄과에 빠졌습니다. 이 무슨 변괴란 말입니까? 너무도 괴이합니다. 형은 또 시험 삼아 오진영이가 서모(徐某)에게 준 편지 첫머리의 "문집 발간의 세 가지가 불가함을 말씀해 주었는데, 그 첫 번째는 진실로 그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제가 바다를 건너가려고 하다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내온 편지에 비록 제가 발의하여 처음 시작을 했다고 하였지만 그 앞서 여러 벗들이 의정(議定)하였으며, 사실은 원래 선사의 '불언지교(不言之敎)'을 따랐습니다."고 한 글을 쭉 한 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세 가지가 불가한 것 가운데 그 첫 번째 진실로 그러한 점이 있다."고 한 것은 진실로 인간(認刊)을 청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바다를 건너가려고 하였다."는 것은 내가 인간할 뜻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서 여러 벗들이 의정하였다."는 것은 여러 벗들이 먼저 인간하는 의론을 정했다고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선사의 불언지교(不言之敎)를 따랐다."는 것은 선사가 원래 인교(認敎)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합해서 말을 하면, '나는 처음부터 인간을 청할 뜻이 없어서 심지어 바다를 건너가서 분명히 하려고 했는데 다만 여러 벗들이 먼저 인간의 뜻이 있어 인간의 의론을 정했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랐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 벗들도 반드시 인간하려는 뜻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사가 원래 인의와 인교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벗들도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세(語勢)와 문의(文義)가 어찌 이와 같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대체로 그 정신과 계교는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데 한절이 한절보다 긴요하여 차차로 미루어 나아가 선사의 신상에 이르러서는 더는 갈 곳이 없어서 빠져 나올 수가 없게 하였습니다. 그는 이를 통하여 '나는 원래 분명하고 여러 벗도 그러한 뜻이 아니었으며 실은 선사가 원래 이 가르침이 있었으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천하 후세에 보였습니다. 그러니 천하 후세의 이 문장을 보는 자는 그 누가 선사에게 인의(認意)와 인교(認敎)가 있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그의 수필(手筆)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공론(公論)을 지키는 자는 모두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단언하였고, 형도 또한 "선사를 무함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은 어찌 이전에는 곧았다가 뒤에는 더럽혀지고 이전에는 병이 나았는데 뒤에는 병이 도져서, 당일의 원래 편지가 본디 그 자신의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망각하고 단지 후에 그의 말을 꾸며서 죄를 회피한 의서(擬書)만을 믿고서 이런저런 말을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또 형이 "증거가 명백하여 꾸며서 지은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선사가 명백하게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선사가 가르침이 있고 제자가 받들어 행하는 것은 본디 광명한 사업이고 진실한 도리인데, 또 "스스로 담당한 것이 부족하였다."고 한 것은 또한 무슨 말씀입니까? 부족하다고 한 것은 과연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듣고 싶습니다. 또 형이 "증거가 명백하여 꾸며서 것이 아니다."고 한 것은 이른바 의서(擬書)가 나온 것으로 말한 것에 불과했으니, 의서를 보기 전에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단죄한 것은 진실로 자연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몇 년 동안 긍정과 의심을 결정하지 못하고 매번 스스로 생각하고 헤아렸다."고 한 것은 또한 무슨 일 때문이었습니까? 또한 듣고 싶습니다. 또한 형은 이미 무함한 것으로 죄를 정한 지 10년이 된 일에 대해 오진영의 편지 한 통을 보자마자 "증거가 매우 분명하고 명백하여 꾸며서 지은 것이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진영이 원재(遠齋)에게 답한 편지에 "'개(改)' 한 글자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증거가 매우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선사의 원고를 고치지 않았다고 믿으십니까? 또한 듣고 싶습니다.
