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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인수록(鈍人隨錄)
둔인수록(鈍人隨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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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생애와 『둔인수록』 편찬 경위1. 생애『둔인수록』의 저자 김진휴는 본관은 광산光山이요, 자는 용여龍汝며, 호는 둔암鈍庵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된 문연文淵이요. 어머니는 설씨薛氏이니, 현絢의 딸이다. 1807년 7월 15일에 태어나 광주光州에서 거주하였다.김진휴는 1834년 식년시 병과 10등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다. 1854년 강원도 지역인 보안찰방保安察訪(종6품) 벼슬을 지내다가 8월 9일 강원도 암행어사 강난형姜蘭馨의 소견으로 강릉부사江陵副使 송단화宋端和 등을 탄핵한 일에 연루되어 죄를 받기도 하였다. 1864년 부사직副司直(종5품)에 제수되고, 이어 장령掌令(정4품) · 부호군副護軍(종4품)에 제수되었다. 이 해에 임금이 군덕君德을 기르는 일과 시무時務에 대한 십조목十條目을 진달하는 상소를 올렸다.1867년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는데, 10월 29일 폐장閉場할 무렵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의 재변이 보이자 일념으로 임금이 학문에 전념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에 연명하였다. 1868년 헌납獻納(정5품) 벼슬로 죄를 받았다. 이때 임금은 대사간 이인설李寅卨 등의 파직 전지에 대하여 추고만 하라고 전교하였다. 1872년 4월 홍국영洪國榮에게 노륙孥戮의 형전刑典을 시행할 것을 장령掌令 민치양閔致亮 등과 청請하였다. 이어 효시梟示한 죄인 이성세李性世에게 처자식까지 처형하는 형벌을 시행할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873년 헌납獻納(정5품)으로 다시 제수되었다. 이어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에 가자加資 되었는데, 이는 헌납 김진휴에게 특별히 가자하라는 전지를 받는 것이었다. 1875년 1월 병조참의兵曹參議(정3품)에 제수 되었다. 그해 6월 세자궁이 동여動輿할 때 배종한 춘방 등 이하의 별단에 시상하라는 전교가 있었는데, 이때 내하 장피獐皮 1령을 사급 받았다. 1876년 행 부호군 가선대부行副護軍嘉善大夫(종2품)에 가자되어 부총관副摠管 등을 역임하였다. 이 해에 아버지 김문연金文淵은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고, 할아버지 김달명金達明은 좌승지左承旨, 증조할아버지 김성휘金成輝는 사복시司僕寺에 추증되었다. 1877년 4월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곧이어 5월에 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제수되어 벼슬에 나아갔으나, 6월에 병환이 들자 10월에 병조참판의 사직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81년에 잦은 병환으로 인하여 행行 호군護軍으로 감하減下되었다. 1887년 11월 20일에 죽으니, 향년 81세의 일기였다.2. 『둔인수록』의 편찬 경위『둔인수록』은 「호문구虎文狗」를 권수卷首로 시작하여 「과오간수문망훈련원유감過五間水門望訓練院有感」을 권말卷末로 구성한 필사본 형태의 전체 13권으로 되어있다. 책 1면의 크기는 21자×10행, 전체 1701면으로 357,210자이다.그의 유고는 애석하게도 후손이 아직 정리하지 않아 문집으로 간행되지 않았다. 저자가 처음 시작詩作하고 나서 시간을 따라 농촌의 모습이나 경물을 보고, 그 감회를 그때그때 기록한 글을 모아놓은 필사본의 형태로 현재 그대로 전하여지고 있다. 또한 짐작컨대 『둔인수록』의 마지막 작품 「과오간수문망훈련원유감」 이후 저술한 작품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나, 아직 발견되거나 찾지 못하여 증명 할 길이 없다. 따라서 『둔인수록』은 서문과 발문이 없고, 다만 권두卷頭에 저자의 자서自序와 범례凡例가 실려져 있을 뿐이다. 책의 전체적인 작품 구성은 전체 1,548제 2,242수의 시가 『둔인수록』 내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둔인수록』에는 시의 형식은 물론 문체를 따라 구분하여 수록되어 있지 않고, 13권 전체에 여러 문체의 작품이 산재되어 있다.『둔인수록』의 시에서는 김진휴가 광주에서 서울까지 가고 오는 여정에서 그 지역을 지나가며 감회를 읊은 시가 다수 보인다. 이와 같은 부류의 시에서는 그 지역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고, 당시 농촌 생활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농부가 모내기하는 정겨운 모습과 새참을 나누어 먹는 이웃 간의 구수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조과소사평부이앙」 등 다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관동과 관서 두 지역을 유람하면서 누정과 승경勝景을 보고 감회를 읊은 시, 「동정東征」의 100제題와 「서정西征」의 140제, 지난날 동유東遊하면서 옛 유적에서 감회를 노래한 「동유구적東遊舊跡」의 29제에서는 지역에 흩어져있는 누정문화와 지역문화를 아울러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박상朴祥(1474∼1530. 자는 昌世, 호는 訥齋)이 김시습金時習(1435∼1493. 자는 悅卿, 호는 梅月堂·淸寒子·東峰·碧山淸隱·贅世翁, 법호는 雪岑)의 「산거집구백수山居集句百首」에 화운한 시「화동봉산인산거백절和東峯山人山居百絶」에 다시 화운하여 지은 「화박눌재산거백절운和朴訥齋山居百絶韻」 100수, 여관에서 除夕을 맞이한 감회를 평성 운자 30자로 각각 5수씩 노래한 「여사영회삼십운일백오십첩旅舍詠懷三十韻一百五十疊」 150수 등의 장시長詩 여러 편에서는 그가 시의 천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둔인수록』의 산문에는 부賦 · 서序 · 기記 · 명銘 · 논論 · 의擬 · 발跋 등의 다양한 문체의90여 작품이 있다. 그 중 김진휴가 관직생활을 하면서 그날의 政事를 기록한 「척오일기」는 정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직과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사일기'의 유類로 되어 있다. 그 외에도 간찰류로 교우들과 지인들과 주고받은 80여 통의 편지가 있다.한편 김진휴는 『둔인수록』 권두에서 자서와 범례를 통하여 스스로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을 자세하게 밝혀 놓았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자서의 전문을 다음에서 살펴보고자 한다.아! 생명이 생긴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생각하여 오래도록 금석에 전하며 백 대를 보아도 없어지지 않게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성현이나 영웅일지라도 문장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문장이 사람에게 간절함이 천박하고 작은 일이겠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문장을 배우고 싶어 후미진 바닷가 고향에 있으면서 이목을 처음부터 힘쓰고, 과거시험 공부의 중도 과정에서 출발하였는데 이것은 구두공부에 지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하여보면 인생은 참으로 적막하고 공허하다. 명성 없이 문득 100년이 지나면 미래의 사람들이 누가 김둔암이 어떠한 사람으로 살았으며, 어느 세상에서 성공하였으며, 무슨 사업을 하였는지, 알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일은 내게 분수에 넘치나 평소에 지은 글을 주워 모아 가장으로 삼았으니, 나를 아는 사람은 웃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욕하는 것을 나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웃어도 나는 김둔암이오, 욕하여도 나는 김둔암이다. 세상에 웃는 사람과 욕하는 사람이 다 없어지지 않는다면, 김둔암의 명적 또한 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김둔암이 사람들의 웃음과 욕을 당함은 불행이 아니라 바로 행운인 셈이다. 지금 여기 주워 모은 글을 높은 시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아!김진휴는 스스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려면 먼저 유명한 글을 남겨야 함을 말하고 있다. 또 이를 금석에 전하여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 하려면 글이 필요하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때문에 글은 결코 천박하거나 작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후미진 바닷가 고향에서 글을 배우고 싶어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과거시험 공부의 하나인 구두口讀공부였음을 밝히었다.자서 후반부에서는 "김둔암이 사람들의 웃음과 욕을 당함은 불행이 아니라 바로 행운이다."라고 하여 글을 쓰는 이의 겸허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주워 모은 글을 높은 시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글을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김진휴는 이어 범례에서 스스로 『둔인수록』을 남긴 이유를 하나하나 꼬집어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글을 수록隨錄하고나서 다시 정리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도 밝히었다. 한편 김진휴는 자신의 유고에 대하여 후손이나, 후학이 일목요연하게 문체별로 정리하여 문집을 간행해 줄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 범례의 전문을 다음에서 살펴보겠다.첫째, 나이 어려서 지은 글이 많은데, 글에는 더러 길을 걸으면서 강을 건너면서 느낀 의취를 담고 있으니, 보는 사람이 애석하게 여길 수 있다. 게다가 글은 그 해 한 번에 기재하지 않아 지금 찾아보려고 하면, 망양지탄의 학문 같다. 따라서 평일 이목에 전해지고 보아 온 한두 가지 일만 기록하였을 뿐이다.둘째, 과거시험 공부의 문자가 고체에 가깝지 않고, 예전에 한 일을 지금 온전하게 정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략 그 과장에서 시작한 것과 시험관이 점수를 준 것을 취하여 각 문체의 한두 가지를 책 가운데 첫머리로 두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쁘다고 하여 채우거나 뺀 것은 아니다.셋째, 패관·서·발의 문장을 두루 보지 못하였고, 그 문사만 취하여 두었다. 안목이 있는 사람으로 보게 한다면, 문사의 취할 만한 부분은 쉽게 알 것이라고 본다.넷째, 중늙은이의 시어 말이 경솔한 뜻으로 망령되게 지은 글이 많아 선인이 주고받은 시를 취하여 가지런히 하였으니, 주워 모은 글을 탐닉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다섯째, 책명을 오로지 '수록'으로 이름 할 수밖에 없다. 