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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 서(書)
  • 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오년(1918)(上艮齋先生 戊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01.0001.TXT.0024
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오년(1918)
리(理)는 무위(無爲)의 물(物)이고 기(氣)는 유위(有爲)의 물이니, 유위와 무위의 사이에서 하나는 취산(聚散)이 있고 하나는 취산이 없음주 86)을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대개 리기(理氣)를 하나의 물(物)이라고 하는 것은 리와 기 두 가지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 묘함 때문이지만 그 본색(本色)과 능소(能所)주 87)의 구분은 끝내 뒤섞을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논하면, 문청(文淸 설선(薛瑄)이 이른바 '기는 취산이 있지만 리는 취산이 없다[氣有聚散 理無聚散]'라고 한 것주 88)은 본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리기가 서로 떨어지는 병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암(整菴 나흠순(羅欽順))이 이른바 '기의 모임은 바로 모임의 리이고, 기의 흩어짐은 바로 흩어짐의 리이다[氣之聚便是聚之理 氣之散便是散之理]'라고 한 것주 89)은 도리어 도(道)와 기(器)의 분별에 있어 뒤섞이고 흐리멍텅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만약 기가 모일 수 있고 흩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모이고 흩어지는 소이(所以)로서의 리가 있기 때문에 기의 취산이 곧 리의 취산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근원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곧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태극(太極)의 동정(動靜)과 회옹(晦翁 주희(朱熹))의 리(理)는 동정(動靜)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주장을 세운다면 아마도 이치를 해치지는 않을 듯한데, 삼가 헤아려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86)하나는……없음
취산이 있는 것은 기(氣)이고 취산이 없는 것은 리(理)라는 말이다. 《회암집(晦菴集)》 권45 〈답요자회서(答廖子晦書)〉에서, 주희가 생사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며 이(理)와 기(氣)의 차이를 논한 대목에 "성은 단지 리일 뿐이니,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모이면 태어났다가 흩어지면 죽는 것은 기일 뿐이니, 이른바 정신과 혼백에 아는 것이 있고 느끼는 것이 있는 것은 모두 기의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면 있게 되고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리의 경우는 당초 모이고 흩어지는 데에 따라서 있게 되고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性只是理 不可以聚散言, 其聚而生, 散而死者, 氣而已矣. 所謂精神魂魄有知有覺者, 皆氣之所爲也. 故聚則有, 散則無, 若理則初不爲聚散而有無也〕"라고 하였고, 나흠순(羅欽順)의 《곤지기(困知記)》 권하(卷下)에서, "설문청(薛文淸)의 《독서록(讀書錄)》에 '리기는 틈이 없으므로 기(器) 역시 도(道)이고 도 역시 기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합당하지만, 기는 취산이 있고 리는 취산이 없다는 설을 반복하여 증명한 일로 말하자면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 무릇 하나는 취산이 있고 하나는 취산이 없으면 매우 틈이 있는 것이니 어찌 기 역시 도이고 도 역시 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문청(文淸)이 리기에 대하여 또한 시종 두 물(物)로 인식하였으므로 그 말이 때때로 막힘이 있음을 면치 못한 것이다.〔錄中有云理氣無縫隙故曰器亦道道亦器, 其言當矣. 至於反復證明, 氣有聚散, 理無聚散之說, 愚則不能無疑. 夫一有一無, 其爲罅縫也大矣. 安得謂之器亦道道亦器耶? 蓋文清之於理氣, 亦始終認為二物, 故其言未免時有窒礙也〕"라고 하였다.
주석 87)능(能)과 소(所)
能과 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원래 能은 주체를 의미하고, 所는 객체를 의미한다. 理氣論에서는 能과 所를 구별하여 말하기 어렵지만, 심성론에서는 心과 性을 能과 所로 구별할 수 있다. 즉 心은 性理를 알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能이고, 性理는 心에 인식당하기 때문에 所인 것이다. 心은 氣에 속하기 때문에 氣 역시 能이고, 理는 性이기 때문에 역시 所인 것이다.
주석 88)문청(文淸)이……것
설선(薛瑄)은 그의 《독서록(讀書錄)》에서 리를 달에 비유하고 기를 물에 비유하며, 리를 햇빛[日光]에 비유하고 기를 나는 새[飛鳥]에 비유하며, 리를 온열량한(温熱凉寒)하는 소이(所以)에 비유하고 기를 온열량한(温熱凉寒)에 비유하는 것을 통해 기는 취산이 있지만 리는 취산이 없음을 증명하였다.
주석 89)정암(整菴)……것
《곤지기(困知記)》 〈권하(卷下)〉에서 기는 취산이 있고 리는 취산이 없다는 설선(薛瑄)의 설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나흠순(羅欽順) 주장한 설이다.
上艮齋先生 戊午
理者無爲之物, 氣者有爲之物也, 有爲無爲之閒, 聚散之一有一無, 可知已矣. 蓋理氣一物云者, 以其二者不相離之妙也, 其本色能所之分, 終有不可得而混之者也. 以此論之, 文淸所謂'氣有聚散, 理無聚散'者, 是從本色上說, 而不爲理氣相離之病. 整菴所謂'氣之聚便是聚之理, 氣之散便是散之理'者, 反不免混淪儱侗於道器之辨也. 若曰氣之能聚能散者, 以其有所以聚, 所以散之理也, 故曰氣之聚散, 便是理之聚散, 則此乃從源頭上說, 而卽濂溪之太極動靜, 晦翁之理有動靜之意也. 如此立言, 則恐不害理, 伏惟裁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