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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 서(書)
- 간재선생에게 올림 정사년(1917)(上艮齋先生 丁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 / 서(書)
간재선생에게 올림 정사년(1917)
선비(先妣)의 가장(家狀)에 제발(題跋)을 지어 주신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은혜를 베푸신 것이니 제 목숨을 다하여도 갚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선비(先妣)의 아름다운 행실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선생님의 성대한 덕이 남의 선행을 즐겨 말하셔서일 것입니다. 아! 저의 어버이는 효경(孝敬)과 인선(仁善)의 덕이 있으셨지만 불행히도 장수와 복록(福祿)을 누리지 못하고 궁핍한 삶에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씀과 아름다운 행적이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의 글을 얻어 영원토록 불후하게 되었으니 비록 한이 없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이 있고 없는 사이에서 저는 장차 어떤 마음을 품어야겠는지요? 오직 도를 밝히고 몸을 깨끗이 하여, 안으로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실질을 갖추고 밖으로는 성현(聖賢)의 학문을 계승한다면 어찌 스승과 어버이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이후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더욱 궁구하고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더욱 힘써서 도가 밝아지고 몸이 깨끗해지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감히 태만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이 때문에 근년 들어 추위와 굶주림이 몸에 사무칠수록 구렁에 시체로 뒹굴겠다는 조수(操守)는 더욱 굳건해지고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재앙이 박두할수록 머리를 잃겠다는 지조(志操)는 더욱 굳세집니다.주 81) 이는 감히 말만 잘하여 선생님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차마 더없이 소중한 유체(遺體 어버이가 남긴 몸)를 더럽고 욕된 지경에 빠뜨리지 못해서입니다. 이런 의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만날 일을 기다렸다가 대처할 뿐입니다. 다만 일상에서 말하고 행할 때에 마땅히 강구(講究)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눈만 뜨면 바로 잘못 보고 걸음만 옮기면 번번이 발을 헛디뎌서 심중(心中)에 위태롭고 불안한 생각이 많고 안정되고 여유로운 의취(意趣)가 적음을 느낍니다. 무릇 이렇게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상 생활의 엉성한 일들조차도 이와 같으니, 장차 어떻게 천하의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고 천하의 위대한 사업(事業)을 세우겠습니까?
아! 만약 이 일에 뜻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더욱 마음을 기울이려고 하면서도 더욱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심력(心力)을 열심히 써서 분비(憤悱)주 82)를 이기지 못하는데 끝내 스승을 받들고 어버이를 드러내지 못할까 두려워서 감히 스승님께 숨기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일로 여겨 살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긴요하지 않은 외람된 말로 여겨 버리시겠습니까? 선비(先妣)의 행록에 '집안의 부녀(婦女)를 가르친다[敎內眷]'는 교훈이 있는 데 이르러서는 더욱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이에 언해(諺解)를 올립니다만, 말이 비속(卑俗)하고 전아(典雅)하지 않아 부끄럽고 송구할 뿐입니다.
- 주석 81)추위와……굳세집니다
-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공자가 이르기를 '의지가 굳은 선비는 곤궁하여 자기 시체가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하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주석 82)분비(憤悱)
- 분(憤)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悱)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논어(論語)》〈술이(述而)〉에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上艮齋先生 丁巳
先妣家狀蒙賜題跋, 恩出不圖, 隕首莫報. 此蓋先妣之懿行, 有以感夫人心, 而先生之盛德, 有以樂道人善也. 鳴呼! 小子之二親有孝敬仁善之德, 不幸而不壽祿, 窮約困瘁而終, 此固可恨矣. 然嘉言美蹟, 幸而得先生筆, 而不朽千載, 雖謂之無恨, 可也. 然則有恨無恨之間, 小子將何以爲心? 惟有明道淑身, 內有立揚之實, 外紹賢聖之學, 豈非少報師親之恩者乎? 從玆以往, 益究其所未知, 益勉其所未能, 誓到明淑之地, 而不敢怠也. 是故比年來凍餓切膚, 而溝壑之操愈堅, 焚坑迫頭而喪元之志愈勵, 非敢能言以欺先生. 實不忍以莫重之遺體, 置諸汙辱之地也. 此箇義諦, 旣已知之, 第俟前頭所值而處之. 但日間云爲之際, 所當講究而踐行者, 開眼便錯見, 擧步輒失足, 覺得心中杌楻不安之意多, 妥帖自在之趣少. 凡此日用粗跡易知易行者, 尙如此, 將何以窮天下之至理, 建天下之大業乎? 噫! 苟無志於此事則已, 其欲益加意, 而益不能者, 何也? 小子以此, 煞用心力, 而不勝憤悱, 懼終無以承師而顯親, 敢以不隱乎皐比之下, 不審先生以爲由中之出而察之乎? 抑以爲不緊猥言而棄之乎? 先妣行錄, 至有'敎內眷'之訓, 尤切感激, 茲諺翻呈上, 而但詞語俚俗不雅是爲愧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