산란하고 통일성이 없는 뜻을 취하였으니, 후학은 이것을 가지고 표준을 삼아서는 안 된다.여섯째, 지금 여기 주워 모은 글은 실상으로 얻은 족족 기록하였으니, 후학 가운데 혹 나의 뜻을 이을 사람이 있다면, 잘잘못을 바로 잡아 같은 형식으로 나누고 모으는 것이 옳을 것이다.김진휴는 범례에서 시종일관 글을 쓰는 이의 입장에서 겸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은 '망양지탄의 학문'이라고 하여 두서없음을 지적하였고, 혹은 '패관·서·발의 문장을 두루 보지 못하였고, 혹은 그 문사만 취하여 두었다.'라고 말하고, 혹은 '중늙은이의 시어 말이 경솔한 뜻으로 망령되게 지은 글이 많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의 말에서 그가 겸허한 태도를 지녔음을 우리는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진휴는 책명을 오로지 '수록'으로 이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혹은 '산란하고 통일성이 없는 뜻을 취하였으니, 후학은 이것을 가지고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과 혹은 '후학 가운데 더러 나의 뜻을 이을 사람이 있다면, 잘잘못을 바로 잡아 같은 형식으로 나누고 모으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그 까닭을 말하는 곳에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말들은 김진휴가 한편으로 내심 자신의 글이 문집으로 간행되어지기를 바라는 글쓴이의 솔직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장점으로 보인다.Ⅱ. 『둔인수록』의 내용『둔인수록』의 내용은 너무 방대할뿐더러 현재 문집형태의 분류가 이루어지지 않아 솔직하게 여기서 그 내용을 자상하게 살펴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전체적인 내용을 상세하게 논의하지 못하고, 다만 권1에서 권13까지 작품의 이름만 소개하는 형식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둔인수록』의 권별 내용을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본 바는 다음과 같다.권1에는 호랑이무늬 털의 개를 읊은 오언절구 「호문구虎文狗」 등 시 132제 179수가 있다. 또 전북 고창 선운사의 이모저모와 경관을 기록한 「서유선운록西游禪雲錄」, 태고 천황씨를 천황이라고 부르게 된 명목名目을 논의한 「태고천황씨론太古天皇氏論」, 두 집안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공교롭게도 관상이 같았다. 이에 근거한 관상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말한 「내일용일저율부乃一龍一猪律賦」, 전국戰國시대 맹자孟子의 제자 만장萬章이 순舜임금과 그 아버지 고수瞽瞍와의 관계에서 위로는 부모라고 칭하고, 아래로는 고수라고 칭하는 까닭을 묻고 답하는 형식을 빌려 경서經書의 의난처疑難處를 자문자답하는 「경서변의經書辨疑」가 있다. 이외에도 「동유서석부東游瑞石賦」, 「의한군신 하공수치발해지일 권민농상 사민지도검자 매검매우 매도매독표擬漢群臣賀龔遂治渤海之日勸民農桑使民持刀劍者賣劍買牛賣刀買犢表」, 「패관창선감의록稗官倡善感義錄跋」, 「감몽황우묘부感夢黃牛廟賦」, 「독서내원암기讀書內院庵記」, 「인정필자경계시부仁政必自經界始賦」, 「수습락하시화서收拾洛下詩話序」, 「착빙충충부鑿氷冲冲賦」, 「패관홍백화전서稗官紅白花傳序」, 「서의린재신재書義隣哉臣哉」, 「종미당시 성고재부鐘未撞時聲固在賦」, 「숭정문명崇政門銘」이 있다.권2에는 소를 읊은 「우牛」 등의 영물시詠物詩 다수가 전체의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시 287제 376수가 있다. 또 서남산西南山 아래에서 둔세행의遯世行義하는 군자 최경철崔景喆(호는 訥圃)이 영유永柔로 갈 때 전송하면서 지은 「송영유최경철서送永柔崔景喆序」가 있다. 고시 형태의 월령가 「염십이월괘 영십이월령拈十二月卦詠十二月令」, 「전사십이월가田舍十二月歌」, 본도 옥과현玉果縣에 사는 효자 허서소許瑞素의 부모상 6년을 이어 조부모상 6년을 전후 12년의 시묘廬墓살이를 한 효행과 그의 두 아들 향晑과 앙昂, 일문삼효一門三孝를 본도 유생을 대신하여 예조禮曹에 상소한 「대본도유생등 상예조서代本道儒生等上禮曹書」가 있다. 이외에도 「희용이십팔수 영석류戱用二十八宿詠石榴」, 「희용간지 부매화戱用干支賦梅花」, 「이십팔수가二十八宿歌」, 「납조술회 희우약초 득십오배률臘朝述懷戱寓藥草得十五排律」, 「전하餞夏」, 「독한학노걸대讀漢學老乞大」, 「남정도한강 야숙승방점南征渡漢江夜宿乘舫店」, 「천안로중天安路中」, 「견서원매발수삼타 적독주시 화동파운부매화 칠언고시 수보성팔족見西園梅發數三朶適讀朱詩和東坡韻賦梅花七言古詩遂步成八足」이 있다.권3에는 사문 송학로【공희】의 「죽재에서 노닐며」에 차운한 시 「차송사문학로【공희】유죽재운次宋斯文學魯【孔希】遊竹齋韻」 등 113제 233수가 있다. 이외에도 조카 진사 용만容晩이 사마재司馬齋 집강執綱(책임자)의 말석에서 불감당不敢當한 일을 당하여 광주光州에 사는 지주 조철영趙徹永에게 보낸 편지 「대종자진사용만 상지주서代從子進士容晩上地主書」, 한나라 무제가 어렸을 적에 진오陳午의 딸인 아교阿嬌를 얻어 금옥金玉에 두고 길렀다가, 즉위한 후 그를 황후로 삼아 대단히 총애했다는 고사의 주인공을 주제로 한 「아교阿嬌」가 있다. 「보한시부독서성남운 요기기아겸욱린질 병서步韓詩符讀書城南韻遙寄驥兒兼勖麟姪並序」, 「죽피선竹皮扇」, 「구작행驅雀行」, 「화백곡처 능일이삼체 병인和白谷處能一二三體幷引」, 「화백곡처 능건제체和白谷處能建除體」, 「제아수계서諸兒修禊序」, 「대산막곡 최기중 상지주서 지주견상代山幕谷崔基中上地主書地主見上」, 「대도천면민인등 상지주서 지주견상代陶泉面民人等上地主書地主見上」, 「추화최양암형평숙 우암구화후상감유작 병서追和崔羊巖衡平叔尤庵遘禍後傷感有作並序」, 「노호행老虎行」, 「술회 병지述懷幷誌」, 「칠월망일 흥감사회七月望日興感寫懷」, 「추팔월장환향 여사야등 신구점득 오언장편秋八月將還鄕旅舍夜燈信口占得五言長篇」, 「야헐희점夜歇戱占」, 「뇌뇌음惱惱吟」, 「대향신待鄕信」, 「포서음捕鼠吟」, 「사고시유서謝髙時愈書」, 「독박사암순자화숙유집讀朴思菴淳字和叔遺集」, 「제석除夕」, 「원조元朝」, 「축판사蹴板詞」, 「지연음紙鳶吟」, 「매귀곡埋鬼曲」, 「성학송 병서인聖學頌並序引」, 「매화초개 부용동파운부 득일첩梅花初開復用東坡韻賦得一疊」, 「부용전운부 매화배율復用前韻賦梅花排律」, 「제박눌재유집후題朴訥齋遺集後」, 「화박눌재 산거백절운和朴訥齋山居百絶韻」, 「제후題後」가 있다.권4에는 진사進士 미천薇泉 재현在顯 집에서 종인宗人 사과司果 재헌在獻과 참봉參奉 재학在鶴, 해석옹海石翁 술현述鉉이 모여 시를 지으면서 연회를 즐기며 지은 「미천진사재현사 회제종인사과재헌 참봉재학 해석옹술현 작문주유薇泉進士在顯舍會諸宗人司果在獻參奉在鶴海石翁述鉉作文酒游」 등 시 177제 400수가 있다. 이외에도 박을 심은 농부를 통하여 '박이 그릇을 만들었는가'(瓠之爲器)와 '사람이 그릇을 만들었는가'(人之爲器)를 설명한 「종호자설種瓠者說」, 포동여관匏洞旅館에서 제석을 맞이하여 지은 「포동여사봉제석匏洞旅舍逢除夕」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오월당기梧月堂記」, 「취광재기醉狂齋記」, 「유장불령踰長佛嶺」, 「효자전경백전孝子田耕百傳」이 있다.권5에는 인일人日에 양화楊花를 가기 위해 아현만鵞峴漫을 건너가면서 지은 「인일출양화 도과아현만영人日出楊花渡過鵞峴漫詠」 등 시 143제 186수가 있다. 이외에도 1849년 설날 아침 환갑을 맞이하는 대왕 대비전에 축하의 글을 올린 「원조하전元朝賀箋」, 「타삽음墮箑吟」, 「속자경 병소서續自警箴幷小序」, 영광靈光에 사는 사인士人 노득좌魯得佐의 처 김씨의 열부烈婦 행실을 예조禮曹에 올린 「대본도유생등 상예조서代本道儒生等, 上禮曹書」, 헌종憲宗의 죽음을 애도한 「헌종대왕 만사憲宗大王挽詞」가 있다. 그리고 「묵재기嘿齋記」, 「영포채십육종詠圃菜十六種」, 「고현재기古玄齋記」, 「방헌기放軒記」, 「운계유거기雲溪幽居記」, 「송계헌주인 이군악헌자문 귀대초 서送桂軒主人李君樂獻子文歸大草序」, 「취봉래 병지醉蓬萊幷誌」, 「염박귀가 병인琰珀鬼歌幷引」, 「남가자 병지南柯子幷誌」, 「무곡연명 병소서霧穀硯銘幷小序」, 「오주연명 병소서烏咮硯銘幷小序」, 「마간연명 병소서馬肝硯銘幷小序」, 「취곤륜 병지醉崑崙幷誌」, 「감사불우부 병지感士不遇賦幷誌」, 「억포천김령공윤근백운憶匏泉金令公胤根百韻」, 「억풍계김태정균백자憶風溪金台鼎均百字」, 「팔월십이일 관천창보두시 삼천이십삼운八月十二日觀川漲步杜詩三川二十三韻」, 「옥출위서소실희부 이십일운玉秫爲鼠所失戱賦 二十一韻」, 「야심안심촌夜尋安心村」, 「수초괴림서手鈔瓌林序」, 「태세축백구太歲祝百句」, 「상전장계이판김태수근上銓長啓吏判金台洙根」이 있다.권6에는 1837년 7월 26일부터 1848년 10월 8일까지의 관직에 있으면서 벼슬 생활을 기록한 「척오일기尺五日記」가 실려 있는데, 서두에 「척오일기尺 서五日記 序」와 각각의 일기에는 군데군데 당시 아무개 누가 참관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이는 '사기仕記'가 첨부되어 있다.권7에는 「동정 상東征上」 1편이 있는데, 서두에 「동정 자서東征自敍」가 실려 있다. 1852년 8월 10일 단구丹邱 북문을 출발하여 동년 동월 29일까지의 여정기이다. 동정東征은 금강산 일대 및 동해 지역 100여 곳을 유람하면서 정경을 설명하고, 그 감회를 시로 남기었고 일기를 겸하고 있다. 전체 시 100제 104수가 있다.권8에는 「동정 하東征下」 1편이 있는데, 1852년 9월 1일 신계사神溪寺를 출발하여 그해 9월 15일까지의 여정기이다. 140여 곳의 정경을 찾아 각각 그 경관을 설명하고 시를 남기었고 일기를 겸하고 있다. 권미卷尾에는 안창安昌을 출발하여 돌아오는 날까지 35일이 걸렸고, 거리상 2,220여 리임을 자상하게 밝히었다. 권7과 같이 그 지역의 경관과 누정 등을 읊은 시 170제 180수가 있다.권9에는 서정西征의 여정에서 누정과 승경을 보고 읊은 시 145제 146수가 있다. 이외에도 「서정부 병소서西征賦幷小序」, 「치악사 병소서雉嶽辭幷小序」, 「국향사 병서國香寺幷序」, 「수초미산수렵서手抄眉山蒐獵序」, 「선고비언행실록서先考妣言行實錄序」, 「유치악록遊雉嶽錄」, 「영봉비찬 병비문靈鳳碑贊幷碑文」, 「서동해비첩자후 병비문書東海碑帖子後幷碑文」, 「원천석사실元天錫事實」, 「黃戊辰事實」, 「어서비각 병지御書碑閣幷誌」, 「언고풍이십운言古風二十韻」이 있다.권10에는 홍우신洪祐信·김병학金炳學·김수근金洙根·이근우李根友·윤자일尹滋一·김경신金敬鎭·권기화權基和·박교희朴敎熙·권교정權敎正·이용준李容準·김병고金炳皐·안순安洵·오취선吳取善·엄석제嚴錫濟·이민상李敏庠·최상유崔尙儒·권강權絳·김태수金台秀·민경익閔景翼·송단화宋端和·김진한金雲漢·김옥근金沃根·이직李溭·남대유南大儒·오현규吳顯圭·정이원鄭頤源·송지성宋持性·김세균金世均·김계진金啓鎭·기만箕晩·김문근金汶根·홍기섭洪耆燮·홍재룡洪在龍·김병국金炳國·김보근金輔根·신석우申錫愚·기항箕恒·김익연金翼淵·박수풍朴受豊·이긍식李肯植 등 교우들과 주고받은 56편의 간찰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고악 계축古樂癸丑」, 「고문古文」, 「상청사 병소지上淸辭幷小識」, 「동사요람서東史要覽序」, 「서강수은간양록후 갑인書姜睡隱看羊錄後甲寅」, 「표해록서漂海錄敍」, 「형산신우비가 병지衡山神禹碑歌 幷志」, 「충신엄흥도고사忠臣嚴興道古事」, 「관란정고사觀瀾亭古事」, 「야게오중읍점 병소지夜憩奧中邑店幷小誌」, 「월아별당유감부회 병소서越衙別堂有感賦懷 幷小序」이 있다. 그리고 시 29제 33수가 있다.권11에는 洪家 小亭을 지나가면서 현판에 걸려 있는 시의 운자에 차운한 「과홍가소정 차판상운過洪家小亭次板上韻」 등 시 75제 160수가 있다. 이외에도 영월寧越 기생 고경춘高瓊春의 순절을 기린 「경춘비 병기瓊春碑幷記」, 주천현酒泉縣의 바위 설화 「주천석 병지酒泉石幷志」, 청허루淸虛樓 아래 남당南塘에 있는 「연리촌 병소지連理樹幷小志」, 상원사上院寺 용추암龍湫庵의 설화 「억상원천 부용주천석운 병지憶上院泉復用酒泉石韻幷志」가 있다. 그리고 「평창석륙연가 병소서平昌石六硯歌幷小序」, 「최영전崔瑩傳」, 「단구사실 병소서丹邱事實幷小敍」, 「동유구적 병기東遊舊跡幷記」, 「서곡용추일차기우제축문瑞谷龍湫一次祈雨祭祝文」, 「치악사재차기우제축문雉嶽祠再次祈雨祭祝文」, 「희우가 병소서喜雨歌幷小序」, 「학남비 병소서鶴南飛幷小序」과 간찰 6편이 있다.