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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 서(書)
- 원재 이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0월(答遠齋李丈 乙丑十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5 / 서(書)
원재 이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0월
이제 어른이 첨좌(僉座)에 보낸 편지를 보니, 영남에서 문집을 발간하는 일을 논한 대목에 "유훈을 지키는 것은 진실로 바뀌지 않을 떳떳함이지만 일은 또한 때에 맞게 경중(輕重)함이 있다."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미 바뀌지 않을 떳떳함이라고 말했다면, 이것은 이른바 중용의 도요 천하의 이치로 다시 더할 것이 없는데, 마침내 다시 일종의 때에 맞게 경중하는 도가 있겠습니까? 또 선사께서 남기신 유서는 진실로 때에 따라 의리를 재단하고 저울질하여 경중을 맞추어 순수하게 중정(中正)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이나 선사께서 살아계셨을 때주 89)나 다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른께서 마침내 감히 유서를 가볍게 여기고 인가를 받아 발간하는 것을 중하게 여겨 말하기를, "이것은 때에 맞는 의리이다." 하시니, 그렇다면 선사의 유훈은 진즉 시중(時中)의 의리에 어두웠던 것이고, 또 말하기를, "여러 군자는 성인이 회통(會通)을 관찰하여 행한 전례(典禮)주 90)를 어기지 말라." 하시니, 선사께서 만난 지위의 고하는 자연 후세의 상론(尙論)주 91)이 있겠지만, 우리 제자들 입장에서는 선사를 믿기를 성인처럼 해도 들은 것을 높이고 아는 것을 행하는 도에 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어른께서는 마음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당락을 이미 결판지어 마침내 말하기를, "나는 성인을 따르고 감히 우리 스승을 따를 수 없다." 하시며, 심지어 인가를 받아 발간하는 것을 성인이 회통을 관찰하여 전례를 행한 일이라고 하기까지 하시니, 그렇다면 이것은 선사의 유훈이 진즉 회통을 관찰하여 전례를 행함에 어두워서 성인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제자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선사의 이 유훈은 구구절절 오묘한 도이고 글자마다 정밀한 의리여서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되지 않을 것이니, 선사가 선사가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께서 삼십 년 동안 망극한 은혜를 입었고 또 선사께 직접 유간(遺簡)을 받아 손때가 변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변모주 92)처럼 여겨서 버리고 저 쪽을 숭상하여 성인의 도라 여기니, 전날 가려 숨겼던 실상이 여기에 이르러 다 노출되어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애석하게도 당년에 붉은 글씨로 옥 같은 문장을 써서 선택하여 정중하게 부탁한 일이 헛수고가 되었으니, 훗날에 무슨 낯으로 지하에 계신 선사를 배알하겠습니까?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하고 검사국에 고소한 것은 이미 이루 다 벌줄 수 없고, 이제 마침내 진주에서 발간을 행하여 또 죄가 한층 더해졌는데, 어른께서 처신하시는 바가 이와 같으시니, 이에 오진영과 화합하고 오진영을 위로하는 것이 바로 진심이고, 오진영으로 하여금 죄를 인정하게 한다는 것은 엄호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깊이 알았습니다. 할 말을 다하여 서로 바로잡지 않으면 도가 드러나지 않으므로주 93) 감히 이렇게 우러러 고합니다. 어른께서 잘 살펴 깨달아서 생각을 바꾸어 함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지 감히 서로 꾸짖고 탓하여 혐의와 노여움을 사려는 것은 아닙니다.
- 주석 89)선사께서 살아계셨을 때
- 저본은 "先師時時"로 되어 있는데, 문맥으로 볼 때 "先師在時"인 듯하여 이에 의거해 번역하였다.
- 주석 90)회통(會通)을 관찰하여 행한 전례(典禮)
- 회통은 회합(會合)과 유통(流通)의 뜻으로 엉겨서 막힌 것과 뚫려서 통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성인이 천하의 동태를 살펴보고 회합과 유통의 상태를 관찰하여, 이에 맞게 제도와 의례를 행하게 하였다.〔聖人有以見天下之動,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 나온다.
- 주석 91)상론(尙論)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을 논하는 것으로, 《맹자(孟子)》〈만장 하(萬章下)〉의 "천하의 선사(善士)와 벗하는 것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겨, 또다시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하한다.〔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 주석 92)변모(弁髦)
- 변(弁)은 치포관(緇布冠)으로 관례(冠禮)를 행하기 전에 잠시 쓰는 갓인데 관례가 끝나면 버리고, 모(髦)는 배안에서 자란 황새머리를 잘라 비단주머니에 넣어 머리 양쪽에 묶는데 부모가 별세하면 제거하기 때문에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지 않는 버려지는 물건을 비유한다.
- 주석 93)할 말을……않으므로
- 이 말은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묵자의 제자인 이지(夷之)가 맹자를 만나 토론을 청하자 맹자가 한 말로, 그 주에 "직(直)은 할 말을 다하여 서로 바로잡는 것이다." 하였다.
答遠齋李丈 乙丑十月
今見丈與僉座書, 論嶺刊事有云: "守遺訓, 固是不易之常, 而事又有因時輕重"者.夫旣曰不易之常, 則是所謂中庸之道, 而天下之理, 無以更加者, 乃復有一種因時輕重之道哉? 且先師之垂遺書也, 固因時裁義, 權輕稱重, 而粹然出於中正矣.今日之於先師時時, 未嘗有異也.丈乃敢輕遺書, 而重認刊, 謂"是爲因時之義", 然則先師之訓, 早已昧於時中之義也.又云, "僉君子, 無違聖人觀會通典禮." 夫先師所造地位之高下, 雖自有後世之尙論, 然在吾輩, 則信之如聖, 不害爲尊聞行知之道.
今丈則心幟高揭, 立落已判, 乃曰: "我則從聖人, 而不敢從吾師", 至以認刊爲聖人會通典禮之事, 則是先師之訓, 早已昧會通典禮, 而反聖人者也.是豈弟子之所敢道乎? 蓋先師此訓, 句句妙道, 字字精義, 俟聖而不惑者.先師之所以爲先師者, 正在於此.丈承三十年罔極之恩, 且親受遺簡, 手澤不變, 乃弁髦此棄之, 崇彼爲聖道, 無乃前日掩匿之實狀, 到此盡露, 而欲諱不得耶? 可惜虛勞當年朱筆玉章, 選擇鄭重之託, 未知異日何顏, 拜謁於地下也?
震之誣師, 訴檢, 已不可勝誅, 今之竟行晉印, 又加一層, 而丈之所以處之者, 乃如此, 於是乎, 深知和震吊震, 乃其眞情, 令震服罪, 不過爲遮護也.不直不見, 敢此仰告, 庶望丈之猛省憬悟, 改圖而同歸, 非敢相爲詬病, 而取嫌怒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