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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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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金聖九 丙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4 / 서(書)
김성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
4월에 제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7월 3일에 비로소 받았으니, 저를 끝내 멀리 버리지 않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6월 보름쯤에 드린 두 번째 편지는 그 날짜를 계산해볼 때 마땅히 그대의 답장보다 며칠 앞서 도착했을 것 같은데 그대가 보낸 편지에서는 그 편지를 보았다는 말씀이 없으니, 아마 근래의 우체부가 진나라의 은공(殷公, 殷羨)을 배웠기 때문주 61)인 듯합니다. 이 편지에서 이미 제가 진심을 바친다는 뜻과 순수하게 제왕의 예를 쓴다는 의리를 토로하였고, 이전 편지에서 미진하거나 미안한 곳도 대략이나마 다시 진술하여 질문 드렸으니, 이것을 보면 거의 저의 뜻을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가 만약 끝내 중도에 사라진다면 대단히 애석할 것입니다. 얼마 있다가 저의 족형인 김익술이 당신 댁으로부터 와서 지산(志山, 金福漢) 영감의 상사(祥事, 大祥)는 7월 초 정사일에 거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 누누이 말씀드린 것은 다만 선친 영감이 평소에 군신의 의리를 다한 몸으로서 죽은 뒤에 군신의 예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굽어 저에게 물은 일로 인하여 그대의 귀를 시끄럽게 하는 것을 꺼리지 않은 것이니, 감히 대항하며 의논함으로써 이기고자 했던 건 아닙니다. 삼가 생각할 때 이미 그 상사를 지냈다면 굳이 다시 이 말을 일삼아 훗날에 결국 둘 모두에게 무익하게 될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편지에서 이른바 '강론할 즈음에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살피지 않으면 이것은 사심이고, 스스로 자세히 궁구하지 않고 구차하게 상대방에게 승낙하면 역시 공리가 아니니, 한 점의 사심도 없이 안정된 마음으로 서서히 살피고 피아를 공평히 해야만 오직 옳은 것을 옳다 여길 수 있다'는 말은 물아를 비교하지 않고 다만 의리를 구하는 훌륭한 뜻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감복하게 합니다. 만약 결국 의심을 놓아두고 질문하지 않으면 진실로 도외시하여 정성스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시 대략 거론하여 가르침을 구하니, 잘 살펴서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신 편지에서는 "능묘에서 제향을 하여 사가에서 제사를 멈추고 시일을 미루어 2개월 후에 이른다면, 이것은 아마도 의리에 따라 새로 만든 예인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천자는 7개월 만에 장사지낸다는 것은 예경에 보이고, 장사지내고 졸곡 한 이후에 크고 작은 제사를 행한다고 한 것은 국전에 보입니다. 예경과 국전의 명확한 근거가 있으니, 어찌 의리에 따라 새로 만든 예가 되겠습니까? 대단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굳이 5개월과 7개월을 말할 필요는 없으니 능묘에서 제향을 행했다면 신하와 민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평순하여 미안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저 사람이 강제로 3개월이나 혹은 1개월 뒤에 졸곡을 하라고 했을 때, 능묘에 제향을 했다면 또한 마땅히 '능묘에서 이미 제향을 했으니, 굳이 1개월과 3개월을 말할 필요가 없고 신하와 민가에서는 연제와 상제를 행하더라도 미안한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이런데도 오히려 미안함이 없다 한다면 제가 어찌 감히 다시 말하겠습니까?