권12에는 임금의 은혜에 대한 감회를 읊은 「감군은感君恩」 등 시 56제 58수가 있다. 이외에도 김진휴가 보안찰방保安察訪으로 있을 때, 암행어사 강난형姜蘭馨(1813∼?)의 소견召見과 동우東郵의 일로 죄를 받은 상황의 「행로난 병지行路難幷志」가 있다. 그리고 「임금호사실林錦湖事實」, 「임관해사실林觀海事實」, 「강수은사실姜睡隱事實」, 「죽교노인 한석효초갑연 병소서竹橋老人韓錫斅醮甲讌幷小序」, 「억정난하해명憶鄭蘭下海明」의 사실기事實記와 간찰 9편이 있다.권13에는 1856년 늦가을에 운용촌사에서 쉬면서 읊은 「만추게운용촌사晩秋憩雲龍村舍」 등 시 121제 187수가 있다. 이외에도 이조판서吏曹判書 김병학金炳學(1821∼1879)에게 올린 계啓 「상이판계上吏判啓」, 좌의정 조두순趙斗淳(1796∼1870)에게 올린 계 「상좌합심암조상공계上左閤心庵趙相公啓」, 영의정 김좌근金左根(1797∼1869)에게 올린 계 「상영합하옥김상공계上領閤荷屋金相公啓」, 철종哲宗의 사위이자 영돈령부사領敦寧府使인 김문근金汶根(1801∼1863)에게 올린 계 「상영은국구계【영돈령김문근】上永恩國舅啓【領敦領金汶根】」, 영어穎漁 김병국金炳國(1825∼1905)의 어머니, 정경부인貞敬夫人 신씨愼氏의 환갑을 맞이하여 지은 「연하 병지燕賀幷識」이 있다. 그리고 「증병조참판상주리삼억제문贈兵曹參判尙州李三億祭文」, 「남원관류촌 오생기상 방여여우 비설기조언주【호호암운】실행 색여일언료부근체이증지南原官留村吳生基常訪余旅寓備說其祖彦宙【號壺庵云】實行索余一言聊賦近體以贈之」, 「하옥김상공수연荷屋金相公晬宴」, 「대경기유생 상언초代京畿儒生上言草」, 「우사단기행雩祀壇紀行」, 1862년 전부田賦와 군적軍籍과 환곡還穀에 대한 국가의 대정大政을 논한 「삼정책三政策」, 「사교재영은부원군 육십이세진갑시 병서四敎齋永恩府院君六十二歲進甲詩並序」의 산문류와 간찰 6편이 있다.Ⅲ. 김진휴의 시 감상김진휴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전체 시 1,548제 2,242수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자서(自書) 『둔인수록』에 남겨 놓았다. 그의 시를 들여다보면 전체적으로 서경을 노래하면서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져 보인다. 한편 그의 장시에서는 그가 시의 천부적인 자질을 지녔음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본 절에서는 당시 농촌의 현실을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조과소사평부이앙」과 농촌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채소의 모습을 노래한 「영포채십육종」 두 작품을 감상해 보려고 한다.1. 「조과소사평부이앙」의 감상「조과소사평부이앙」은 김진휴가 1834년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고향에 내려왔다가 2년 후 다시 서울로 가는 길 아침에 소사 넓은 들판을 지나며 모내기를 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고 그 감회를 노래한 시이다. 이 시의 형식은 근체시 오언율시이며, 상성上聲 마자馬字 운자로 압운하였으며, 이 시는 『둔인수록』 권1에 실려 있다.혹은 엎드리고 혹은 서서 或伏仍或立백로처럼 무리지어 내려오네. 隊隊群鷺下김매려고 밭에 올라가는 사람 上田耘草人모심으려 논에 내려가는 사람. 下田移秧者열 손가락 노고를 몇 번이나 하면 幾度十指勞여덟 농가 주림 겨우 면할까. 纔免八口餓유식遊食하는 객은 스스로 돌아보고 自顧游食客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네.能不顔如赭시의 화자가 서울로 가던 길에서 바라보이는 들판에 일하는 농부들은 삼삼오오三三五五 무리 지어 놀고 있는 백로처럼 보였다. 한 여름이라 풀이 우거진 밭에 풀을 매려고 올라가는 사람들, 모를 심기 위해 바지를 걷고 논에 들어가는 사람들, 화자의 시야에 농촌의 아침 들판은 여기저기서 모두가 야단법석이다.아침 일찍 길을 재촉하면서도 지나가는 객은 마음의 여유를 부리는가. 밭에서 김을 매고 논에서 분주하게 모를 심는 농부의 노고를 손가락으로 헤어본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짓고는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나 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여덟 식구 끼니를 겨우 면한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비의 마음엔 미안함이 있었나 보다. 부지런히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유식遊食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니, 부끄러운 마음에 절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으니 말이다.경련은 "열 손가락 노고를 몇 번이나 하면, 여덟 농가 굶주림 겨우 면할까."라고 하였다. 여덟 농가 농부의 걱정스런 마음은 있으나 여덟 농가 식구들의 원망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노동요가 멀리서 들려온 듯하다.미련은 시간적 배경이 오전 새참 무렵으로 보인다. 여기저기 논밭두둑에 서서 위아래로 손짓하며 새참을 먹고 잠시 쉬었다 하라고 서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농촌의 한가로운 시골 구수한 인정이 물씬 풍겨온다. 소사의 아침 들판에서 우리 조상들은 삶에서 여유롭게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고단한 농사일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슬기로운 지혜가 엿보인다. 농사가 한창일 때 품앗이는 향약鄕約과 같이 이웃끼리 서로 도와주는 미풍양속이다. 농촌의 농사철 만중한忙中閑의 여유가 있는 들판에는 어느새 풍년가가 들려오고, 농부들은 논바닥에 가득히 들어서서 한 손에는 모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구수한 인정을 들고 서 있었다.2. 「영포채십육종」의 감상『둔인수록』 권5에 실려 있는 「영포채십육종」은 농촌에서 재배되는 채소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혹은 해학으로 노래한 시로, 16종의 채소를 읊은 전체 16수의 작품이다. 시의 소재는 농부가 봄부터 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시간을 따라 농촌의 남새밭에서 심고 가꾸는 채소들이다. 항상 식단에 올라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먹을 수 있는 친근감 있는 채소 16종이다. 그는 「영포채십육종」을 통하여 농촌의 일상적인 생활과 다양한 채소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우리의 식단에 올라오는 채소 16종에 숨어있는 특징을 시의 화자가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살펴보고 감상하려고 한다.뽕나무 그늘 두 이랑 가량桑陰二畝半가랑비 봄바람에 내리네.纖雨下東風추운 겨울 품고 자란 뒤라時蓄玄冬後채소 향내 집안 가득하네.蔬香滿屋中첫째, 「봉비葑菲」다. 이른 봄에 나오는 나물식물 달래를 말한다. 농촌의 산자락 뽕나무밭 어디에서든지 흔히 보이는 나물채소이다. 시의 화자는 기구起句에서 달래가 뽕나무밭 양지바른 쪽으로 두어 이랑 파릇파릇 새싹을 보았다. 달래는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냈을까? 전구轉句에서는 따스한 봄바람에 가랑비가 살짝 내렸다. 화자의 시야에는 시골 처녀가 삼삼오오 앉아 도란도란 나물 뜯는 모습이 시각적 이미지로 선하였다. 달래는 냉이와 함께 봄의 전령사로 알려져 있다. 겨우내 언 땅을 헤집고 뾰족이 나와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다. 결국 시의 화자는 결구結句에서 집마다 풍기는 풋풋한 달래의 봄 향내를 후각적 이미지를 살려 자극하고 있다.고기반찬 없다 걱정하지 않으려고不愁食無肉작은 동산에 아욱 심어두었지.措置小園葵싱싱하기가 마힐摩詰 같아淸淡如摩詰이슬 털고 따러 가네.露中乎折之둘째, 「규葵」다. 채소 아욱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심어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욱은 어린 순과 잎을 따서 국을 끓여 먹거나, 씨를 약으로 사용한다. 씨는 동규자冬葵子라고 하여 한방에서 이뇨제利尿劑로 사용한다. 『향약구급방』에는 규자葵子, 『산림경제』에는 관상식물로 규葵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아욱을 지칭한 말이다.시의 화자는 기구起句에서 아욱국이 고기반찬 부럽지 않다고 하였다. 늦은 봄 새벽에 일찍 일어나 더욱 싱싱한 아욱 잎을 따려고 이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찍이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는 아욱을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네."라고 하였다. 이 시에서 화자는 아침 일찍 구수한 된장국을 끓으려고 남새밭에 아욱을 찾아 나선 것을 알 수 있다.가소롭다 제해자齊諧子可笑齊諧子요주가 부질없이 황당하다고 말하였지.坳舟謾說荒몰랐네 맑고 시원한 기운不知淸爽氣코를 베고 창자를 찌르는걸.斤鼻且鍼腸셋째, 「개芥」이다. 채소 겨자를 말한다. 톡 쏘는 매운맛과 향기가 특징인 겨자는 대부분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어 음식에 두루 활용되고 있는 채소이다.시의 화자는 요주坳舟(겨자)가 황당하다고 부질없이 말한 제해齊諧는 가소롭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제해는 겨자가 톡 쏘는 향으로 코를 베고 창자를 찌르는 맑고 시원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가련하다 너의 천성憐爾性之天크고 단단하고 오래될수록 맵네.高强老逾辣겨우 입에서纔於齒舌間마음이 확 트임을 문득 알았네.頓覺靈臺豁넷째, 「강薑」이다. 채소 생강을 말한다. 『동의보감』 「생강」에서 생강의 효능은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없다. 오장으로 들어가고 담을 삭이며 기를 내리고 토하는 것을 멎게 한다. 또 동한風寒과 습기를 없애고 딸꾹질하며 기운이 치미는 것과 숨이 차고 기침하는 것을 치료한다. (중간 생략) 건강乾薑을 많이 쓰면 정기正氣가 줄어드는데 이렇게 된 때에는 생감초를 써서 완화시켜야 한다." 라고 하였다.시의 화자는 여기에서 생강이 이와 혀 사이, 곧 입에서 우리들의 답답한 마음을 확 트이게 하는 담膽을 삭이는 효능을 강조하여 말하였다. 흔히 겨울철 감기가 오면 사람들은 생강차를 즐겨 마신다.사방 한 치 집 서쪽 밭이랑에方寸屋西畦가는 실은 봄을 맞아 푸르네.細絲春理碧뒤웅박과 꽃을 맺고匏瓜與結芳소반에 묻혀 나를 권유하네.侑我盤中麥다섯째, 「총蔥」이다. 채소 파를 말한다. 담장 너머 사방 한 치 작은 남새밭에 파는 봄을 맞아 실처럼 푸르다. 마침 울타리에는 뒤웅박이 꽃을 맺었나 보다. 그러나 파는 밥상에 올라오면 보이지 않는다. 파는 주로 각종 음식의 양념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기와 생선의 좋지 못한 냄새를 없애주는 구실을 한다.시의 화자는 사방 한 치의 서쪽 담장 너머 파릇한 실 같은 파가 봄비를 맞아 더욱 푸르다고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한편 화자는 파를 의인화하여 뒤웅박이 어느새 꽃을 맺자 파는 혼자서 사람들에게 가지 못하고 먹음직한 뒤웅박을 유혹하여 아침 밥상에 뒤웅박 무침이 되어 함께 오르곤 하였다.청낭靑囊을 꺼리지 않고休把忌靑囊막힘을 이롭게 함을 넉넉히 보네.贏看利疏滯사월 밥상에 오른 막걸리濁醪四月床초계椒桂보다 백배나 좋은걸.百倍於椒桂여섯째, 「산蒜」이다. 