이미 편지를 쓰고 보내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천리는 더욱 어두워지고 인심은 더욱 사악해져서 십 년 전의 시절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는 무함을 변론하는 의리에 해처럼 밝고 서리처럼 엄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네모진 것을 깎아서 둥글게 만들고 혼자를 두려워하여 무리에게 달려가 도도하게 날마다 음성의 소굴로 귀의하여 얼굴을 바꾸는 것을 꺼리지 않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서는 도리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지금은 음성과 화합을 해야지 배척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심지어 "따름의 많고 적음으로 사리의 가부를 점쳐야 한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송나라 조정에서 화친 여부를 전후하여 의견이 달랐던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이 주자가 일찍이 지금과 옛날의 인륜과 인심의 밝고 바름의 여부를 가지고 반복해서 탄식했던 것입니다. 아, 오늘날의 일이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형은 비록 이상의 일반 사람이 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또한 의론이 나뉜 것은 있었고 운운한 것도 문성보(文聖甫)와 비교하면 심하였습니다. 또 "나는 반드시 놀라고 화를 낼 것이나 미리 두려워 숨을 죽였다."고 했으니, 그 자기의 견해를 자신하여 확고하게 바뀔 수 없는 뜻이 말 밖으로 넘쳤습니다. 시세(時勢)를 굽어 살펴보고 성의(盛意)를 우러러 살펴보면 제가 어찌 "의견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제 입으로 꺼낼 수가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편지를 놓아두고 보내지 않은 것이 한 해가 지났습니다. 다만 생각해보면, 형은 저에게 평범한 교분이 아니고 바로 친척이 아닌 형제입니다. 지금 이렇게 논쟁하는 것은 또한 평범한 의리가 아니고 바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큰 윤리입니다. 제가 형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구하지 않는 것은 제가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형을 구하는데도 따르지 않은 뒤에야 저는 유감이 없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건대 옛날에 김사긍(金士兢)은 제가 거듭 형을 깨우쳐서 마침내 "선사를 무함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정견을 갖게 한 것에 대해 벗의 도리에 성분(性分)을 다한 것이라고 일컬으며 크게 흠복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형이 스스로 한 것이지 제가 힘을 써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벗의 도리에 성분을 다한 것은 그랬다고 자평합니다. 그때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는데, 지금 형이 갑자기 이전의 생각을 뒤집고 선사를 무함한 당에 귀의한 큰일이 이전에 시비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완전히 무관심하게 구해내지 않는다면, 이른바 전날의 벗의 도리에 성분을 다한 것이 지금 어디에 있겠습니까? 충심을 끝까지 바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이미 말할 겨를이 없거니와 또한 어찌 김사긍의 비웃음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침내 다시 편지를 보내어 밝게 살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니, 우리 형은 헤아려주기 바랍니다.
- 주석 35)확연히……순응하는
- 정호(程顥)의 《정성서(定性書)》에 "군자의 학문은 확연히 크게 공정하여 사물이 오면 순응하는 것보다 더 좋음이 없다[君子之學은, 莫若廓然而大公, 物來而順應]"라고 하였다.
- 주석 36)옛날에……하였습니다
-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보인다.
- 주석 37)그리고……있습니다
- 앞서 보낸 편지에 "매번 변론에 소홀하고 배척에 느린 자를 보면 마땅히 변론하고 마땅히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소홀하고 느린 것은 소홀하고 느린 부정한 마음이 그 당연한 것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편이함을 차지하고 기쁘게 하는 것을 도모하며 들추어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등 여러 가지 안배가 있게 되니, 더욱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答吳士益 丙子
承惠覆,仰悉以鄙論"極言云云"爲無傷,趙書"皆變之日"與"卽夷"不同,果皆如玄狂所道者,旣以自幸弟之不得罪於兄,亦以奉幸兄之不見欺於彼也.講論之畢,竟益人有如此者,益知兄"不須說往說來"之云爲一時之未思也.雖然,如非兄舍己從人之盛,亦安得以致此哉? 此弟前日所以以無偏忮許兄而樂與之論者也.否者,弟雖庸陋,亦何所求於兄而强聒不舍哉? 蓋陰傳之所恃而爲據者,惟趙書也,而"皆變之日",旣與"卽夷"有異而不足爲據,則其是非得失,卽此可以到底判明而無俟乎添足也.兄乃又以"帶說"之云曲護之,求其無大礙,無乃所舍者未盡舍,所從者未盡從,而不免有害於廓然大公物來順應之體耶? 甚可異也.夫"帶說"云者,如言害而曰利害,言急而曰緩急,意在甲而帶乙說之類是也.今此陰傳主意,果但在於上句"天下夷而儒能不夷"云云,不在下句"天下華而儒不能華"云云,而如兄所重在上句,下句是帶去說之云者乎? 論以弟見,上句云"天下猶華",下句云"天下卽夷",上句尙虛緩,下句最緊急,觀以"猶"字"卽"字可知,寧可曰所重在下句,上句是帶去說,則宜矣.此等,弟敢曰直是不成說,已之已之.
