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6
  • 서(書)
  • 임자경 장우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林子敬章佑 ○乙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6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6.0001.TXT.0028
임자경 장우에게 답함 을해년(1935)
존자의 편지가 깊이 선사의 원고 수정본이 음성 오진영에 의해 파괴된 것을 가슴 아파하시고 이를 유훈에 근거하여 그 죄를 처단해서 말하기를, "이 유훈이 얼마나 정중한 것인가? 그런데 그가 감히 멋대로 스스로 고치고 삭제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으니, 선사의 영령이 마땅히 어떻게 여기시겠는가? 이는 유문의 큰 변란으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은 물을 것도 없다. 이것을 방치한다면 어찌 선생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공정하고 의리가 바르고 의론이 적확하면 저 사람의 사나운 간담을 파괴시킬 수 있고 중간에 선 자들의 나약함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인가를 지시하셨다는 무함하는 말은 자연 말로 한 것의 가벼운 과실로 귀결되었으니, 그대로 놔두고 따져 묻지 않아도 괜찮다." 하신 말씀에 이르러서는 삼가 더욱 의혹스럽습니다. 붓으로 쓰지 않은 것을 말로 한 것이라고 하고 큰 죄가 아닌 것을 가벼운 과실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구하여 고의로 범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행하여 큰 해로움이 없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대로 놔두어 따져 묻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오진영의 무함은 그렇지 않아 입으로 한 말 뿐만이 아니라 손으로 쓴 글도 분명하니, "선사께서 헤아려서 하라고 지시하셨다."는 말은 사실 선사의 '말로 하지 않은 지시[不言之敎]'를 말하며, 유서가 출현함에 미쳐서는 또 그 유서를 두고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땅에서 솟았는가? 크게 의심스러워할 만하니, 어찌 계집종이 전하는 석서(石書)주 53)와 같은 짓을 두려워하겠는가?" 하였으니, 정재의 유서를 가리켜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함한 사람은 존엄한 부사(父師)이고 무함한 일은 평생의 대절이니, 실정을 말하면 고의로 범한 것이고 범한 것을 말하면 큰 죄가 됩니다. 이 무함을 변론하지 않는다면 선사는 선사가 되지 못할 것이니, 어찌 그대로 놔두고 따져 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선사에게 도의가 없다고 말하는 자는 비록 선사를 모를지라도 오히려 시비를 아는 자가 되는 것엔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부류의 사람들이 "만약 인가를 청하는 작은 일로 구속을 받는다면 군자의 대도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을 본다면, 그대의 글이 참으로 무함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또한 공자와 주자 이래로 《춘추》와 《자치통감강목》의 의리까지 아울러 모조리 뒤집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음성의 오진영이 무함을 행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것이 세교에 해로움이 되는 것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집사의 마음이 오싹하니 서늘해지지 않겠습니까? 인가를 지시했다는 무함과 원고를 고친 것은 죄가 모두 용서할 수 없는데 마침내 인가를 지시했다는 무함이 무거운 것은 어째서입니까? 원고는 본래 화도수정본이 있어서 고친 흔적을 가릴 수 없으나 무함은 심사(心事)를 밝히기 어려워 유서를 가리켜 위조하고 말하니, 가릴 수 없는 것은 종내 바름으로 귀결될 날이 있을 것이나 밝히기 어려운 심사는 더럽혀지는 누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렇고, 또 원고를 고친 것은 문자의 의론과 관련이 있으니 의론이 잘못되는 것은 혹 군자가 되는 데에 해롭지 않지만 인가를 지시했다는 무함은 평생의 도의와 관련이 있으니, 도의가 없다면 장차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한다면 그 죄의 경중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주석 53)계집종이 전하는 석서(石書)
이 글은 오진영의 선사 무함을 변척하는 재통문에 나오는 글로, 의미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석서는 석개(石介)의 편지로, 간신 하송(夏竦)이 석개를 모함하기 위해 위조한 편지를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는 유서를 위조된 것으로 보아 비유한 듯하다.
答林子敬章佑 ○乙亥
尊喩深以師稿手本之被陰之所壞爲痛, 據之遺訓, 而勘斷厥罪曰: "此其爲訓, 何等鄭重, 而彼乃敢任自改削, 無少忌憚.先師之靈, 當以爲如何? 此爲儒門大變, 不可置之勿問, 此而置之, 豈可曰先生弟子乎? 凡此心公義正論確, 足以破彼悍膽, 而起間立者之懦矣." 至於所謂"認誣之說, 自是歸之語言薄過, 雖置之不問, 可也"之喩, 竊滋惑焉.夫非筆書之謂語言, 非大罪之謂薄過, 求之於心而非故犯, 行之於世而無大害, 則如此者, 斯可以置之不問也.今震也之誣, 則不然, 口言不啻, 手筆的確, 謂"先師敎以料量爲之", 謂其實先師不言之敎.及其遺書出也, 則又謂之"從天降耶? 從地出耶? 可疑之大者, 何憚爲女奴石書習," 靜齋遺書不可指以爲有, 所誣之人, 則父師之尊嚴也, 所誣之事, 平生之大節也.語其情, 則故犯, 語其犯, 則爲大罪, 此誣不辨, 則先師不足爲先師, 豈可以置之不問者乎? 不寧惟是.其謂先師無道義者, 雖不識先師, 而猶不害爲知是非者.有一種人見謂"如以請認之小節爲拘, 則非君子之大道也", 高足之筆, 信不誣矣, 此又并與孔朱以降《春秋》《網目》之義, 而盡行翻案者, 皆由陰誣之行也.其爲世敎之禍害, 果何如也? 執事有不凛然心寒者乎? 大抵認誣改稿, 罪俱不容, 而畢竟認誣重, 何也? 稿自有華本, 掩不得改迹, 誣, 難明心事, 指遺書謂僞, 不掩者, 終有歸正之日, 難明者, 易致點汙之累, 此旣然矣.且改稿, 關文字之議論, 議論之失, 或不害爲君子, 認誣, 係平生之道義, 道義之無, 其將謂何? 二者相準, 其罪之輕重, 果何如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