채소 마늘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마늘의 도입 시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이미 『단군신화』에 마늘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 "입추 후 해일亥日에 마늘밭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마늘이 약용·식용작물 등으로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마늘은 소객騷客이 시를 지을 때 필요한 시낭詩囊도 없이 시가 절로 이루어지듯 소화가 안 되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결구結句는 음력 사월, 농촌은 농사일이 시작된다. 바쁜 농사일 가운데 잠깐씩 바쁜 일손을 멈추고, 고단한 몸을 펼 때 막걸리를 마신다. 이때 막걸리 안주로 마늘은 제격이다. 때문에 시의 화자는 마늘이 고기 안주인 초계椒桂보다 백배나 좋다고 하였다.세상은 벽곡할 수 있다고 하니世稱能辟穀먹고 앉아서 선인이 되었네.餌可坐成僊군자 같아 사랑하니獨愛如君子천연天然 지상의 연꽃이네.天然地上蓮일곱째, 「우芋」이다. 땅속 식물 채소 토란을 말한다. 땅토란·우자芋子·토련土蓮·토지土芝라고도 한다. 고온성 식물로서 고온 다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땅속에서 여러 개 감자 모양으로 달려 있다. 재래종은 조생종으로서 줄기가 푸르고 새끼토란의 알이 작다. 덩이줄기는 새끼토란과 어미토란으로 구분하는데 어미 토란은 떫은맛이 강하여 대부분 먹지 못한다. 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덩이줄기와 잎자루를 식용한다. 덩이줄기는 주로 국을 끓여 먹고 굽거나 쪄서 먹는다.토란은 채소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걸맞지 않다. 가을에 수확하여 알토란으로 토란탕, 토란국으로 먹으며, 잎과 줄기는 말려 대보름에 나물로 주로 밥상에 올라온다. 이응희의 『옥담시집』 「우芋」 미련尾聯에서 "세속에서는 무립이라고 부르니 / 늙은이 음식으로 제격이네.〔俗名稱毋立, 端合老翁飧.〕"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벽곡할 수 있다고 하여 먹고 신선이 되고 싶었다. 또한 북송의 학자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오는 연蓮의 모습과 흡사한 토란의 외적 모습을 보고, 토란의 군자다움을 유달리 사랑한다고 하였다.바람에 춤을 추니 넓은 자리 같고舞風大如蓆비에 목욕하니 구름보다 보드랍네.沐雨軟於雲못난 여종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고痴婢不勝妬주름진 치마와 견주어보네.較看皴幅帬여덟째, 「송菘」이다. 배추를 말한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채소이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배추가 처음 등장한다. 무, 고추, 마늘과 함께 4대 주요 채소며,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이다.일찍이 남제南齊 때의 은사 주옹周顒은 문덕태자文德太子가 채식 중에 어떤 나물의 맛이 가장 좋더냐고 묻자, "초봄의 이른 부추나물과 늦가을의 배추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시의 화자 눈에는 구름처럼 보드라운 배추 잎이 질투하는 여종의 치마로 변화하였다. 이는 배추가 서민적인 사랑을 듬뿍 받은 배추김치의 다른 표현이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여 김장하는 날, 동네 아낙 다모여 아궁이에 불 지피우고 돼지고기가 익어가는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에 김장하는 모습이 아련하다.푸른 잎에 찬밥 쌈靑葉裹寒飱일생의 업으로 즐기었지.一生業吾耆온갖 생각 다 재로 보내버리고千思都付灰다시 흔쾌히 단잠을 부르네.更快招甘睡아홉째, 「상초裳草」이다. 쌈 채소 상추를 말한다. 와거萵苣·와채萵菜라고도 한다. 중국의 고서인 『천록식여天祿識餘』에 의하면, 고려高麗의 상추는 질이 매우 좋아 고려 사신이 가져 온 상추 씨앗은 천금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천금채'라고 기록되어 있다.시의 화자는 여름날 싱싱한 상추의 상추쌈을 무척 즐겼다. 그러나 그는 현대인처럼 고기쌈을 즐긴 것이 아니었다. 온갖 잡념 잠시 잊고 싶을 때 잠을 부르려고 하였음을 여기에서는 알 수 있다. 화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상추는 줄기에서 나오는 우윳빛 즙액에 락투세린·락투신 등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이 상추는 진통 또는 최면효과가 있다. 따라서 상추를 많이 먹으면 잠이 오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이다.꼭지가 땅에 떨어지기 어려워着地蒂難爲울타리를 따라 넝쿨로 뻗어가네.托籬方莚蔓비로소 오르고 내려가는 사이에始識升沈間한 자와 한 치 분명함을 알았네.短長分尺寸열째, 「척라尺蓏」이다. 오이를 말한다. 오이는 익으면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황과'(黃瓜)라고도 부른다. 『동의보감』에서 오이의 효능은 "오이(胡瓜)는 성질이 차고[寒]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많이 먹으면 한기와 열기가 동하고 학질이 생긴다. 오이 잎인 호과엽胡瓜葉은 어린이의 섬벽閃癖을 치료하는데, 주물러 즙을 내어 먹인 다음 토하거나 설사하면 좋다. 그리고 오이 뿌리인 호과근胡瓜根은 참대나 나무가시에 찔려서 생긴 독종毒腫에 짓찧어 붙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오이는 넝쿨식물이다. 농촌에 가면 어디든지 담장을 따라 오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이는 속성의 성질이 있어 금방 자란다. 때문에 시의 화자는 오이가 꼭지가 땅에 떨어지기 싫어 담장을 따라 넝쿨로 자라고 빨리 자라는 오이의 속성을 전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층층마다 푸른 옥 아름답고層層蒼玉嫩농가의 별미라네.滋味野人家서리화랑 기다렸다가留待霜花郞누렇고 달게 늙으니 더욱 아름답네.黃甜老更嘉열 한번째, 「남라南蓏」이다. 넝쿨채소 호박을 말한다. 호박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축소판인 『방약합편方藥合編』에는 '남과'(南瓜)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서리가 내린 다음에 거둬들여 따뜻한 곳에 보관하면 이듬해 봄까지 저장이 가능하다. 씨는 동아[동과冬瓜] 씨와 비슷하며 살은 두텁고 노란빛이 난다. 호박은 날로 먹지는 못하고 껍질을 제거한 다음 쪄서 먹는데 마[산약山藥]와 같은 맛이 난다. 돼지고기와 같이 끓여 먹으면 더욱 좋으며 꿀을 넣어 달이기도 한다."라고 했다.호박은 호박볶음에서부터 호박전, 호박조림, 호박찌개, 호박나물, 호박죽, 호박고지, 호박떡, 호박엿에 이르기까지 종류만 해도 손으로 다 꼽기 힘들다. 애호박은 애호박대로, 늙은 호박은 늙은 호박대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다. 호박을 직접 먹는 것 외에도 된장찌개에 호박 줄기를 넣으면 맛이 더 산뜻하고 찐 호박에 된장을 얹어 싸먹는 호박 쌈은 여름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별미다.시의 화자는 여름 내내 마디마디 달려 있는 애호박은 푸른 옥으로 비유하고, 전과 된장찌개를 끓여먹는 농가의 별미라고 하였다. 어찌 그뿐이랴 찬 서리 내리기를 기다려 덩그렁 국화 담장에 매달려 있는 늙은 호박은 최고의 별미로 칭찬하였다.희고 둥근 달 일천 알白團月千顆초가집 처마에 어지럽게 떨어져있네.錯落短簷茆서생의 오음五音의 입措大五音口박 하나 잘도 울리네.善鳴又一匏열 두번째, 「호瓠」이다. 박을 말한다. 박은 「흥부전」을 보면 흥부가 제비를 구해준 대가로 박씨를 얻어 심는 대목이 나오는데, 제비가 겨울을 나는 따뜻한 곳에서 박이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新羅」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가 박에서 나왔다는 기록을 보아 박은 신라 이전부터 있었다.박은 덜 익은 박을 잘라 속을 빼버리고 길게 국수처럼 오려 말린 박고지는 반찬으로 쓰며, 덜 익은 박을 잘게 썰어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박속으로는 나물을 만들기도 하며, 엿에 담가 과자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박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 있으며, 특히 식물성 칼슘이 풍부해 발육이 늦는 어린이나 아이를 낳은 부인들에게 좋은 영양식품으로 쓰인다. 잘 익은 박은 타거나 구멍을 파서 속을 뺀 뒤 삶아 바가지로 사용한다.시의 화자는 농가의 초가지붕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박에 달이 비친 모습을 말하였다. 단란한 흥부네 식구 같은 외딴 시골집 지붕에 밝은 달이 휘영청 내리비칠 때, 가난한 서생의 집에서는 호파瓠巴의 비파 소리가 들여온 듯하다.누가 심어 전하였을까阿誰傳此種서가書架를 채우니 옹기보다 크다네.盈架大於甕박망博望으로 알게 했다면若使博望知서역에 먼저 바쳤을 텐데.應先西域貢열 세번째, 「동라東蓏」이다. 열매채소 동아를 말한다. 동과冬瓜·동화冬花라고도 한다.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에 이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에 이미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음식지미방』·『산림경제』·『주방문酒方文』 등의 문헌에 동화선·동화누르미·동화적·동화증·동화돈채 등 다양한 조리법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현재는 널리 쓰이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많이 재배되고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식용 이외에 약용으로도 쓰여 『향약채취월령』·『동의보감』 등에 그 효능이 기록되어 있다. 약효는 가래를 제거하면서 기침을 멎게 하고, 폐농양이나 충수염 등에 소염의 효과가 있으며, 이뇨작용도 한다.시의 화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 동아를 武帝의 명을 받아 서역 일대로 사신을 떠난 박망博望에게 먼저 알려주었다면 서역에 먼저 조세로 바쳤을 텐데 아쉬워하고 있다.목련처럼 드리워져垂垂似木蓮꼭지도 없이 헛되이 늘어졌네.結蒂無虛朶담백한 맛 요리는 되지만澹味主人廚절대 국이나 절임은 못한다네.羹菹靡不可열 네번째, 「가자茄子」이다. 열매채소 가지를 말한다. 가지는 『동의보감』과 『방약합편』에 명칭이 '가자'(茄子)이다. 가지의 별명은 '곤륜과'(崑崙瓜)다. 『동의보감』에서는 "가지의 성질은 차고[한寒] 맛이 달며[감甘] 독이 없다. 추웠다가 열이 났다 하는 오장허로를 치료한다."라고 하였다. 가지는 여름철 음식이다. 후텁지근한 날씨로 온몸이 끈적거릴 때 먹는 가지볶음과 가지찜, 더위에 지쳐 헉헉거릴 때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는 가지 냉국은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다. 한방에서도 가지는 성질이 차가워 한여름에 먹으면 더위를 식힐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찬 성질로 인해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아이를 가진 며느리에게는 가지를 먹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에서 떠도는 속설이지만 明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근거를 두고 나온 말이다.