편지에서는 "저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혐의가 있어 그대로 연제와 상제를 행할 수 없다고 한다면, 부장과 부졸을 말할 필요가 없고. 비록 예를 갖추어 장례와 졸곡을 하는 것이 오로지 저쪽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라도 꺼릴 것이 없지 않다."고 했는데, 이 또한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쪽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겸연쩍다 말한 것은 그들이 47일장과 105일 졸곡을 강제로 명함으로써【지금은 비록 3개월 장과 5개월의 졸곡을 말하더라도 사실은 47일과 105일입니다.】 우리 군주를 폄하하고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7개월 만에 장례를 치르고 아홉 차례의 우제를 한 이후에 졸곡을 하여 제왕의 예를 순수하게 사용하기를 한결같이 우리가 우리 군주를 존중하는 것처럼 한다면, 어찌 반드시 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으로 그것을 어기고 반드시 9개월 만에 장사지내는 것을 기간으로 삼고 우제를 11번 지낸 이후에 졸곡을 하여 예경에도 없는 내용으로 존중을 표한 이후에야 저들을 따른다는 혐의가 없겠습니까? 또 말하기를, "반드시 간옹(전우)이 사적으로 장례와 졸곡의 날짜를 배격한 것처럼 한 연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라고 했는데, 이것은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천자가 7개월 만에 장례를 치르고 우제를 아홉 번 한 이후에 졸곡을 하는 것은 성인이 만든 예경의 상례입니다. 선사가 무오년의 대상에서 다음해의 늦여름을 사용한 것은 바로 예경에 근거하여 우리 천자를 존중하기 위해서이니, 어찌 사적으로 배격했다고 말하며, 어찌 타당하지 못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간옹이 행한 것이 마음에 불안하다면 반드시 저 사람이 명령한 것을 공정하다 여겨 마음이 편안하다 여기는 것인가?"라고 한다면 장차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보낸 편지에서는 제 편지에서 '차라리 조정의 5개월이라는 전례에 따르는 것만 못하며, 만약 이번에 정한 것을 따르면 크게 구차하게 된다'는 설에 대해서, 저들이 정한 제도를 쓰는 것이라고 이르고, 조정의 전례를 따르는 것은 왕통(王通)의 심적론(心跡論)주 62)에 가깝다 하고, 또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따르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역시 제가 아직 견해가 철저하지 못하고 의론이 확실하지 못한 것으로, 단단한 제1등의 도리로써 다른 사람에게 고하지 못하여 그대의 꾸짖음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대는 오래도록 상사(祥事)를 정지하고 있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 반드시 저들이 정한 졸곡을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효성스런 생각을 안타깝게 여겨 '기왕에 5개월을 사용하여서 졸곡을 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조정의 전례를 따라서 쓰고 이번에 정한 것을 따라 써서는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무녕(無寧, 차라리)'이라는 두 글자는 이미 '지극히 타당하다'는 뜻이 아니니,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따른다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로 실상에 맞지만, 마음은 여기에 있는데 행동은 저기 가서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마음과 행적이 같지 않은 것은 이미 유자의 일이 아니니, 제가 비록 못났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이런 내용을 당신에게 교시하겠습니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의리로 말한다면'이라는 부분으로부터 '구차하게 잠시 경황이 없을 때 하는 예를 따를 수 없다'라는 부분에 이르는 말씀이 바로 이른바 제1등의 지당한 도리이니, 삼가 승복합니다.
보내 온 편지에서 "간옹은 저들이 인산을 정하고 하관을 하는 때에 과연 망곡의 예를 했는가? 했다면 저들이 정한 장례를 인정한 것이고 행하지 않고 기다렸다면 인정과 예법의 결여가 무엇이 이것보다 심하겠는가?"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대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불현 듯 말한 것입니다. 성복과 졸곡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니, 우리의 도로 본다면 다만 타당함만 구할 뿐입니다. 하관의 경우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관하여 땅으로 들어갔다면 천리의 관점으로나 인정의 관점으로나 어떻게 통곡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이번의 통곡은 더욱 심한 측면이 있으니, 그것은 예월(禮月)에 미치지 못하고 저들에게 핍박을 당하여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의리는 분명해서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제 그날에 망곡한 것을 가지고 저들이 정한 장례를 인정했다고 여기니, 그대의 밝은 견해가 잠시 흐려져 이 지경에 이르렀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또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어떤 집에 초상이 났는데 저들에게 핍박을 당하여 24시간 안에 매장하는 제도를 강행했다면 통곡하며 울부짖고 가슴을 치면서 죽고자 해도 죽을 곳이 없겠습니까? 아니면 태연히 통곡하지 않으면서 나는 저들이 우리 부친을 장례지내는 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통곡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까? 한번 답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주석 61)우체부……때문
- 인편에 부친 편지가 도중에 사라졌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떠오를 것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 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 주석 62)왕통(王通)의 심적론(心跡論)
- 수나라의 학자인 왕통이 동상(董常)에게 "마음과 행적이 다른지 오래되었다.[心迹之判久矣.]"라고 말한 것으로, 왕통의 저서인 《중설(中說)》 권5 〈문역(問易)〉에 보인다. 이 주장은 정이(程頤)에게 난설(亂說)로 배척되었는바, 정이의 말은 《근사록(近思錄)》 권13 〈변이단(辨異端)〉에 보인다. 왕통(584~617)은 수나라의 학자로 자는 중엄(仲淹), 시호는 문중자(文中子)로 당나라의 천재시인 왕발(王勃)의 조부이다. 문제(文帝) 인수(仁壽) 연간에 장안(長安)에 와서 태평십책(太平十策)을 상주했는데, 채택되지 않자 하분(河汾) 일대로 돌아와 제자를 가르쳐 설수(薛收)와 방교(房喬), 이정(李靖),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등 1천 명이나 되는 제자를 길렀다.
