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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 서(書)
  • 정재 전장에게 보냄 을축년(1925) 3월(與靜齋田丈 乙丑三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5.0001.TXT.0060
정재 전장에게 보냄 을축년(1925) 3월
보내주신 편지의 숱한 내용이 오진영과 화해한다는 주장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삼가 제 생각으로는 화해〔和〕라는 한 글자를 글 첫머리에 제목으로 둘 것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가 만약 흔쾌히 선사를 속인 죄를 자복한다면 수용하여 용서하는 것이 옳으나 그가 화해하자고 말한다면 불가합니다. 이에 우리 어른께서 저쪽의 자복을 기다리지 않고 화해를 허락하며 저쪽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가서 만난다면 원한을 푸는 것을 급히 하고 부모를 잊는 것을 쉽게 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우리 어른의 동빙한설〔冬氷雪〕같은 엄함으로 어찌 홀연 점진적이지 않은 따스한 바람과 단비를 지으신단 말입니까? 삼가 싹트고 자라는 공은 보지 못하고 도리어 재앙을 초래할까 두렵습니다. 아, 우리 어른의 이번 일은 이익에 유혹되어서도 아니고 재앙이 두려워서도도 아닙니다. 오로지 진실로 양쪽을 수습해서 뒷일을 도모하려는 데에서 나왔으니, 그 마음과 형세의 측은함을 어찌 모른다 하겠습니까? 다만 문집을 간행하고 비석을 세우는 등의 일은 후인들이 선사를 높이 받드는 것일 뿐이고, 도의와 지절은 선사를 선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선사의 뒷일을 도모하고자 하면서 먼저 그 선사가 되게 하는 도의와 지절을 깨뜨린다면 비록 문집이 천하를 두를 만큼 많고 큰 비석이 백 척 높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선사의 실상이 있고 없음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일이 바른데서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 동쪽을 수습하려다가 서쪽이 흩어지고 처음을 도모하려다가 끝이 망가지는 꼴이 되어버리는 데이겠습니까? 우리 어른께서 만약 옛 덕을 간직하여 확고하게 지켜서 사당(邪黨)을 엄히 배척하고 시비를 밝게 판정한다면 반드시 인심이 모두 복종하고 후사가 이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나 만약 한번이라도 저들이 스승을 무함한 죄를 흔쾌히 자복하기 전에 저들과 화합한다면 선사를 아는 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간옹의 도의는 이처럼 우뚝한데, 아들 아무개는 처음에는 음성의 속임수를 배척하다가 마침내는 음성 쪽에 붙어 아부하니, 삼패문(三悖文)주 186)이 아무개를 배척한 말이 전부 허언은 아니구나." 할 것이며, 선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오진영이 죄를 자복하지 않았는데 아무개가 먼저 그 그릇됨을 깨닫고 화해를 구걸했다. 그렇다면 은행나무 아래에서 홀로 명을 받았다는 것은 오진영이 속인 것이 아니라 간옹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고, '심히 구애될 필요 없다'는 말도 오진영이 속인 것이 아니라 간옹을 실제로 그런 말을 했고, 신해년의 유서는 간옹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아무개가 위조한 것이다. 간옹의 의리 없음이 이와 같구나!" 할 것입니다. 우리 어른이 천추에 죄를 짓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입니다. 선사가 영원히 다른 사람의 의심을 면하지 못한다면 지하의 원혼이 그 억울함을 언제나 씻을수 있겠습니까? 우리 어른의 현명함으로 어찌 조금도 이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우리 어른께서 일찍이 조카 사인(士仁 전효일)에게 편지를 보내 정모(鄭某)의 화해설을 비난하시며 "오늘 선친을 배반하고 내일 천사만종(千駟萬鐘)주 187)을 얻을지라도 만약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이 이익에 유혹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일이 천사만종보다 그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전에 엄히 꾸짖었던 화합을 허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연사(練祀)에 참여한 제공에게 올린 편지에서 "만약 의외의 일이 있다면 제가 마땅히 자임하고 제공들에게는 누를 끼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이것으로 어른이 재앙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오늘날 오진영이 고소한 재앙은 우리 어른만 홀로 당하고 여러 사람들이 감당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찌 갑자기 제공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뜻을 굽혀 홀로 당하지도 않은 화를 미리 염려하신단 말입니까? 우리 어른께서 보낸 그간의 문자가 산처럼 쌓여있고 백세의 공론이 우레처럼 매서운 데다가 또 이로운 바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으며 후사에 유익할 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고달프게 이전의 절개를 버리고 기꺼이 오늘날 사람들과 후세 사람들의 의롭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으려 하십니까? 절대로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호라, 제가 스스로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변론하고 성토하는 일에 종사하다가 마침내 저들 무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욕을 당했습니다만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속담에도 있으므로 한바탕 웃음거리로 치부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어른이 갑자가 태도를 바꿈에 이르러서는 스승의 무함을 씻느냐 마느냐가 크게 관련되어 있는 만큼 한번 고하고 두 번 고해서 들어주지 않으시면 마땅히 세 번을 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을 고하면 이미 자주 간하는 것이 되어 혹여 우리 어른께서 저를 소원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또한 훌쩍훌쩍 울고 싶을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우리 어른은 친히 선사의 유서를 받은 사람이니 어찌 이 지경에 이를 리가 있겠습니까? 구구한 저의 근심이라 결국엔 지나친 염려가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보내주신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어른이 저들에게 죄를 자복하도록 하신 것이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하지 않고 다만 선사께 누를 끼친 것으로 하고, 저들이 묘에 고하고자 하는 것도 무함한 것을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을 허물하는 것일 뿐인데, 우리 어른은 또한 시간이 지나면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께서 전날 힘을 다해 오진영을 성토한 것은 다만 선친에게 누를 끼쳤기 때문이고 선친을 무함했기 때문이 아니며, 다만 저들이 스스로 실수한 허물 때문이고 선사를 무함한 죄 때문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반복해서 생각해도 끝내 우리 어른의 의중을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망연하여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살펴 답장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석 186)삼패문(三悖文)
3인의 패륜적 문건으로 오진영의 주장에 동조하여 그의 우익을 자처한 최원(崔愿), 김세기(金世基), 정운한(鄭雲翰)의 서신을 말한다.