시의 화자는 가지가 담백한 맛으로 요리는 가능하지만 다른 채소처럼 국이나 절임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꽃처럼 붉게 활활 타오르고似花紅熚爛서리 맞은 뒤 산가山家에서 빛나네.霜後耀山居맛과 색을 겸할 수 있으니味色能兼得온갖 채소를 도와 화려하게 하네.華滋佐百蔬열 다섯번째, 「고초古椒」이다. 열매채소 고추를 말한다. 고추는 만초蠻椒,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왜초倭椒, 날가辣茄, 당초唐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남만초南蠻椒는 대독大毒하다. 처음 왜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세속에서 '왜개자倭芥子'라 한다. 요즘은 자주 심는데 술집에서 몹시 매운 것을 이용한다(술안주로 고추를 먹는다). 혹 고추를 소주에 타서 팔기도 하는데 이것을 마신 사람이 많이 죽었다."라고 하였다.고추는 어린 열매와 잎이 함께 졸이거나 데쳐서 나물로 이용된다. 풋고추는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다. 또 반으로 쪼개어 속에 두부·쇠고기 등을 버무려 넣어서 煎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하고, 통째로 구멍을 뚫어 젓국에 절여 놓았다가 겨울철의 밑반찬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홍고추는 생것을 갈아서 나물의 조미료로 이용하며, 건고추는 가루를 내어 김치의 양념으로 쓰거나 고추장을 담그는 데 이용한다. 초와 어울린 초고추장은 회와 생선회의 양념장으로 중요하다. 고추장에 오이·무·마늘종 등을 박아서 독특한 맛의 고추장장아찌도 만들게 되었고, 비빔밥의 풍모도 일신하여 놓았다.시의 화자는 산가山家에서 가을날 고추를 말리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한편 빨간 고춧가루가 음식에 들어가면 화려하고 맛있게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를 온갖 채소와 어우러져 있는 김치 양념으로써 고추를 가져와 시의 분위기를 살려내었다.남쪽 고을평생 몸魚稻百年身네 덕에 항상 병이 적었지.賴渠恒少疾맞다고 믿는 고을사람信宜中國人내가 인삼을 먹었다 하네.謂我服葠朮열 여섯번째, 「나복蘿葍」이다. 뿌리채소 무를 말한다. 무는 김치·깍두기·무말랭이·단무지 등 그 이용이 매우 다양하다. 무에 있는 독특한 쏘는 맛의 성분은 무에 함유된 티오글루코사이드가 잘리거나 세포가 파괴되었을 때 자체 내에 있는 글루코사이다아제라는 효소에 의하여 티오시아네이트와 이소티오시아네이트로 분리되며 독특한 향과 맛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무즙에는 디아스타아제라는 효소가 있어 소화를 촉진시키기도 한다.시의 화자는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하였다. 때문에 남쪽의 고향 농촌에서 자라면서 그는 항상 인삼대신 값이 싼 무를 즐겨 먹었다고 하였다. 시에서는 고을 사람들은 무의 효능이 인삼의 효능과 같음을 일찍부터 믿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내가 인삼을 복용하였다고 놀려 말하였다.5. 맺음말지금까지 둔암鈍庵 김진휴金震休의 유고 『둔인수록鈍人隨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유고의 성격과 문학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또한 김진휴의 시에서는 「조과소사평부이앙」과 「영포채십육종」을 감상하여 보았다.『둔인수록』은 19세기 서구열강의 외세침략으로 급변하는 근대의 태동기에 이루어진 작품으로 구한말 조선의 농촌사회 일면을 보여주었다. 아침에 소사素沙 들판을 지나며 모내기하는 모습의 감회를 지은 「조과소사평부이앙」은 조선의 농촌사회에서만 보이는 품앗이의 과정과 새참을 나누어 먹는 구수한 인정을 연상케 하였다. 또 농촌의 남새밭에서 재배하는 채소 16종을 노래한 「영포채십육종」은 다양한 채소를 사실적으로 혹은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었다.한편 『둔인수록』은 아쉽게도 아직 선현 문집으로 간행되지는 않았으나 해제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집의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또 그 작품마다 보여주는 내용은 근대 농촌사회의 모습을 연구하는 학계의 참고문헌 자료로써 그 기여도가 중차대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강원도 관동과 관서 두 지역에 산재해 있는 누정을 유람하며 명승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승경을 읊은 경물시景物詩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한 지역을 지나가면서 그 지역의 감회를 읊은 서사적 서경시에서는 향후 지역사회 관광발전과 지역문화의 고찰연구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논자는 이 두 측면에서 『둔인수록』이 내재하고 있는 의의와 문학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둔인수록』은 근대 태동기 문文·사史·철哲을 고루 갖춘 선현의 문집으로 자리매김하여 19세기 근대 유학자이자 정치가로서의 호남인 김진휴의 문학세계에 여러 사람들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참고문헌】『鈍人隨錄』『朝鮮王朝實錄』『承政院日記』『東醫寶鑑』『本草綱目』『鄕藥救急方』『維摩詰經』, 「入不二法門品」『晉書』 권92 「文苑列傳·張翰」『玉潭詩集』 「萬物篇·蔬菜類」『莊子』 「逍遙遊」『楚辭』 「九歌·東皇太一」『南史』 권34 「周顒列傳」『文忠集』 권3 「拒霜花」『荀子』 「勸學」『荊楚歲時記』
-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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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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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虎文狗 【九歲作 乙亥】
- 和伯氏詠蠶 【十歲作 丙子】
- 夜睡聽蠶食葉
- 讀書自警箴 【十三歲 讀周易時作 己卯】
- 聽擣衣有感戱呈宋斯文澈根 【十四歲 庚辰】
- 西游禪雲錄 【辛巳】
- 太古天皇氏論
- 乃一龍一豬律賦 【韻兩家各生子提孩巧相如】
- 經書辨疑
- 東游瑞石賦 【乙酉】
- 擬漢羣臣賀龔遂治渤海之日勸民農桑使民持刀劍者賣劒買牛賣刀買犢表 【丙戌人日 製御 題通方外】
- 稗倡善感義錄跋
- 感夢黃牛廟賦 【完營公都會魁擢監司曺判書鳳振】
- 讀書內元庵記 【丁亥】
- 仁政必自經界始賦 【戊子二月二十七日鎭安東堂入格京試官李校理憲兢】
- 暮春者自鎭安試所作西笑之行留宿蓮洞民舍荊圍之期尙邈柳陌之興難抑遂與二三子出遊懿齋【景宗大王 陵寢】與齋卽權參奉涑【字景實 號水北山人】往數里許明德洞【朴宰宗 薰郊庄在焉】登亭拈韻
- 落魄荊圍之後留心桑楡之西自四月念間住齋洞洪監察耆燮【字壽卿號蒼軒】家與其胤碩士在龍【字景見號石虎】同業做讀遷延時月家信渺茫兼得耳聾之病數四朔矇矓度了鬱鬱欲狂兼以秋風蕭颯旅雁酸嘶中夜獨坐展轉思鄕拈得一朝字續成三首律令人寓矚可想捧腹【三首】
- 更得一心字遇寸草心
- 一民字續前律
- 八月念與洪石虎在龍出往弘齋【貞聖王后陵寢時主翁蒼軒爲陵令入直】因遊津寬寺觀瀑唱酬
- 奉龢洪石虎
- 冬十月沈友舜五名煥奎將營牙山聘家之行離期不遠逢場不常遂構四闋慨然奉贐【四首】
- 除夕會李睡翁【名憲度字中立】家趙石南亦至龢長短二律
- 春正月四日夜同石南會睡翁家唱酬續除會【己丑】
- 五律
- 翌朝復續前宵餘致 【二首】
- 睡翁家會趙斗南在永【字錫汝】拈韻相酬
- 人日睡翁來訪仍與呼韻唱龢
- 與睡翁待石南
- 乘月訪睡翁
- 龢睡翁韻
- 約洪琶山在磻【字渭叟】會睡翁家申玉霞檍亦至團坐酬韻
- 與睡翁琶山拈杜少陵韻鼎坐相次
- 夜坐偶吟寄睡翁
- 睡翁家會石南唱和用夜坐偶吟韻
- 贈睡翁
- 贈琶山
- 新春聯句
- 南往墨溪訪琶山洪雲湖在明【字德叟琶山之從弟】亦自楊州來會仍與鼎坐酬韻
- 夜宿琶山家詠木覓雪景琶山雲湖亦和
- 翌朝申洞春洪一可【名在重字公禮】來訪五人相與酬唱
- 橋舍寓懷
- 與石虎夜坐咏金五掌禁
- 夜坐思鄕
- 上元夜約石南睡翁會飮具斯文景五家趙屛巖【石南父親】李魯直兩老人亦在坐因各賦詩一闋
- 翌日與睡翁更咏前夜景拈少陵韻
- 與張豊巖瀷【字翼汝】雪中相酬洪石虎亦和
- 夜與豊巖相和
- 又
- 更尾五七言各一律
- 次睡翁韻
- 同石南睡翁夕往墨洞 路中口占
- 夕往墨洞與石南睡翁琶山雲湖各酬一疊
- 翌日留贈琶山雲湖亦和
- 偶得一律呈琶山要斤正
- 與睡翁拈韻石南適至亦和
- 戱題一韻四疊仰呈睡翁以求繩削 【四首】
- 夜與石南睡翁呼韻相酬 【六首】
- 南鄕歸路咏首尾體長歌行贈別睡翁
- 贈別琶山
- 五言一節更和睡翁兼呈琶山
- 收拾洛下詩話序
- 鑿氷冲冲賦 【十二月十九日通讀實科入格大司成趙承旨秉鉉】
- 太學聚而敎之歲論其賢者能者於朝詩 【光州初擇魁擢庚寅十月初一日主試本牧朴承旨英載】
- 至穀城山下果見黃石詩【辛卯】
- 稗官紅白花傳序 【壬辰】
- 再遊瑞石吟
- 冬十一月初吉南至日訪南平宰洪丈明燮【字良臣蒼軒之從弟】夜與衙客背命妓煮酒拈韻相酬 【二首】
- 南方之山巍然高而大者以百數獨衡山爲宗詩 【排律三十韻 癸巳】
- 東坡曰月出於東山之上山谷曰左邱明詩
- 贈彦齋金斯文兢淵 【三律 三絶】
- 書義鄰哉臣哉 【甲午二月二十日綾州監試入格京試官趙校理秉憲】
- 鐘未撞時聲固在賦 【四月二十三日文科東庭試上試李判書翊會】
- 崇政門銘 【四月二十五日文科殿試命官朴判書宗薰】
- 秋八月以新恩過鷹巖夜宿杏亭書室次壁上韻
- 翌日辛亥過馬池次鄭老人基奎壁上韻
- 乙未夏宦游洛城夜會壯洞黃進士鍾憲【字述度號晨橋】家置酒拈韻沈同知輔卿亦和【乙未】
- 冬十月夜宿金進仕世均【字公翼號楓下】家與南竹村錫斗【字齊若恩津人】酬唱 【一韻四律】
- 夜宿金敎宦敬鎭【字穉一號溪愚】家與南竹村相酬 【二首】
- 梅花 【二首】
- 與南竹村唱和 【一韻五首】
- 和金斯文穆淳【字淸汝】紅唐菁韻
- 楓下舍與南竹村趙秋湖【名鳳凞字歧瑞】唱酬
- 贈別南竹村歸黃山郊庄 【一韻七首】
- 送別竹村
- 又
- 頭續夢裏句 【丙申幷小誌】
- 溪愚舍夜坐感懷
- 次趙秋湖黃山夜宿
- 和芋區丈【匏泉令號】送別副行人安參判光直【字冑伯號桂圃】韻
- 與溪愚及丁佐郞載榮【字春卿龍潭人】巡城 【二首】
- 和黃斯文鍾聞【字樂韶】北岳春游 【二首】
- 和洪學士在龍西浦夜游
- 和黃樂韶杏湖舟游 【一篇四首】
- 和黃晨橋稷下餞春 【一篇四首】
- 和趙上舍頤淳【季養】稷下餞春
- 和黃樂韶惜春
- 初夏卽景
- 喜雨
- 贈黃樂韶
- 和吟黃樂韶庭前盤松
- 和黃樂韶觀燈
- 約黃晨橋會鄭蘭下海明聖峻家酬唱雨後淸景金判官鼎遠亦和
- 夏四月二十八日自楓溪僑舍南作鄕行路中漫吟
- 登南泰嶺
- 曉發果川過華城
- 又
- 又
- 過下柳川
- 過梧山
- 過振威喜到原逢驟雨
- 朝過素沙坪賦移秧
- 午憩天安
- 過德坪
- 戱咏躄者索錢
- 夜宿院基店朝別吳都事泰晉
- 登車嶺
- 歷廣亭
- 度薪坪店
- 渡錦江
- 寓懷
- 登板峙咏靈圭碑
- 夜宿敬天店咏蝸虫
- 朝過魯城
- 望校廟有感
- 過九十九隅
- 渡草浦
- 望觀燭寺彌勒
- 抵皇華亭
- 又
- 曉過筩井望場巖
- 過細川
- 戱題壚上佳人扇面
- 登栗峙
- 過路上村見耕織感興
- 歷可丹驛和少陵遊龍門寺韻
- 憩蘆嶺
- 又
- 路中端午
- 過秋城咏竹
- 望瑞石
- 過鏡湖
- 竹裏館 【幷小序】
- 與林嘿齋相基德亨携酒陟岡戱賦歌娥 【三首】
- 蟬
- 螢
- 雨後聼溪
- 虞美人草 【二首】
- 霖雨
- 龢林嘿齋思鄕
- 槐
- 憎蒼蠅 【二首】
- 觀魚
- 蚊
- 鳳仙花
- 雪吐花
- 無等山
- 鏡湖
- 鶴 【二首】
- 狗 【二首】
- 卷之二
-
- 續九歲咏虎文狗 【丙申】
- 牛
- 驢 【追和洛人金沃淳心汝韻】
- 寄黃晨橋鍾憲述度
- 馬 【復用前韻】
- 蜘蛛
- 蜂 【二首】
- 蝶
- 蜻蜓
- 蟻
- 促織
- 龢姜世澤聽流軒壁上韻
- 和十歲咏蠶韻 【二首】
- 山齋寫霽月魚用卽景
- 南草
- 苽
- 桃 【二首】
- 榴
- 梧桐
- 鸎
- 鷰
- 鸚鵡
- 烏
- 鵲
- 鷹
- 雉
- 鵑
- 怪石
- 爐
- 惜夏 【四首】
- 筆
- 墨
- 紙
- 硯
- 水滴
- 竹刀
- 弓
- 矢
- 碁 【三首】
- 酒
- 竹堗
- 燈 【丁酉在洛】
- 送金參奉秉翼之金浦
- 和金溪愚敬鎭咏雪
- 奇金楓下世均
- 和沈石愚樂疇
- 四月朔篆
- 贈金硯雲東瑞