答金聖九 丙寅
七月初三日, 始拜所答四月惡札, 深感不終遐之惠, 而六月望間所呈再書, 計其日, 應逮惠覆前幾多日, 而示中無見書之敎, 豈近日郵吏, 學得晉之殷公耶? 是書也既暴區區效忠之意, 純用帝禮之義, 前書中未盡未安者, 亦畧更陳奉質, 觀此, 庶可悉賤子意見.此若終歸浮沈, 則殊可惜也.既而鄙族兄翊述氏, 從仙庄來言 志山令監祥事, 以七月初丁巳行云.蓋鄙之初度縷縷, 只恐以先令監平日, 盡君臣之義之身, 身後之有未盡君臣之禮者, 故因俯詢之及, 而不憚煩聒, 非敢與抗論求勝也.竊自以爲既已過祥, 則不必復事此言, 以求後時無益之歸一也.近偶更諦觀, 示中所謂講論之際, 自有己見, 不察人言, 是私心, 自不細究, 茍相然諾, 亦非公理.無一點間氣, 平心徐察, 公彼我, 惟是是之之語, 其不校物我, 但求義理之盛意, 令人感服.若遂置疑而不質, 實爲自外而不誠, 故茲復畧舉求敎, 幸惟清鑑卒惠.
來書曰: "陵廟有享而私家廢祭, 遷延至于二箇月, 則恐涉義起." 蓋天子七月而葬, 見於禮經, 葬而卒哭後, 行大中小祀, 著於國典, 禮經․國典之明據, 胡爲義起? 深所未喩也.又曰: "不須說五月七月, 陵廟有享, 則臣庶家祭之, 平順無未安." 假使彼人勒令三月或一月而卒哭, 而陵廟有享, 則亦當曰陵廟既有享, 不須說一月三月, 臣庶家練祥行之, 無未安乎? 此而猶曰無未安, 則鄙何敢復言?
來書曰: "從彼之令有嫌, 不可因行練祥, 則莫須說赴葬赴卒, 雖備禮葬卒, 此專出於彼人, 亦不無嫌, 此又不省所喩也.嫌於從彼之令云者, 正以其勒令四十七日葬百五日卒哭,【今雖曰, 三月葬, 五月卒哭, 其實四十七日百五日.】 而貶壓吾君故也.若七月而葬, 九虞後卒哭, 純用帝禮, 一如吾之所以尊吾君者, 則何必以出於彼而違之, 必如九月而爲葬期, 十一虞後卒哭, 加尊以禮經所無者, 然後乃無從彼之嫌乎? 又曰: "必如艮翁之私排葬卒之日, 然後乃安於心乎?" 此又不然.天子七月而葬, 九虞後卒哭, 聖人禮經常典也.先師於戊午大喪, 用翼年季夏者, 正所以據禮經, 而尊吾天子也, 何可謂私排? 何可謂不安乎? 若有人曰: "以艮翁所行而不安於心, 則必以彼人所令爲公定, 而安於心乎?" 則將何以答之?
來書以鄙書無寧依朝家五月前例, 若依今番所定, 大涉茍且之說, 謂用彼定之制, 而云依朝家前例者, 近於王通心跡之論, 又謂未免茍且徇人, 此亦賤子未能見徹論確, 不以斷斷第一等道理告人, 而以來高明之誚也.蓋高明以久停祥事爲未安, 而必欲用彼定卒哭, 故區區憫其孝思, 而曰既欲用五月而卒哭, 則無寧依朝家前例而用之, 不可遵今番所定而用之云尒, 無寧二字, 已非至當之意, 則其謂茍且徇人, 誠著題, 而謂之心於此而迹於彼則未也.心跡不同, 已非儒者事, 鄙雖無狀, 安敢以此敎高明也? 來書自以執事所執之義言之, 至不可茍從一時未遑之禮也, 正所謂第一等至當道理者, 敬服敬服.
來書曰: "艮翁於彼定因山下玄宮時, 果行望哭禮耶? 行之則許彼之卜葬, 不行而留俟, 情禮之缺, 孰甚於此?" 此殆高明不思而遽發也.成服卒哭, 自我行之, 在我之道, 只求其當而已.至於下玄宮, 非我力之所能, 如何? 然玄宮入地, 其在天理․人情, 安得不痛哭? 况此痛也, 尢有甚焉, 爲其不及禮月, 而爲彼所迫也.此義昭然, 不難知也.今乃以此日望哭, 爲許彼卜葬, 不圖明見之乍蔽至此也.且道人家有喪, 爲彼所迫, 強行二十四時埋葬之制, 將痛哭號擗, 欲死無地乎? 抑將恬然不哭, 而曰吾不許彼之葬吾親, 故不哭也乎? 願下一轉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