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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 서(書)
  • 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趙子貞 戊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7.0001.TXT.0020
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
부모가 외지로 나가셔서 그 죽음을 알지 못하는 경우, 자식이 상복을 입고 제사를 행하는 기일에 대하여 선배들이 논한 것이 똑같지 않습니다. 혹은 나이 100세로, 혹은 나이 80세로, 혹은 10년을 찾았는데도 찾지를 못하는 경우로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저의 견해로는 마땅히 해당인의 건강했는지 병들었는지, 도로가 험한지 평탄한지, 인심의 후한지 박한지, 탐색의 엉성했는지 정밀했는지를 가지고 서로 참고하여 결정을 해야지,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상황이 궁하고 희망이 끊어져서 더는 목숨을 구할 수 없게 되어야만 상복을 입고 제사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대의 중부(仲父) 어른은 집에 있었을 때 병으로 혼미함이 이미 심했고, 나이도 84세가 되었고, 집을 나간 지 6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난세로 인심도 박하고 나쁘니, 사세로 헤아려볼 때 생존해 있을 이치는 전혀 없습니다. 또 큰 아들이 61세이고, 둘째 아들도 60세에 가까워서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니, 그들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는다면 다시 누가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상황이 궁하고 희망이 끊어진 경우입니다. 영백(令伯)이 이런 상황을 좇아서 발상(發喪)하여 상복을 입고자 하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제(忌祭)의 날짜는 세속에서는 모두 집을 나간 날짜를 씁니다. 그러나 이 어른은 집을 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만나 본 명확한 근거가 있어서 그 예를 따르기 어렵습니다. 영백의 회갑일은 바로 부모가 길러주신 은혜에 대해 자식으로서 의당 갑절 비통할 때이니, 이날로 정한다면 아마도 옳을 듯합니다. 이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초종(初終)의 의식처럼 일찍이 입으셨던 상의를 가지고 초혼(招魂)을 하고, 주인(主人) 이하는 머리를 늘어뜨리고 상복으로 갈아입고 음식은 먹지 않으며, 의식대로 영좌(靈座)를 설치합니다. 이튿날엔 머리를 묶고 백건(白巾)을 씁니다. 4일째에 조전(朝奠)을 올리고 성복(成服)를 합니다. 성복을 하기 전에는 매일 한 차례 전(奠)을 올리며 곡소리를 그치지 않으며, 성복을 할 때에 사유를 갖추어 고합니다. 한 달이 지난 뒤에 날을 택하여 신주(神主)를 세우고, 졸곡(卒哭)을 한 다음에 부제(祔祭)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答趙子貞 戊寅
父母出外,不知所終者,其子爲之服喪行祭之期,前輩所論不一.或以年壽百年、或以八十年、或以求之十年不得爲斷.然淺見當以當人之病健、道路之夷險、人心之厚薄、探索之疎密,參互而決之,不可以歲年之久近爲斷也.要之情窮望絕,更無求性, 然後乃可服喪行祭矣.
如尊仲父丈,在家病昏已甚,且壽爲八十有四,出爲六年之久,加以亂世人心薄惡,度以事勢,萬無生存之理.且長子六十一歲,其次亦近六旬,皆朝暮之人,一朝溘然,更誰求之? 此正所謂情窮望絕者.令伯從之欲發喪受服,不其然乎?
其忌祭之日,則世俗皆用出去日.然此丈則出去後,亦有有人相見之的據,難從其例.令伯氏周甲日,是父母劬勞人子當倍悲痛之時,用是日爲定恐宜.是日早起,以曾經上衣招魂,如初終儀,主人以下,披髪易服不食,如儀設靈座.明日,括髪著白巾.第四日朝奠成服,成服前,每日一奠,哭不絕聲.成服時,具由告辭.間一月,擇日立主,行卒哭祔祭.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