- 五月朔篆
- 觀燃藜記述次陸放翁讀書有感韻
- 六月朔篆
- 七月朔篆
- 和石史堂諸學士韻 【二首】
- 秋意
- 代春秋記注郞送人赴任
- 秋蟬
- 禁苑叢竹
- 仁政殿
- 又
- 璿源殿棠棃
- 沽酒吟
- 代金硯雲【季良】咏沈家墓碣 【二首】
- 和金溪愚穉一洗劒亭韻
- 送永柔崔景喆序
- 十月朔篆
- 拈十二月卦咏十二月令
- 十一月朔篆
- 田舍十二月歌
- 堂后直中咏御賜白曆
- 歲華
- 王大妃殿誕辰自內殿恩賜靑錦囊 【十二月初六日】
- 待漏院直中咏除夕
- 戱贈硯壽軒李章運 【二首 戊戌】
- 綠陰
- 掃却
- 凭軒
- 年光
- 贈澹瀞黃履健
- 楓溪偶吟 【二首】
- 詩債
- 禁砌叢竹
- 會事
- 流年
- 林石
- 早秋訪金楓下與南竹村鼎坐酬唱
- 騎曺直中看書招睡因戱而賦
- 舊光化門前旅舍別同舍張典籍鉉喆
- 直中除夜
- 人日直騎省 【己亥】
- 早春
- 奉都巡命出宿巡廳次壁上韻 【故直提學李玄錫詩】
- 上元夜與道內諸友抵碧洞旅舍修曲會仍與步月踏橋聽鍾而歸
- 旣望夜訪金楓下
- 題兩慈宮【大王大妃殿明敬王后金氏王大妃殿孝裕王后趙氏】各恩賜通絹一疋【三月十一日上幸行綏陵余以兵曹結束色上佐郞路梁擲奸仍守宮祗候】
- 代本道儒生等上禮曺書
- 和寄沈石愚樂疇 【二首】
- 端陽日題御賜扇
- 直中戱吟
- 梔蠟
- 七月十五日余生辰也以監軍役出宿巡廳倍切鄕念仍賦一律用壁上前韻
- 聖上誕辰七月十八日也與道內諸學士會外騎曺置酒張樂琴人歌妓亦在座【兩妓名潤玉映山紅】
- 送具別檢鍾祿奉香之完山
- 和僚丈金正郞漢益【乃見】
- 和金正郞別李全義馨萬赴任
- 絡緯
- 八月初丁以享官入太學參釋菜
- 拈杜少陵韻和同舍金正郞
- 直中謾吟
- 戱吟
- 秋夕和金正郞
- 禁樹
- 傲骨
- 步杜工部秋興八首
- 受牌出宿巡廳更和壁上前韻
- 又
- 重陽
- 直騎省夜內巡過永肅門
- 內巡夜憩永肅門 【三首】
- 和贈江東黃斯文潗 【二首】
- 苦吟
- 秋九月己未以享官往南壇行城隍發告祭夜占一韻兩律 【二首】
- 晦日壬戌又作北壇享官行路中口占用前韻
- 淹直
- 據梧
- 霜花
- 和舊僚李扶安豊翼子穀直中自唫
- 煙月
- 直中復和巡廳壁上韻
- 短檠
- 奉巡牌出巡廳路中口占復用壁上韻
- 送別金正郞漢益 歸南原 【三首】
- 直中曉起
- 詩心
- 寒雲
- 商籟
- 郎官
- 讀華城上樑文
- 晩風
- 詠雪 【二首】
- 西園夜巡
- 歸來
- 奉巡牌路中口占
- 巡廳夜話
- 賦騎省庭畔老松
- 聞鶴
- 矩矱
- 冬至
- 淸宵
- 夕訪金楓下世均堤川韓老人用佑竹山金進士溟亦在坐仍與唱酬 【二首】
- 冷衾
- 硯氷
- 臘享日以守門禁喧官往社稷夜得三絶
- 輓佳山高老人廷龍 【庚子春歸庭代家君作】
- 將發洛行和謝心谷老人白箕錫贐章 【二首】
- 過參禮驛與江境李斯文義銓唱龢
- 與韓白西用佑南竹村錫斗會楓下舍酬龢
- 宗人晉史用鉉【字景九號石下】舍會宗人蘭皐象鉉【景三】柳楓山星中【和卿】金海柁準永【幼平】把酒拈韻作重陽遊
- 與石下賦菊花
- 約金楓下韓白西南竹村諸詩朋携酒登遠心庵唱酬而歸金澗寤民均【公理】亦和
- 與金心窩啓鎭拈陸律相酬
- 和忠武公李舜臣閑山島秋夜吟
- 與金心窩啓鎭【穉沃】復唱和
- 復用前韻賦梅花
- 冬至夜宿溪愚舍 【三首】
- 戱用二十八宿咏石榴
- 詠雪和東坡尖叉韻 【十首】
- 戱用干支賦梅花
- 二十八宿歌
- 咏橘用八音得一律
- 題菊寓五聲
- 回頭詩 【六律】
- 臘朝述懷戱寓藥草淂十五排律
- 社洞旅舍逢除夕 【三首】
- 旅舍人日金將軍景瑞詩 【辛丑】
- 立春
- 金楓下舍夜會韓白西用佑昇坐拈金仙源【尙容字景擇楓下十世祖】遺稿得深字各成一律
- 千里
- 謁南關王廟 【八首】
- 五行梅 【幷引】
- 菩蕾
- 淸明夜焚香文廟
- 寒食
- 和杜少陵好雨
- 朝起 【二首】
- 大風
- 見西墻下杜鵑花一樹獨立花開穠郁戱賦一絶
- 畫境
- 松間杏花
- 晩風
- 登六鶴峰賞花賖醉 【三絶】
- 題故僉使贈兵參李立傳後 【幷識 三首】
- 待卿信
- 滯雨在石下室邀蘭皐楓山招酒酬韻 【二首】
- 約綾州宗人主書儀表【正吾】三淸洞竹亭石下蘭皐楓山與兪碧溪【晩汝】齊會
- 載酒與諸朋自竹亭登白岳 【一篇四首】
- 倍仲氏登後岡得兩絶 【閏三月十三日聖上親總庶政大王大妃殿上尊號兩合慶庭試設行於春塘臺舍仲氏率諸姪來會於旅舍】
- 約石下登冠嶽緣享役末果因寓吟一絶
- 春去
- 餞春
- 以享官出齋禮曹 【二首】
- 和夏卽事
- 和石下春別詞 【四疊】
- 四月八日觀燈 【六首】
- 臥聽隔囱讀言說稗官
- 月下獨吟
- 柳絲
- 雨中獨坐
- 端陽
- 秧雨
- 南國
- 石下舍夕同柳楓山宋駝隱【相璟】巡酒呼韻 【二首】
- 斗屋
- 雨中讀稗官招睡
- 約石下蘭皐楓山駝隱和注書儀表李斯文集琦穉文李斯文恒溥穉久訪東村夕陽樓映波亭【麟坪大君所居官樓】賒醉酬唱 【二首】
- 之楓溪與金楓下南竹村酬韻 【三首】
- 述懷
- 冥濛
- 滯雨
- 駁雲
- 韻蠟
- 扶頭日與具佐郎鍾祿【德老】會禮曹酬和 【二首】
- 旅舍獨坐和前韻 【二首】
- 與具禮曹更和
- 餞夏
- 早秋讀杜詩戱得一絶
- 秋風
- 七夕 【三絶】
- 讀漢學老乞大
- 七月旣望
- 雨餘
- 夜與兪諫議錫煥【君三】唱酬
- 草蟲
- 和具禮曹 【二首】
- 解臺職 【二首】
- 夕與具禮曹唱和
- 酬具禮曹
- 中元日以攝行享官出順懷墓【明宗大王世子恭懷嬪尹氏合墓自京三十六里在明翼敬弘昌五陵之間】 路中漫吟
- 夜宿順懷墓齋室
- 翌日乘閒游弘陵齋室
- 中元日明陵幸行 【二首】
- 秋氣
- 約石下蘭皐楓山駝隱景玉海枕入墨溪登老人亭學少年樓五松楹鯈魚閣【以上皆豊恩府浣君趙萬永之亭閣】唱酬
- 回入南水閣又唱酬
- 赤葉
- 黃義興基鎬【快齋】家會具綾山【行遠】拈鄭松江澈【字季涵】遺稿鼎坐酬和
- 用前韻詠贈具綾山【行遠】
- 夜色
- 秋雨
- 霜華
- 抵楓溪與金記注世均賦霜雁拈李澤堂【植】詩集 【二首】
- 待鄕信 【三首】
- 石下舍會兪諫議白員外【弘洙】及記注正吾蘭皐景三同賦菊花出詩令花葉根枝光色形影黃金鈴錢等字
- 秋九月將發南行贈別具員外
- 南征渡漢江夜宿宿舫店
- 曉過果川和唐詩楓橋夜泊韻
- 午過隋城
- 晩過梧山望闕里祠
- 路中重陽憶道內諸學士曲會飮
- 早發振威
- 午過素沙更和右韻
- 天安路中
- 車嶺路中
- 濶原途上
- 過日新捷徑
- 晩渡錦江
- 霧中曉發錦店 【二首】
- 恩津途中
- 夕過皇華亭詠古木 【二首】
- 礪山途中
- 參禮途中
- 木溪途中
- 早發木溪
- 金溝路上
- 泰仁途中
- 蕯浦店啖甘蔗
- 訪古阜
- 古阜東閣望月正好與主倅金溪愚敬鎭携琴妓【完府妓一枝紅在座】登此君亭本郡士人林在鳳亦隨遂與口占一律
- 登蘆嶺
- 暮宿長城
- 曉發鼇山
- 過柳林
- 家大人恩資告祠祝
- 九月二十五日兩堂慶宴後謹次家大人讌席詩 【二首】
- 陪家君省先楸歷景陽驛口占一絶
- 望瑞石
- 和兒曹課製壯元峰韻 【二首】
- 漫詠
- 又
- 驥熊兩兒修楔竹館各製一詩以賜之
- 和沈斯文樂玄國孝盤洞書室韻 【二首】
- 治蔬圃 【壬寅】
- 見西園梅發數三朶適讀朱詩和東坡韻賦梅花七言古詩遂步成八足
- 二月見雪 【二首】
- 和贈長興宗人相鎭忍嘿齋詩【獻納相勉從弟】
- 過南原輓梁德溪錫浩
- 度烏鵲橋
- 登廣寒樓 【三月望日】
- 望蛟龍山城
- 謁關王廟
- 陪家君往長城興德茂長諸邑省先楸歸路偶得短絶
- 次靈光宗人在浩【養善】陟後岡韻 【癸卯】
- 卷之三
-
- 代從子進士容晩上地主書 【癸卯 地主趙光州徹永】
- 次宋斯文學魯【孔希】遊韻
- 代容晩和趙進士秉岳【本官冊室】同遊司馬齋題咏
- 又
- 又
- 又
- 阿嬌
- 步韓詩符讀書城南韻遙寄驥兒兼勖麟姪 【幷序 甲辰】
- 竹皮扇
- 秋意
- 驅雀行
- 和白谷處能一二三體 【幷引】
- 觀晩德【康津寺名】唱酬錄 謹次尤庵宋先生 和朴遜齋光一【士元】韻 【二首】
- 謹次尤庵先生和安理病齋汝諧【仲和】韻 【二首】
- 和白谷處能建除體
- 次宋斯文重鉉【聖佐】賦綿鳥韻
- 諸兒修禊序
- 早春與鄭湖山奎性叙話 【乙巳】
- 上元夜與林嚜齋相基叙懷
- 次林黙齋早春登山
- 代山幕谷崔基中上地主書 【地主見上】
- 和贈朴斯文仁孝
- 代陶泉面民人等上地主書 【地主見上】
- 追和崔羊巖衡【平叔】尤庵遘禍後傷感有作 【幷序】
- 奇斯文師賢送花草圖書石於趙參奉秉岳也乞借新詩於余賦短絶二篇以酬之
- 老虎行
- 夏五月有事詣京鍾峴旅舍偶得一絶
- 夜宿諫洞與進士用鉉月下述懷
- 朝起更與叙話
- 山齋卽事聯句
- 翌夕又與相酬
- 更和短絶
- 酬石下
- 述懷【幷誌】
- 大暑吟
- 拓窓
- 永日
- 秋氣
- 溪風
- 卯天
- 七月望日興感寫懷
- 秋光
- 贈石下
- 秋聲
- 纖雲
- 秋八月將還鄕旅舍夜燈信口占得 五言長篇
- 早發鍾峴過石稜
- 夜宿大皇橋用前日巡廳壁上韻口占一律
- 振威途中
- 七原路上
- 度天安
- 金蹄驛店滯雨夕宿
- 過德坪
- 登車嶺
- 晩過錦江
- 素浦道上戱贈海州客宋之賢
- 憩板峙
- 夜歇戱占
- 朝發板峙
- 花山路中
- 夕憩皇華亭噉早紅柿
- 早發皇華店
- 晩憩棗院
- 過凹川
- 度金溝縣
- 夜止院坪口占短絶贈咸興僧守恩 【二首】
- 過泰仁市中
- 抵井邑
- 以足疾滯臥楚山新幕戱寫五言短篇
- 撥悶
- 惱惱吟
- 待鄕信
- 登蘆嶺
- 過長城
- 望瑞石
- 夕過柳林
- 次林黙齋相基賦擣衣 【二首】
- 又
- 和兒課丹楓
- 戱林黙齋觀演陣
- 田家卽事
- 捕鼠吟
- 謝高時愈書
- 漫吟
- 讀朴思菴【淳字和叔】遺集
- 敬次朴思庵養鷄韻 【四首】
- 除夕
- 元朝 【丙午】
- 蹴板詞
- 紙鳶吟
- 埋鬼曲
- 人日獨坐憶齋洞韻會仍用前韻漫成一律
- 立春
- 又
- 和李鉉模竹圃齋韻
- 上元
- 與高斯文世謙同賦春雪和皇明楊閣老士奇韻
- 聖學頌 【幷序引】
- 雅烏
- 春雨
- 大風
- 敬和朴訥齋【祥字昌世】四時絶句回文體
- 和贈高斯文世謙安穩堂韻回文體 【二首】
- 二月已盡梅花不發有感而賦 【二首】
- 春夜雨中述懷
- 三月見梅
- 訪梅
- 寒食携朋登後岡
- 梅花初開復用東坡韻賦得一疊
- 復用前韻賦梅花排律
- 贈沈石愚樂疇
- 又
- 留別沈石愚
- 春晝卽事
- 題朴訥齋遺集後
- 春事六言 【二首】
- 聞社鵑和朴訥齋韻 【二首 附原韻】
- 咏初夏復用前韻
- 代人輓千世祿 【二首】
- 登高觀燈
- 戱贈林黙齋
- 長興歸路望竹樹
- 過綾城
- 過松石
- 過倭嶺
- 登倭嶺
- 望寶城
- 望軍津浦
- 夜尋蛇峙浦店
- 登蓼嶺
- 過長興邑
- 過夫山
- 過皮嶺
- 訪白雲洞
- 望瑞石
- 過三忠門
- 與表兄曺舜瑞唱和 【二首】
- 贈別
- 過鼎谷
- 和朴訥齋山居百絶韻 【寓言軆 附原韻】
- 題後
- 漫吟用前韻
- 先考妣祠版移奉立石祝文 【閏五月什一日乙未】
- 慰安祭祝文
- 洛行寫懷 【三首】
- 卷之四
-
- 薇泉進士在顯【德夫】舍會諸宗人司果在獻【字文徵號水邱德夫伯氏】參奉在鶴【字聖臬號淇堂德夫從兄】海石翁述鉉【字幼善滄洲後孫】作文酒游 【丙午在洛】
- 種瓠者說
- 旅舍漫吟
- 夜宿黃進士鍾顯家【字樂韶號怡山快齋基鎬之子】唱酬一律
- 中元旅舍移僑戱題
- 城市
- 出八角亭與宗人在鴻【字聖翼號石下】携酒唱和
- 約德夫往聖翼舍會權進士用直【汝敬蘭史】洪進士在愚【景淵海士】置酒酬韻
- 霜朝偶吟
- 璧洞舍進士景九索吟走筆塞請
- 雨中漫吟復用景九韻
- 復用聖翼韻咏得鳳臺律
- 復用黃樂韶韻
- 復用德夫韻
- 賀德夫筮仕【孝陵參奉】
- 夜半枕上偶吟
- 約石下【在鴻】海石兩宗人往諫洞進士秉鉉【彛則蘆山】家呼酒作花樹會 【三首】
- 旅舍咏懷三十韻一百五十疊
- 文臣應製林下風淸共一香排律七言八韻 【十一月初六日 ❍詳見第六卷尺五日記 ❍司馬溫公三色梅詩曰臺前日煥分三色林下風淸共一香云云】
- 又
- 曉吟
- 和陶淵明擬古
- 與水邱【在獻】唱酬拈月沙韻
- 敬和小摩山翁【承旨在田字汝見】梅花韻 【五首】
- 又與水邱唱和拈月沙韻
- 又拈林孤山梅花韻
- 又拈月沙韻
- 次洪南原錫謨梅花韻 【十一首 ❍鍾鐘兩韻雜錯互用觀者恕之】
- 水仙花
- 和水邱
- 旅夜月夕漫吟 【三首】
- 約蘆山【彝則】往石下【聖翼】舍置酒拈明律酬和 【三首】
- 迎立春
- 立春 【二首】
- 匏洞旅舍逢除夕 【三篇】
- 盃山【景九】舍會蘭皐楓山呼酒酬韻 【丁未上元 二首】
- 大風
- 又
- 約盃山楓山愚堂【李生敦初】諸騷朋入花開洞訪蘭皐拈淸詩同賦一律
- 約蘆山盃山兩宗人訪薇泉【德夫】宗人拈月沙集同賦一律冷洞李晉史有駿亦至
- 盃山舍夜與松下【李晉史鳳震居唐津】楓山擧酒話懷
- 約盃山楓山訪松下僑舍置酒呼韻石芝【兪參奉景煖字命汝】蘭皐亦會
- 雨中偶吟
- 雨朝述懷
- 夕與楓下【金校理世均】拈唐律酬韻
- 雨中漫吟
- 夜與趙晩厓鍾奎【仲容】唱和
- 匏洞旅舍與具少綾廷錫【綾山行遠之子】唱酬
- 贈別具少綾
- 享役歸路過蜂峴【順懷墓寒食享官墓在敬陵傍】
- 過弘濟院
- 過西城偶吟
- 三月五日作鄕行滯雨宿靑坡洪家與宗人在浩【養善】酬韻家侄喜卿亦和 【三首 ❍二月二十六日 王大妃殿寶齡四十稱慶庭試親臨春塘臺取十人京表周羣臣賀如南山之壽鄕賦稱彼兕觥趙雲卿鄭直東 李振采李鐘淳洪秉壽李秉珪金完植金元植林昞黙權世祐卽日放榜 ❍喜鄕與養善以觀光上來仍與携小驢作伴還鄕】
- 發靑坡過石稜
- 漢江舟中
- 過僧房店
- 度冠嶽
- 登南泰嶺
- 訪蘆山店
- 過紫津洞
- 過肆覲川
- 踰遲遲峴
- 度彌勒堂
- 萬石渠路中戱贈養善
- 出隋城南門
- 過柳川
- 過泥灘
- 早發梧山
- 振威途中
- 過喜桃源
- 七原路上
- 素沙路中
- 過成歡驛逢公州中軍
- 過瑟音所
- 早發稷山三街
- 天安路中
- 登道里峙
- 午發金蹄店
- 德坪路中 【二首】
- 登車嶺
- 朝發廣亭
- 弓院道上
- 過慕老院
- 望公州山城
- 錦江舟中
- 過去思幕
- 過板峙訪神院寺
- 神院寺
- 方丈
- 菩薩
- 神院
- 隱巖
- 木筧
- 少女泉
- 龍王潭
- 瀑布
- 指路僧臣初
- 古王庵
- 夜雨
- 朝別招提
- 訪新都
- 入鷄龍山
- 觀龍湫
- 憩帶霞洞小店
- 暮訪魯城
- 朝過草浦
- 沙橋途中
- 鴨頸途中
- 過楮橋
- 過皇華亭
- 過礪山邑
- 過炭峴復用前韻
- 朝發金剛店
- 參禮途中
- 細川道上
- 望文學臺
- 暮尋鹽巖
- 朝過鍮店
- 雲巖路中
- 路過栰亭逢梁友必弘【昌平人】
- 登栗峙
- 過可丹驛
- 栢峴乘舟
- 過中酒院
- 踰蘆嶺
- 夜憩雙巖
- 雙巖雨中
- 風雨午發雙巖
- 過淳昌邑
- 夕尋坊築洞
- 憶銅田
- 坊築洞店舍夜吟