주석 187)천사만종(千駟萬鍾)
사(駟)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뜻하며, 종(鍾)은 용량의 단위로 한 섬에 해당한다. 따라서 천사만종은 아주 많은 봉록을 가리킨다.
與靜齋田丈 乙丑三月
下喩, 縷縷無非和震主意, 竊以爲和之一字, 劈頭已是不著題.彼若快服誣師之罪, 則容而赦之, 可也, 其曰和之, 則未可也.乃吾丈不待彼服而許和, 不待彼來而往會, 不幾乎急於解仇, 而易於忘親乎? 以若吾丈大冬氷雪之嚴, 何其忽作無漸之和風甘雨也? 竊恐不見生成之功, 而反致災戾也.噫, 吾丈此擧, 非爲利誘也, 非爲禍怵也.亶出於收拾兩邊, 用圖後事, 則其情勢之戚, 豈云不知? 但刊稿竪碑等事, 後人之尊奉先師也, 道義志節, 先師之所以爲先師也.欲圖先師之後事, 而先破其所以爲先師者, 則雖文匝環海, 豐碑百尺, 其於先師之實之無有焉何哉? 而况事不出正, 人不見服, 將收之東而散之西, 圖之始而敗之終乎? 吾丈若能食舊而貞, 嚴斥邪黨, 明定是非, 則必見人心之翕服, 後事之利濟也.若一與彼和於快服誣罪之前, 其知先師者則必曰: "艮翁道義, 若是其卓, 其子某, 始斥陰誣, 而終焉比附陰邊, 三悖文斥某之言, 不是全虛.", 其不知先師者則必曰: "震不服罪, 某先覺其非而乞和, 然則杏下獨命, 非震之誣, 艮翁實有之, 不必深拘, 亦非震誣, 艮翁實有之, 辛亥遺書, 非艮翁手筆, 某之僞造也, 若是乎艮翁之無義也." 吾丈之得罪千秋, 猶是小事, 先師而永不免人疑, 則泉下之寃, 何時可雪? 以吾丈之明, 豈不少念乎此乎? 吾丈曾與令姪士仁書, 斥鄭某和好之說, 不曰: "今日背先人, 明日得千駟萬鐘, 苟有人心者, 何可爲也乎?" 吾以是知丈之不爲利誘也.但未知今日之事, 有何大於千駟萬鐘者, 而許前日嚴斥之和乎? 又呈練祀諸公書, 不曰: "若有意外之事, 則某當自任而不累諸公"乎? 吾以是知丈之不爲禍怵也.但今日震訴之禍, 未必吾丈之獨當.而諸人之不擔, 何遽屈不累諸公之志, 預慮不獨當之禍乎? 吾丈前後文字, 山堆如也, 百世之公論, 雷厲如也.且無所利也, 無所怵也, 無所益於後事也, 何苦而欲棄前節, 甘受今與後不義之斥乎? 絶不敢知也.鳴呼, 生不自量度, 從事辨討, 竟遭罔測之辱於彼輩, 賊反荷杖, 諺或有之, 付之一笑者久矣.至於今日吾丈之忽然改度, 師誣洗否之大關係焉, 一告再告而不見聽, 則當三告, 三告則已數, 而或遭吾丈之疎遠.念到于此, 又欲啜其泣矣.雖然吾丈是親受先師遺書之人, 豈有至此之理? 區區之憂, 知其終屬過慮也.但細觀下喩, 吾丈所以敎彼服罪者, 不以誣師, 而止以累師; 彼之所欲告基者, 不以服誣, 而止以引咎, 而吾丈又望其時月見效.然則吾丈前日盡力討震者, 但以累親, 而不以誣親, 但以彼自失之咎, 而不以誣師之罪乎? 反覆思惟, 終不識吾丈之意, 則又惘然無以爲懷也.綂賜深鑑, 下答千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