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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 서(書)
  • 어떤 사람에게 답함【간재선생을 대신하여 지음】 경신년(1920)(答人【代艮齋先生作】 ○庚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4.0001.TXT.0051
어떤 사람에게 답함【간재선생을 대신하여 지음】 경신년(1920)
보여주신 여러 편을 우러러 읽었습니다. 성인을 존중하는 정성과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가 행간 사이에 늠름하였고, "당우(唐虞)가 되느냐 이적(夷狄)이 되느냐는 사도(師道)의 흥망과 관계된다."는 말씀은 더욱 바꿀 수 없는 명언이니, 어찌 탄복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 가운데 완전하게 갖출 것을 요구한 것은 혹 말씀한 것이 너무 매섭고 시행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니, 군자가 입언(立言)하는 체모를 잃은 듯합니다. 대저 군자가 입언할 때에는 정밀한 의리를 선택하여 그 중도를 얻어야 합니다. 선을 칭찬할 때는 그 실질에 부합해야 하고, 악을 주벌할 때는 그 실정을 얻어야 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준칙이 되고 백대에 드리워도 신뢰가 있게 됩니다. 터럭만큼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지극한 공평함을 잃어서 천지에 세울 수도 없고 인심을 복종시킬 수도 없습니다. 대저 스승이란 만법의 근원이니 군주와 부모의 윤리가 의뢰하여 확립되는 것입니다. 따져서 말해 보면 공자를 능욕한 죄는 마땅히 군주를 시해한 난신적자보다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이미 성인을 비방하고 법도를 무시하는 자에 대해 임금을 무시하고 부모를 무시한 자와 똑같은 죄로 여겼으니, 세 죄를 같은 안건으로 여겼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또 선왕(先王)의 법은, 형은 사형에 그치고 벌은 친속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연해(臠醢), 포락(炮烙), 연좌(連坐), 이족(夷族) 같은 부류는 후세에 폭군들이 남용하여 만든 형벌입니다. 지금 비록 시역(弑逆)한 난적에게 그 형벌을 가중하고 싶더라도 어떻게 오형(五刑)주 118)의 제도 이상을 시행하며 처자식에게 연좌하지 않는 법을 위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의 편지에서 언급한 착전(鑿顚 정수를 뚫어 죽이는 형벌), 추협(抽脅갈빗대를 뽑아 죽이는 형벌) 이하의 모든 악형은 아마 일시의 분노에서 나온 것이고 만세에 통용되는 올바른 법은 아닙니다. 고성선(古成侁)이 사적으로 위고(韋高)를 칼로 죽이려고 했던 것주 119)은 이미 지극히 합당한 일이 아닌데 그것을 끌어와서 오늘날 사용하는 것은, 비록 군부를 죽인 원수는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리에 정확히 맞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자의 죄가 죽일만하면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 우리 군부를 시해한 것과는 사례가 이미 구별되고 형세도 역시 다르니, 절로 천하의 공론에 붙여 그 죄를 성토하여 죽여야 하고, 한 국가의 신하와 한 집안의 자식이 사적인 원수를 갚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이치로 인식하는 재앙은, 아직 그렇지는 않은 데에서 그 극단적 폐단을 말하면 진실로 이와 같은 경우가 있겠지만, 오늘날 이미 그러한 변괴를 지적하여 심리가(心理家)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통론(通論)이 아닙니다. 이런 변괴가 있은 이래로 온 나라 선비들이 학파의 다름과 당파의 다름을 막론하고 모두 마음 아파하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주벌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침내 이런 변괴의 출현에 대해 그 죄를 심리가에게 돌린다면 이것은 외부의 적을 미처 토벌하지도 않았는데 또 하나의 내부의 원수가 생겨나는 것이니, 시무를 이해하고 형세에 통달한 의론이 절대 아닙니다. 이 밖에 '지렁이가 크게 번성한다', '길 위의 벌레가 죽어 있다', '자신과 그 부조(父祖)를 스스로 죽인다' 등의 설은 또한 자못 가혹하고 교묘하다는 문제가 있으니, 아마도 도리어 일반 사람들이 싫어하여 각박한 처사라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주석 118)오형(五刑)
오형(五刑)은 이마에 먹물을 새겨 넣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꿈치를 베는 월형(刖刑),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宮刑), 사형에 처하는 대벽(大辟)을 말한다.
주석 119)고성선(古成詵)……하는 것은
고성선과 위고는 모두 후진 요흥 때 사람이다. 황문시랑(黃門侍郞) 고성선(古成詵)은 천하의 시비를 자기 책임으로 삼았다. 경조(京兆)의 위고(韋高)가 그 어머니 상중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셨는데, 고성선은 그 소식을 듣자 울면서 '나는 마땅히 내 칼로 그를 베어 풍교(風敎)를 높이리라.'하고, 드디어 칼을 들고 위고를 찾으니, 위고는 도망해 숨고, 종신토록 감히 나타나지 못했다한다.
答人【代艮齋先生作】 ○庚申
俯示諸篇, 仰悉.尊聖之誠, 討賊之義, 廪廪乎行墨間, 而至於"唐虞夷狄, 係乎師道之立潰", 尢爲不易之名言, 豈不欽服? 但就中責其全備, 則或者發之太厲, 施之太酷, 有失君子立言之體乎? 夫君子之立言也, 擇乎精義而得其中道, 褒善而當其實, 誅惡而得其情, 放乎四海而準, 垂之百世而信, 毫釐有差, 則失其至平, 而不足以建天地服人心也.夫師者, 萬法之原, 君父之倫所賴而立者, 究而言之, 則衊辱聖師之罪, 宜其重於弑逆之亂賊.然聖人既以非聖無法, 同科於無上無親者, 則三罪之幷案, 又可知也.且先王之法, 刑止于大辟, 罰不及嗣屬, 而若臠醢·炮烙·連坐·夷族之類, 後世暴君之濫刑也.今雖欲重其刑於弑逆之賊, 安得以加五刑之制而違不孥之法也? 然則盛喩鑿顚抽脅以下諸惡刑之云, 意其出於一時之憤忿, 而有非萬世之法程也.成侁之欲私刃韋高者, 已非至當之事, 而引之以用於今日者, 蓋雖準於君父讎不共天之義, 然彼罪可殺則可殺矣, 而與親害吾君父者, 類例既別, 體勢亦殊, 自當付之天下之公議, 聲其罪而誅之, 不當如一國一家臣子之報私讎已也.認心爲理之禍, 自其未然而語其極弊, 則誠有如此者; 指今日已然之變, 而謂出於心理家, 則非通論也.自有此變以來, 舉國士子, 無論門路之異、色目之殊, 莫不痛心扼腕, 思有以誅之.今乃以此變之出, 歸罪於心理家, 則是外賊未及討, 而又生出一內讎也, 絕非識務達勢之論也.外此蚯蚓大榮、路上僵蟲與自弑其身及父祖等說, 亦頗傷苛巧, 恐反爲常情之所厭, 而有涉失薄之嫌也.未知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