- 朝過四望洞
- 望秋月山城
- 路中咏竹
- 過潭陽府
- 望俛仰亭
- 望瑞石
- 望佛臺山
- 過九巖戱吟
- 望松江亭
- 憩負舟巖
- 過鏡湖漫吟
- 代人輓鄭進士鴻耆
- 又
- 又
- 輓曺錫胤 【代家兄作】
- 梧月堂記 【靈光月山宋進士敎煥自號】
- 和梧月堂壁上韻
- 秋九月哉生明與從弟聖楫從子容寬携小驢作東湖行踰栢峴漫賦一律
- 福川路中
- 登勿染亭次主人羅滄洲【茂松】板上韻
- 登松峙訪谷城國師洞
- 過龜山坪
- 欲訪松廣寺因道伯遊會而未果戱賦一絶
- 過大川院
- 過光陽邑
- 入白雲山
- 憩松川寺
- 登白雲山
- 過蟾津
- 訪良田
- 訪兎洞用唐人韻
- 兎洞雨中
- 免洞月夜
- 渡文尺江
- 登方山
- 鴨綠舟中 【進退格】
- 過谷城
- 訪鶴谷 【在玉果舍仲氏携小室方住】
- 留贈金斯文兢淵
- 兒課戱吟 【戊申】
- 醉狂齋記 【同福舟坪宗丈顯奎燦甫自號】
- 和醉狂翁挾仙亭韻
- 夜宿安心村塾和郭老人邦華咏月韻
- 踰長佛嶺
- 秋八月作京行【驥兒同進】過有成街寫懷
- 霧中過日新驛
- 霧中望華城
- 盃山舍夜話
- 夜宿盃山舍
- 晩秋夜又與盃山酬話
- 夜又與盃山相酬徐斯文永魯亦和
- 孝子田耕百傳
- 和田耕百孝行韻
- 贈黃監察起漢
- 溪愚舍夜與竹村唱酬碧潼李老人鎭秀淸風申斯文在黙亦和
- 卷之五
-
- 10월(十月)
- 11월(至月)
- 12월(十二月)
- 元朝賀箋 【己酉 ❍大王大妃殿 周甲代人製海伯賀箋】
- 人日出楊花渡過鵞峴漫咏
- 過東氷庫賦伐氷
- 乘氷楊花渡
- 贈金城太守【在獻】五絶
- 作楊湖行曉出東門
- 過箭串望綏陵【翼宗大王陵所】
- 朝次廣灘
- 午憩石室講堂【金淸陰書院堂名進學堂】
- 過馬嶺
- 二水頭迫昏乘舟
- 楊根途中
- 復路月桂浦仍用前韻
- 又
- 午涉古郞浦
- 海洋浦口觀氷穴獵魚
- 早發斗尾浦
- 過平邱驛
- 憩忘憂里
- 望道峯
- 鼓巖路土
- 訪宣陵【成宗大王陵所】出南門狹逕
- 泛舟西氷浦
- 入宣齋夜與齋卽盃山携笻上奉恩寺
- 朝別盃山復用前韻
- 墮箑吟
- 復渡氷湖重用前韻
- 續自警箴 【幷小序】
- 肇夏漫吟
- 代本道儒生等上禮曺書
- 憲宗大王挽詞
- 代人輓鄭彦禹 【秋八月自京還鄕】
- 春正月旣望翌夜與念珠洞沈斯文能彬擧酒酬韻順天月嶝丁生擎斗適來同和 【六首庚戌】
- 和高老人宣謙書室花塘韻
- 和高老丈火爐韻
- 和高老人
- 又
- 黙齋記 【長城新村林相基德亨自號】
- 與鄭斯文大杓携酒娥登壇戱賦一絶
- 戱和高老人春雨韻
- 和高老人霽景韻
- 遷墓祝 【四月二十三日】
- 和開龍齋韻 【三首 ❍高斯文世謙方住此齋】
- 咏圃菜十六種
- 代人輓朴聖源
- 輓心谷老人白箕錫 【五首】
- 輓白宗錫 【二首】
- 古玄齋記 【高老人宣謙自號居靈光綾峙】
- 和古玄翁
- 放軒記 【隣居姜君冑瑛自號】
- 與張斯文鳳圭【瑞玉】唱和 【辛亥】
- 翌日又與酬韻全斯文一壽亦和
- 鸛村金斯文兢淵黃龍宗人復燦來訪夜與唱酬拈明律喜卿亦和 【二首】
- 和李台瑞花隱齋韻
- 與宋斯文廷鉉【聖佐】拈明律相酬喜卿亦和 【三首】
- 雲溪幽居記
- 和雲溪庄楣上韻
- 與宋聖佐又與唱酬宋生在錫亦和 【十首】
- 贈別宋聖佐
- 贈李醫樂獻
- 送桂軒主人李君樂獻子文歸大草【綾州村名】序
- 代人輓曺老人
- 咏梧桐復用前韻
- 醉蓬萊 【幷誌】
- 代製喜卿禱兒文
- 初秋望夜感懷得兩絶
- 琰珀鬼歌 【幷引】
- 戱賦十二辰六律
- 和雅誦十二辰韻
- 又
- 南柯子 【幷誌】
- 霧縠硯銘 【幷小序】
- 烏咮硯銘 【幷小序】
- 馬肝硯銘 【幷小序】
- 醉崑崙 【幷誌】
- 感士不遇賦 【幷誌】
- 憶黃晨橋鍾憲用靑蓮憶賀監韻 【二首】
- 憶匏泉金令公胤根【字雨若乙巳生】百韻
- 輓韓進士宇祥
- 憶風溪金台鼎均【字台叟壬寅生】五百字
- 八月十二日觀川漲步杜詩三川二十三韻
- 雨後咏霽景
- 玉秫爲鼠所失戱賦二十一韻
- 觀野
- 龍岡路中
- 登屯兵峙望和順邑
- 夜尋安心村
- 憩安心村東大樹下高巖戱得短篇
- 醉睡安心舍戱得短絶
- 過桃源洞 【四首】
- 登長佛嶺
- 手鈔瓌林序
- 摘禾
- 東堂聞喜 【九月二十日】
- 九月之望訪扶安倅輔鉉【公弼】與冊客吳石坡升黙登西林亭酬唱本縣詩人白鶴來及宗人正源亦和
- 七絶
- 翌日復與吳石坡白靑田唱和朴生梧下亦參
- 秋色蒼唐石竇遙啇聲搖落楚聲消千山黯黯常疑雨萬木蕭蕭不掩條金侍郞豪同北海吳詞伯軆健南朝黃花酌酒招招立獨鶴西風海上霄【靑田】同福沙坪路中
- 訪和順烏城洞
- 月峯路中
- 過長城大麥洞
- 登斜路嶺
- 度興德卵山
- 夜宿沙浦【主人鄭氏名尹達】
- 過扶安茁浦
- 夜宿夏浦 【主人高氏名厚相】
- 宿儒游洞 【主人李氏名澈中】
- 又
- 謝金老人斗元
- 望格浦
- 宿馬浦 【主人李正模云】
- 謝李正模
- 謝李允模
- 返儒游洞
- 訪來蘇寺
- 過鵲堂峙
- 夜宿宗谷 【主人尹氏名致堯】
- 別邊山
- 夜宿高敞中里 【主人柳氏名恒植】
- 路過茂長竹山
- 宿白羊洞憶舊居書室
- 待堂兄 【兌休氏】
- 拜堂兄
- 午憩靈光生村高郞時傑家
- 朝發造山 【主人吾宗鼎爀云】
- 午憩飛鵝山朴友龍休家
- 歸家漫吟
- 除夕和金河西【麟厚字厚之】韻
- 新春復用前韻 【壬子】
- 遠志用前韻
- 太歲祝百句
- 飮酒百字令和陶淵明飮酒韻
- 二月七日發洛行【驥兒同進】路出柳林述懷
- 登蘆嶺
- 登披杳亭
- 出金溝土城
- 過皇華亭復用前韻
- 鳧頸路中
- 度馬廐坪
- 渡錦江
- 滯雨宿慕老院
- 車嶺路中
- 贈連山李斯文顔愚
- 朝發天安邑店戱吟
- 弘景途中
- 早發漆原店
- 過華城
- 朝過紫津洞
- 登南泰嶺
- 望長安
- 渡漢江
- 風溪漫吟
- 溪家
- 綠陰
- 往長興庫與奉事用鉉唱酬
- 石下【聖翼】舍會李斯文寅龍【石下友壻】唱酬
- 贈海石翁
- 上銓長啓 【吏判金台洙根】
- 奉和海石翁雨中吟
- 復用前韻續吟晴景
- 離俗
- 和杜少陵夜雨歎韻❍杜詩曰屋小茅乾雨聲大自疑身着簑衣臥兼是孤舟夜泊時風吹折葦來相佐我有愁襟無可那纔成好夢剛驚破背壁寒燈不及螢重挑却向燈前坐
- 和李沇愁霖歌 【二絶】❍李沇詩曰西方龍兒口猶乳初解驅雲學行雨縱恣羣陰駕老虯勺水蹄涔盡奔注❍葉破苔黃未休滴膩光透長庭莎色恨無長劍一千仞割斷頑雲看晴碧
- 未暮聽鵂鶹
- 伏聞 聖上親製喜晴詩近臣賡和追賡一韻兩絶
- 御製
- 追賡 御製春雨詩
- 御製
- 太古亭上流濯足
- 手抄東坡事文戱賦一律
- 月下槐影
- 外補丹邱丞溪夜咏懷
- 出東門
- 楊根路中
- 朝過砥平
- 安昌路中
- 原州邑推去兼官印符戱賦一絶
- 和羽化堂板上退漁翁【鎭啇字太白】韻
- 原韻 【二首】
- 卷之七
-
- 東征自叙
- 凡例
- 東征上【兼日記壬子】
- 出拱北門【自丹邱約可爲十里】
- 安昌橋頭口店【安昌卽丹邱屬郵而兼有本邑倉廨】
- 安昌村舍夜吟【自拱北門抵安昌三十餘里】
- 奉陪彩輿路中有感
- 登加里坡嶺【自原州邑三十里】
- 神林排悶【自加里坡十里】
- 登杻峙【俗名楂裏峙自神林十里】
- 酒泉月夜泛舟江上【自杻峙三十里】
- 過板雲【原州平昌兩邑交境自酒泉二十里】
- 度藥水驛【自板雲三十里】
- 平昌迷懷【自藥水十里】
- 越舟峙【平昌江陵兩邑交境自平昌邑可二十里】
- 芳林路中【丹邱屬郵自舟峙十五里】
- 夜宿大和【自芳林十五里】
- 小斤路中【自大和二十里】
- 躋沒烏嶺過仁樂院【自小斤至嶺上五里自嶺上至仁樂院五里】
- 淸心臺【自仁樂院約爲五里】
- 午憩珍富驛【自淸心臺十五里】
- 月精洞口口占【自珍富三十里】
- 發月精訪史庫
- 淸凉僊館口占
- 發淸凉館
- 登中臺
- 上院庵奉展宣廟朝手寫蘭竹遺幅
- 上院庵戱咏雙桂樹
- 掛袍石
- 復向月精
- 朝發月精
- 高橋路中【自月精三十里】
- 橫溪路中【自高橋二十里】
- 登大關嶺【自橫溪至嶺頭十五里】
- 過濟民院【自嶺上十五里】
- 訪道橋【自濟民院五里】
- 五峯書院【自訪道橋南距五里】
- 孔夫子畫像贊
- 朱夫子畫像贊
- 尤庵老先生畫像贊
- 天淵亭【自五峯書院回到五里在紡道橋西】
- 擧火向臨瀛【江陵舊號又曰溟州】
- 朝發江陵
- 烏竹軒【自官十里】
- 鏡浦臺【自烏竹軒相去五里】
- 泛舟鏡湖
- 夜行浦口聽海狗亂吠
- 夜過西根巖觀月出【自鏡浦二十里】
- 朝發蓮谷【平陵屬郵又有江陵外倉自西根巖十里】
- 牛巖路中【自蓮谷二十里江陵襄陽兩邑交境平陵祥雲兩驛遞馬】
- 午憩洞山【祥雲屬驛自牛巖二十里】
- 茀浦路中【自洞山二十里】
- 登太平樓
- 過延倉驛【祥雲丞衙門自襄陽官五里】
- 洛山寺【自延倉驛可爲十里】
- 洛山古鐘
- 望海
- 梨花亭
- 義相臺
- 觀音窟
- 義相臺觀日出【用唐人韻】
- 雨中過降仙驛【祥雲屬驛自洛山纔十里】
- 神興寺【自降仙三十里】
- 飛仙臺【自寺門西五里】
- 臥仙臺【飛仙臺下約爲一里】
- 朝發神興寺
- 訪內院庵【自神興三里】
- 繼祖窟【自內院七里】
- 先日庵
- 黃土峙【自元巖驛十里】
- 淸澗亭【自黃土峙十里】
- 自磨石【自淸澗亭五里】
- 浮石【亦在鵝也津頭】
- 凌波臺【自鵝也津五里】
- 朝發杆城【自凌波臺三十里】
- 雲根驛路中【自杆城十餘里祥雲屬郵】
- 過花津浦【自雲根十里】
- 午憩大津【自花津二十里】
- 懸鍾巖【自大津三十五里】
- 繫舟巖
- 帶湖亭【自懸鍾巖十五里】
- 海山亭敬次尤庵先生韻
- 龜巖
- 朝發高城
- 海金剛【自高城東十里】
- 泛舟三日浦【自海金剛西二十里】
- 四僊亭次板上聯句韻
- 夢泉庵
- 朝發養珍【祥雲屬郵自夢泉庵二十五里】
- 長箭路中【自養珍十五里】
- 瓮遷【自長箭二十里】
- 朝珍歇馬【祥雲屬郵自瓮遷二十里】
- 通川夕陽路中【自朝珍五十里】
- 高堤路中【自通川十五里】
- 叢石亭【自高堤五里】
- 金蘭窟【自叢石南二十里】
- 朝發通川
- 門巖【自通川二十里】
- 長林路中【自門巖十里】
- 宿朝珍驛舍【自長林二十里】
- 登百井峯
- 錦繡峯
- 題名
- 艾輪峙【自朝珍十里】
- 投長箭浦村【自艾輪峙三十里】
- 望養珍驛
- 溫井【自長箭二十里】
- 萬物草【自溫井三十里】
- 復訪溫泉【自萬物草降而復路可爲二十五里】
- 訪神溪寺【自溫泉十五里】
- 卷之八
-
- 東征下【兼日記壬子】
- 五仙嵒【自神溪寺五里】
- 坐鼎巖【自五仙岩三里】
- 仰止臺【自坐鼎岩三里】
- 金剛門【自仰止臺四里】
- 玉流洞【自金剛門五里】
- 連珠潭【自玉流洞二里】
- 舞鳳瀑【自連珠潭二里】
- 飛鳳瀑【與舞鳳相隣】
- 淵潭橋【自飛鳳瀑可爲一里】
- 九成臺【自淵潭橋二里】
- 九龍淵【自九成臺三里】
- 普光庵【在神溪西未滿一里】
- 神溪寺次萬歲樓板上韻
- 風夜口氣
- 復過養珍【自神溪寺十里】
- 花雨村路中回望神溪前峯【自養珍十里】
- 五柳村路中【自花雨村十里】
- 午憩掠庫【自五柳村十里】
- 城隍堂【在掠庫與百川橋間】
- 百川橋【自掠庫十里】
- 狗嶺【自百川橋至嶺上十五里】
- 獐嶺【與狗嶺相接】
- 楡岾寺【自獐嶺十五里】
- 盧春祠
- 無烟室
- 烏啄井
- 船潭【自楡岾三里】
- 曉雲洞【自船潭復路數里】
- 隱仙臺望十二節瀑【自曉雲洞六七里許】
- 望七寶臺【隱仙臺五里路遠望又可爲五里許】
- 鴈門嶺【自隱仙臺至嶺上十里】
- 百花潭【自嶺上十里餘】
- 四僊巖【自百花潭一里餘】
- 妙吉祥【自四仙巖數里許】
- 佛地庵【表訓寺屬庵自妙吉祥數里許】
- 摩訶衍【又表訓屬庵自佛地庵約爲五里】
- 夜和富欣上人
- 萬灰庵【自摩訶衍東北三里】
- 白雲臺【自萬灰庵七里云而尙過十里】
- 望衆香城
- 八潭【自摩訶衍入八潭初境爲數里】
- 火龍潭【八潭初境第一折】
- 船潭【第二折】
- 龜潭【第三折】
- 眞珠潭【第四折】
- 噴雪潭【第五折】
- 碧波潭【第六折】
- 琵琶潭【第七折】
- 黑龍潭【第八潭】
- 普德窟【自摩訶衍爲十餘里】
- 白龍潭
- 洗頭盆
- 萬瀑洞【自摩訶衍十里自眞珠潭爲五里自普德里窟亦可爲五里】
- 金剛門【自萬瀑洞三里】
- 歇惺樓【自金剛門距表訓寺二里自表訓寺西距五里】
- 藥師殿
- 天逸臺
- 表訓寺【在正陽寺東五里】
- 復過萬瀑洞【自表訓五里】
- 靑壼淵【在滿瀑西未滿百步卽圓通門路】
- 龍曲潭【靑壼淵上流】
- 龍湫【龍曲潭上流】
- 圓通庵【自龍湫六七里】
- 望凌波峰【在圓通北遠可十里】
- 望獐項峯【圓通二里許路東望可爲五里餘】
- 萬折洞【自圓通二三里】
- 太上洞【萬折上流可爲一里】
- 淸冷瀨【太上上流不甚相遠】
- 慈雲潭【淸冷上流未滿一里】
- 羽化洞【慈雲上流可爲一里】
- 赤龍潭【羽化上流可爲一里】
- 降僊臺【赤龍上流可爲一里】
- 須彌塔【自降仙可爲數三里】
- 復入圓通庵【自須彌洞復路十里】
- 復登凌波樓【自圓通復路十里】
- 白華庵【表訓屬庵自表訓南一里】
- 三佛巖
- 鳴淵【自白華南五里】
- 地藏庵次楣上韻【自鳴淵五里長安寺屬庵】
- 鳧巖【在地藏庵東北路傍數里許】
- 玉鏡臺【自地藏東數里】
- 黃流潭【在玉鏡臺下】
- 金蛇窟【自黃流潭東可爲一里許】
- 水簾洞【自金蛇窟東北行二十里】
- 靈源庵【長安寺屬庵自水簾洞二十里】
- 海恩庵復用佛地庵韻【在長安寺東隅自靈源二十里自地藏纔數里】
- 長安寺
- 長安寺漫吟
- 敬次椒泉翁贈別徐尙書韻
- 發長安寺出萬川橋
- 長北倉送准陽候吏【自長安寺二十里】
- 斷髮嶺【自長北倉至嶺上二十里准陽金城交境以北准陽地以南金城地】
- 夜宿通口倉村【金城外倉自斷髮嶺三十里】
- 霧中發通口
- 過兀望峴【自通口十里】
- 歇馬昌道驛【自兀望峴二十里】
- 大虎洞路中漫吟
- 望金城邑【自大虎洞十里】
- 金城衙舍夜呈椒泉翁
- 金城衙中偶得一絶
- 敬次椒泉翁贈別韻
- 釜谷峙路中【俗名駕馬谷自金城邑十里】
- 越勿驅峙馬上戱吟【自釜谷峙十五里】
- 憩瑞雲驛舍【銀溪屬郵自勿驅峙五里】
- 登竹坡嶺【金城狼川交境自瑞雲二十里】
- 夜宿山陽驛舍【銀溪屬郵自竹坡嶺二十里】
- 退洞路中【自山陽十里】
- 四方街路中【自退洞五里】
- 登彌勒嶺西望巴浦里【自四方街至嶺上五里】
- 過狼川邑【自彌勒嶺二十里】
- 南江路邊東望居禮村舍【於狼川邑可爲十里】
- 憩原川驛舍復用山陽韻【自狼川邑十五里】
- 步涉浦望西五池村屋【狼川春川交境自原川五里】
- 踰馬峴【自步涉浦至峴上十里】
- 憩脚馬峴店【在嶺之南】
- 泛舟毛津江【南江下流自馬峴五里】
- 夜宿仁嵐驛【丹邱屬郵自毛津江五里】
- 過水抱嶺【俗名勿抛里峙自仁嵐五里】
- 驀花遷【俗音別隅自水抱嶺十里】
- 度武陵潭【自花遷十里】
- 泛舟昭陽江【毛津江下流自武陵潭十里】
- 登昭陽亭
- 登飛仙亭
- 憩保安驛【丹邱屬郵自昭陽亭五里】
- 度原昌峴【自保安驛至峴上二十五里】