昔者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若勸兄但以進德自修,而不以辨師誣斥邪論,則是猶勸子路以"聞斯行之",而戒冉有以"父兄在"也,焉能濟事? 其必以辨誣斥邪勸兄,而不以進德自修,卽孔子勉冉有以"聞斯行之"而不以"有父兄在"之意也.弟雖無似,亦猶行古之道也.兄乃病以責善失先後輕重之序,此恐不知言者之意,幷失自察之道矣.至於"占便宜"以下"許多安排"之云,則是泛論今士者,於"每見"二字可見.兄必看做暗斥自家,而質之以均犯三者,無得脫色耶? 極爲悚悚.然在兄自修,則不妨爲有改無勉之資矣,何必乃爾? 且若無已而索言於兄,則所謂占便宜者,恐有些未祛.未知以爲然否?
蓋此陰傳之論,旣得大體之同,則小小之未盡合,吾不須深慮.夫何千萬料外,兄乃於所謂"不言之敎",旣斷以"不可不謂誣師"者,忽見陰辨之書,亟改十年之定見,謂"證據甚明而非白撰",不覺終陷於黨邪誣師之科,此何變也? 此何變也? 絶可怪也.兄且試將震與徐初書劈頭"垂喩刊集事三不可,其第一則誠有然矣.故鄙欲越海而不得矣.來喩雖謂賤子發論創始,其先諸友議定矣,其實原從先師不言之敎也"之文,一口氣讀下來.其曰"三不可,其第一誠有然"者,非誠以請認爲不可之云乎? 其曰"鄙欲越海"者,非我無認意之云乎? 其曰"其先諸友議定"者,非諸友先定認議之云乎? 其曰"原從先師不言之敎"者,非先師原有認敎之云乎? 總而言之,則我則初無認意,至欲越海淸楚,而但諸友先有認意而定認議,故我不得己而從之也,然其實諸友亦非必有認意,先師原有認意認敎,故諸友亦不得不從也.語勢文義,豈不分明如此乎? 蓋其精神機關,少無虛疎,一節緊一節,次次推駈,到先師身上,更無去處,使之脫出不得,以示我原淸楚,諸友亦非其意,實以先師原有是敎,而不得不從之意於天下後世,天下後世之觀此文者,其孰不以先師有認意、認敎乎? 惟其渠之手筆如此,故凡持公論者,莫不斷然以爲誣師,雖兄亦謂"不可不謂誣師"者,此也.兄何先貞而後黷,先瘳而後病,忘勘當日原書之本出自心者,只信後來擬書之飾辭逃罪者而有所云云也? 是必有其故也.且如兄所云"證據明而非白撰",則是先師明有是敎也.先師有敎而弟子奉行,自是光明事業眞實道理,而又云"欠其不自擔"者,又何說也? 蓋其所欠者,果指何事? 願聞之.且兄之云"證據明而非白撰"者,不過以所謂擬書出也,不見擬書之前,斷以誣罪者,宜固自若也.而其云"伊來幾年,然疑未定,每自思量"者,又緣何事? 亦願聞之.且兄於旣定誣罪十年之久者,才見震之一書,證據甚明而非白撰.然則震答遠齋書云"改之一字,非吾所知",此亦可謂證據甚明而信其不改師稿歟? 亦願聞之.
旣作書將發,更思之,今天理益晦,人心益邪,非復十年前時節.前日之日昭霜嚴於辨誣之義者,今焉削方爲圓,畏獨趍衆,而滔滔日歸於陰窟,不憚改頭換面而爲二截人, 反大言之曰"今日則陰可和而不可斥",至謂"以從違之多寡卜事理之可否"者,有若宋朝和否前後異議.此朱子所嘗以今昔之人倫人心明正與否,反覆歎息者也.嗚呼! 今日之事,何以異此? 若兄者雖與以上一般人所爲有異,然亦不免貳論則有,而所云云視文聖甫有加.又謂"我必驚怒而預切悚息",則其自信己見確乎不拔之意,溢於言外.俯觀時勢,仰察盛意,吾何能有爲"不須說往說來"之說,今可還發於我口也? 以是置不發書者,歲已改矣.但念兄之於我,非尋常交分,乃非親之昆季也.今此所爭,又非尋常義理,乃師生之大倫也.我意兄之不從而不救,是我不盡分,我救兄而不見從,然後我可以無憾矣.記昔金士兢謂我再三喩兄,終致其"不可不謂誣師"之定見,稱之以性於朋友,而大加欽服.此蓋兄之自致,非吾有力.然其盡性分於友道,則自謂然.而伊時尙如此,今見兄之忽翻前案而歸誣黨之大事,非前日是非未定之比而己者,乃恝然不爲之救出,則所謂前日之性於朋友者而今安在? 自慙獻忠不卒,已不暇言,亦豈不爲士兢所笑乎? 是以卒復發書,冀垂明察,幸吾兄諒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