- 投宿原昌驛舍【丹邱屬郵自峴五里】
- 回川路中【自原昌五里】
- 越沙嶺【俗名暮來峙自回川五里】
- 踰俯睡院嶺【自沙嶺十五里】
- 憩夫燧院店【春川洪川交境自嶺五里】
- 過柏峴【自夫燧院店十五里】
- 登泛波亭次楣上韻【自栢峴五里】
- 過洪川縣復用前韻
- 夜宿蓮峰郵店【丹邱屬郵自泛波亭復路可爲一堠】
- 長田路中【自蓮峯十里】
- 玉流洞【在長田路西】
- 藥水巖【玉流上層自長田五六里】
- 三馬嶺【自藥水巖至嶺上十里】
- 蒼峰路中咏霧後景【洪川橫城交境自三馬嶺十五里】
- 憩蒼峰郵店【丹邱屬郵橫城地】
- 過溪谷亭【村名〇自蒼峰十里】
- 後川【自溪谷亭十五里】
- 夜宿橫城縣司【自後川五里】
- 朝發橫城
- 曲橋路中【橫城原州交境自橫城邑十里】
- 望原州【自曲橋三十里】
- 歇營下
- 入丹邱【自營下五里餘】
- 卷之九
-
- 神林口氣【壬子◌此一篇當在東征日記中而逸而不載故追錄之】
- 西征賦【幷小序】
- 發澄淸軒【關東宣化堂】
- 夜投安創驛舍【自丹邱四十里】
- 午憩砥平邑【自安昌六十里〇縣監任惇常蔭通訓】
- 夜尋楊根邑【自砥平邑三十里◌郡守吳泰雲蔭通訓】
- 月桂路中【自楊根邑三十里】
- 秣馬奉安郵【自月桂二十里】
- 夜砥平邱驛【自奉安三十里】
- 入長安【自平邱四十里】
- 入春曺呈箋文
- 戱吟
- 南至翌日復路出興仁之門【十三日】
- 過斗尾浦【自興仁之門五十里】
- 乘舟高浪浦【自斗尾浦三十里】
- 越松峙【自高浪浦一百十里】
- 小桃岸捷逕【自松峙三十里距丹邱又三十里】
- 雉嶽辭【幷小序癸丑】
- 國香寺【幷序】
- 雉嶽祠【在丹邱東相去十五里許】
- 手抄眉山蒐獵序
- 先考妣言行實錄序
- 往役越中立馬述懷【幷小序】
- 過丹邱村
- 登可利坡嶺【自丹邱二十五里】
- 憩馬神林【自嶺上十里】
- 登杻峙【自神林十里】
- 越松峙復用前韻【自杻峙二十里】
- 夜宿神興【丹邱屬驛自松峙五里】
- 過恭順院越蒜谷峴【自神興十五里】
- 望琴下洞過斜瑟峙【自蒜谷峴十里】
- 過提川雜地【原州寧越兩邑交境自斜瑟峙五里】
- 越黃峙【寧越初境自雜地五里】
- 午憩龍井院【自黃峙十里】
- 楊淵路中【丹邱屬驛自龍井院二十里】
- 登刻恨峙【自楊淵五里】
- 望飛洞【在刻恨峙北相去可一堠】
- 淸冷浦【幷誌〇自覺寒峙五里】
- 杏亭村【在寧越邑南與邑相接自淸冷浦十里】
- 子規樓【幷誌三首】
- 觀風軒【幷誌】
- 錦江亭和壁上韻【在邑東一里許】
- 愍忠祠【幷誌】
- 瓊春碑【幷誌】
- 泛舟錦江【幷識】
- 落花巖【幷識】
- 彰烈巖【幷識】
- 過嚴判書碑閣【幷誌】
- 彰節祠【幷誌】
- 過陵村【自彰節祠數三里】
- 拜鵑亭【幷識】
- 莊陵【幷誌二首】
- 配食壇【幷誌】
- 靈泉【幷識】
- 朝發越中
- 舟過西江【淸冷浦上流在刻恨峙東】
- 復入龍井院
- 登淸虛樓謹賡宸章閣御製韻【幷識】
- 復宿新興【自酒泉五里】
- 復憩神林
- 金臺洞【自神林二十五里】
- 太平橋路中【自金臺洞五里距丹邱又五里】
- 春雪【二首】
- 賦庭前芍藥
- 游雉嶽錄
- 鷰目沼路中
- 下一論
- 上一論
- 指羅村
- 鴒[原+鳥]庵
- 羅漢庵
- 天嶺
- 南臺峰
- 上院庵
- 雙龜石
- 三魚石
- 華嚴臺
- 桂樹
- 龍馬臺
- 獅子石
- 甘露泉
- 兄弟峰
- 望華臺
- 世尊臺【臺如削難登巖石阧絶處有木根拳曲透出如大鐵環用之可攀援以登】
- 門巖
- 躑躅花
- 上普門
- 東臺
- 山神堂
- 下普聞
- 過雉嶽祠
- 新達巷
- 過巨廩垈復用前韻
- 過元耘谷墓
- 靑蓮庵
- 石經庵
- 穴巖
- 立石臺
- 贈別金剛僧海峯【僧名右正】
- 向京師渡駕鶴橋述懷【四月二十九日】
- 過鶴城
- 度留門店【自鶴城五里】
- 望宗【自留門五里】
- 蛇橋【自望宗五里】
- 廣垈憩脚【自蛇橋二里】
- 馬鞍峙【俗音叱馬峙自廣垈三里】
- 荊川【自馬鞍峙五里】
- 雀臺洞【自荊川二里】
- 馬蔡峴【自雀臺洞三里】
- 渡安昌橋【自馬蔡峴扺安昌驛五里】
- 梨雲【自安昌五里】
- 松峙【原州終境自梨雲十里】
- 釜淵復用前韻【自松峙五里】
- 西華【自釜淵十里】
- 秧坂【俗音毛字里自西華十里】
- 儲粮峙【自秧坂十里】
- 砥平【自儲粮峙十里】
- 馬川市基【自砥平五里】
- 黑川【自馬川五里】
- 馬嘴峴【與黑川相接】
- 堂舞雩【自馬嘴峴五里】
- 白峴【與堂舞雩相接】
- 路博多隅【自白峴五里】
- 白洞【自路博多隅五里】
- 新舞雩【楊根邑店自白洞五里】
- 瓮巖【自楊根五里】
- 德九谷【自瓮巖五里】
- 沙洞市墟【自德九谷一里】
- 水斗瓮【自沙洞市墟五里】
- 鍮臺洞【自水斗瓮五里】
- 半亭【自鍮臺洞五里】
- 月溪【自半亭五里】
- 野宿二水頭【自月溪十里】
- 高浪浦【自二水頭五里】
- 鳳安驛【自高浪浦五里】
- 上海洋【自鳳安十里】
- 下海洋【自上海洋五里】
- 九斜里【自下海洋五里】
- 糕淵【自九斜里八里】
- 平邱驛【自糕淵二里】
- 助願【自平邱五里】
- 畿營屯地【自助願十里】
- 忘憂里【自畿營屯地五里】
- 徽慶園路中【嘉順宮朴嬪園所自忘憂里十里】
- 鼓巖【自徽慶園五里】
- 興仁之門【自鼓巖五里】
- 五月十日復出東門路中寫懷
- 陰陽硯銘
- 平昌鷄心硯銘
- 新秋凉夜
- 躑躅杖歌
- 又
- 雉嶽享役
- 秋八月小晦夜余金海史冀淵戱得一律
- 秋九月往金臺洞訪韓詞伯灃履其季奉事鵬履亦自洛下來會
- 習射
- 奉和晩可詞伯【朴受豊字雉瑞】兼呈北郭卯兄【金台秀字子三】
- 靈鳳碑贊【幷碑文】
- 書東海碑帖子後【幷碑文】
- 復和金景瑞韻
- 約金子三【台秀】與李穉綏【豊植】穉百【肯植】兄弟入後洞訪李養汝【泰植穉百之三從弟】
- 元天錫事實
- 黃戊辰事實
- 御書碑閣【幷誌】
- 卷之十
-
- 古樂【癸丑】
- 古文
- 上朴參判齊憲書【朴台以金剛之行方來住于其渭陽龜石亭李台根友家】
- 答洪安城祐信書【洪使祐順之弟〇此書當載去年日記而忘略之故追錄之】
- 賀金校理炳學書
- 上金判書【洙根】書
- 答牛江校理永秀書 【方居驪州】
- 答李參判根友書 【自京僦居于原之邑東龜石亭】
- 答尹原州濨一書
- 與金善山敬鎭書
- 答權進士基和書 【權古阜錫孝季胤居原之康川】
- 答朴斯文敎熙書 【居原邑南】
- 答權斯文敎正書 【方居江陵烏竹軒】
- 答李洪川容準書
- 答金原州炳皐書
- 上淸辭 【幷小識】
- 霜朝渡蟾江
- 過藥房稜 【在月桂二水頭十里之間】
- 與冷泉在鴻書
- 回過安昌郵望建登山有感興法碑次李松齋韻賦得一律 【幷識】
- 答安郞廳洵書
- 上答使相書 【吳參判取善十一月初八日〇此書當在上淸辭以前】
- 答嚴郞廳錫濟書
- 答李中軍敏庠書 【此書當在去年】
- 與銀溪丞崔掌令尙儒書
- 答權郞廳絳書
- 答金斯文台秀書 【方居原邑之北】
- 答閔斯文景翼書 【方居康川】
- 與宋江陵端和書
- 答金先達雲漢書 【方居淸安】
- 答金橫城沃根書
- 答李旌善溭書
- 答南掌令大儒書 【自關北移寓原之大東里】
- 答吳先達顯圭書
- 答鄭中軍㶊源書
- 答宋斯文特性書 【自京寓居於原之牛斗山下】
- 與金承旨世均書
- 與金心窩啓鎭書
- 上吏判【箕晩】書
- 上騎判金台【洙根】書
- 上永恩府院君金台【汶根】書
- 上洪判書【耆燮】書
- 上益豊國舅洪台【在龍】書
- 與金承旨炳學書
- 與金承旨炳國書
- 上三松金判書【輔根】書
- 上海蕆申參判錫愚書
- 上參判【在田】書
- 與直長容鉉書
- 上仁川在成書
- 與承旨輔鉉書
- 與翼鉉書
- 與都事在顯書
- 與在鴻書
- 與箕恒書
- 答金斯文冀淵書【方住安昌】
- 與朴斯文受豊書【方居原邑之外北】
- 與李斯文肯植書【方住丹邱之鍊丹亭】
- 東史要覽序
- 書姜睡隱看羊錄後【甲寅】
- 漂海錄叙
- 答洪斯文岐周書【方居原之新林】
- 答權進士錫耈書【自京蓮洞移住于原之康川】
- 答趙斯文斗年書【方住江陵鶴山】
- 答洪斯文卨謨書【方住丹邱】
- 賀金參判炳國書
- 衡山神禹碑歌【幷志】
- 早起有感復用羽化堂【丹邱衙軒】板上韻
- 登挾仙樓【丹邱衙門樓】
- 駕鶴橋【幷志】
- 鍊丹亭【幷志】
- 馬祭壇【幷志】
- 月隱亭【幷志】
- 龜石亭【幷志】
- 閱武堂【幷志】
- 觀風閣謹賡御製韻【幷志】
- 蓬萊閣【幷志】
- 喚仙亭【幷志】
- 再入越中踰杻嶺偶吟【幷志】
- 過淸冷浦【幷志】
- 過柰城館【幷志】
- 子規樓謹賡御製詞
- 錦江亭次退溪先生韻【幷志】
- 莊陵【幷志】
- 報德寺【幷志】
- 忠臣嚴興道古事
- 觀瀾亭古事
- 夜憩奧中邑店【幷小誌】
- 越衙別堂有感賦懷【幷小序】
- 回過刻恨峙【幷志二首】
- 過楊淵驛復用前韻【幷小志】
- 龍井院【幷志】
- 雜地路中【幷志】
- 復過酒泉登淸虛樓謹賡前韻【幷志】
- 訪洪氏幽居【幷小序】
- 過夜洪君訪余客店余爲往謝之
- 甕巖路中【幷小志二首】
- 杻嶺路中
- 午憩神林
- 望屯倉【幷志】
- 立馬可利坡嶺【幷志三首】
- 卷之十一
-
- 過洪家小亭次板上韻【甲寅幷誌】
- 與李郞廳源文書
- 與金承旨世均書
- 三入越中渡大平橋【幷小志】
- 神林驛舍午歇
- 楂裏嶺路中
- 路次新興
- 錦霞洞路中
- 喂馬龍井院
- 舟渡西江
- 子規樓謹賡 御製韻
- 小寒食與諸太守登錦江亭【幷志二首】
- 拈杜陵韻
- 瓊春碑【幷記】
- 晩發越中
- 小寒食西江舟中次杜工部韻
- 登覺寒峙復用前韻
- 秣馬楊淵驛
- 夜投龍井院復用前韻
- 萬衣谷路中
- 午憩酒泉
- 登淸虛樓復用前韻
- 酒泉石【幷志】
- 連理樹【幷小志】
- 松峙路中
- 夜宿神林院
- 金臺洞路中
- 望觀雪村【在金臺洞北相去二里許】
- 望柳灣【在太平橋東相去二里許】
- 答履鉉書【方住原之安昌月論】
- 答洪興德羲祿書【方住酒泉】
- 答洪進士肯謨書【方住丹邱】
- 憶上院泉復用酒泉石韻【幷志】
- 橫城路中【幷志五首】
- 夜宿鶴城掾舍
- 上永恩金國舅書
- 答原判書【姓名見上】
- 與江陵倅書【姓名見上】
- 平昌石六硯歌【幷小序】
- 碧月團
- 蓮葉龜
- 靑城鶴
- 小方塘
- 紫龍尾
- 安期棗
- 崔瑩傳
- 丹邱事實【幷小叙】
- 南北十二驛
- 東化七驛
- 北化十一驛
- 東游舊跡【幷記】
- 答金斯文台秀書
- 答洪宣傳俊謨書【方居丹邱】
- 禱雨入瑞谷路中口占
- 瑞谷龍湫一次祈雨祭祝文
- 雉嶽祠苒次祈雨祭祝文
- 喜雨歌【幷小序】
- 上參議台鉉書
- 答吳進士胤泳書【營門子舍】
- 夢虓兒
- 戱和吳德峰善【營門季氏】觀漲韻
- 上答使相書
- 上答李參判根友書
- 別蓬萊【幷小序】
- 別吳侍郞【幷小序】
- 鶴南飛【幷小序】
- 渡駕鶴橋
- 九萬里【幷小誌】
- 開雲橋【幷小誌】
- 出鶴城北門
- 午憩蛇橋店【自鶴城十五里】
- 過廣基【自蛇橋可一堠】
- 坐文幕村店【自廣基二十里有餘】
- 夜宿魯樹村店【自文幕十里】
- 過興元倉【自魯樹十里】
- 舟渡興湖
- 登介峙【驪州地自江上五里】
- 渡沙川【驪州地自介峙二十里云】
- 午憩蛇峴【驪州地自沙川十里】
- 過莊園【竹山忠州交境自蛇峴十里】
- 宿袞治【忠州陰城交境自莊園二十里】
- 過武邱市基【陰城地自袞峙十里】
- 午淹丹洞【陰城地自武邱三十里】
- 過淸安縣【自丹洞三十里】
- 夜投新店【淸安地自邑十里】
- 望栗峰驛【淸州地自新店四十里】
- 午住淸州邑店【自栗峯五里】
- 夜歇三街店【淸州燕岐交境自淸州邑四十里云】
- 泛舟東津江【燕岐地自三街十里】
- 過燕岐邑【自東津江五里】
- 過一橋店【公州境自燕岐邑二十里】
- 過日新驛【自一橋二十里】
- 午憩錦江店【自日新五里】
- 夜投魯城外店【自錦江五十里】
- 渡草浦【自魯城十里云】
- 午憩沙橋【連山地自草浦十里】
- 恩津途中【自沙橋十里云】
- 夜入金剛店【自恩津五十里】
- 滯雨坐金剛店
- 留宿參禮驛店【自金剛店二十里】
- 乘舟參禮前川
- 宿五木川【自參禮三十里云自金剛店至此皆屬全州地】
- 秣馬泰仁邑店【自五木川六十里云】
- 夜抵井邑新店【自泰仁邑四十里云】
- 朝歇牡丹巖【長城境自新店二十里云】
- 喂馬黔巖【自牡丹巖三十里】
- 過暮雨峙【自黔巖三十里云】
- 月峯夜行【光州地自暮雨峙二十里有餘】
- 歸家
- 卷之十二
-
- 5월(五月)
- 9월(九月)
- 10월(十月)
- 11월(十一月)
- 行路難【甲寅幷志】
- 感君恩【幷誌】
- 乙卯春率驥兒作雒行無味返鄕華城路中逢昌平朴友東龜呼韻漫酬卽三月三十日壬辰也【乙卯】
- 振威路中又酬一律
- 林錦湖事實
- 林觀海事實
- 金健齋事實
- 姜睡隱事實
- 往立石有感【玉果】
- 夜宿江村朴斯文東一家【昌平】
- 夜歇鷰川梁斯文必弘家【昌平】
- 竹僑老人韓錫斅醮甲讌【幷小序】
- 邑之政將何以盡其方而得其要均豊年之慶歟諸生必有講究于中願聞其說
- 憶鄭蘭下海明
- 憶蘭臯象鉉
- 訪柳洞
- 過雲巖祠【幷志】
- 北鄰逢諸詩人拈杜律走筆塞請
- 偶吟
- 輓全學元【三首】
- 登村後園林
- 夜宿靈光柯亭【主人李斯文光模】
- 過堂兄【兌休】墓【墓在長城廣巖村東數里】
- 午歇廣巖【主人鄭哀奎烈】
- 宿石灘【高敞】柳氏家
- 過沙溪村訪李斯文正煥
- 憩甲坪李甥成模家
- 過道山訪鄭參判誠一
- 復登松峙【高敞長城交境】
- 宿靑龍洞【主人長城宗人在林】
- 越小栗峙
- 過古珍原
- 憩大峙【光州地主人李斯文敬秀】
- 訪韓斯文七敎夜宿龍洞林家
- 宿會洞【潭陽地主人南斯文觀周】
- 度講亭里
- 宿簧山【玉果】
- 霧中過項村
- 憩針谷店【谷城】
- 夜宿獐巖店
- 過潺水驛【求禮】
- 憩竹岸白生家【復用前韻】
- 訪堂山夜宿全哀相圭家
- 入兔洞宿全生錫玉家
- 舟渡文尺
- 鴨綠舟中【求禮谷城交境】
- 憩蘇亭店【谷城】
- 復宿針谷店
- 朝憩東幕店咏雪復用東坡韻
- 午歇大明洞【玉果地主人沈斯文樂羲】
- 復宿簧山
- 過普坪【昌平】訪朴斯文東龜
- 卷之十三
-
- 晩秋憩雲龍村舍【丙辰】
- 訪紫薇
- 過梧峙訪鄭斯文浩黙
- 野宿角化兒家
- 和鄭斯文性黙聞香齊韻【龍珠村塾】
- 出小柳林
- 夜宿泉谷文生家戱用前韻
- 李松坡喜豊與文竹坡思健來訪拈金河西詩集酬得三壘
- 李松坡雪裏惠然鄭小山大杓亦至戱酬三律
- 與李松坡和東坡韻
- 李松坡文竹坡來顧戱和西湖詩帖韻
- 夜又和明人梅花詩韻
- 聞香閣【本州策室】夜與薇泉進士九鉉呼韻相酬
- 除夜吟
- 輓梁黙齊必弘【丁巳】
- 又【代家兄作】
- 雒行述懷【四月二十八日辛酉曉發莘磯朝飯淸溪洞舊李文一家午飯飛鵝店夕宿榜鼓橋店】
- 御製【五月十五日大王大妃殿誕辰】
- 謹賡
- 曉出龍山濯漢亭訪主人金尙書炳喬【閏五月二十九日】
- 過孝昌墓洞口【同日】
- 和李雅獻夏咏筆三十二韻【李而徵獻夏示余以筆詩三十二韻卽其祖故承旨明淵與金尙書相休布衣時戱爲聯句者而▣徵追步其韻凡四疊要余和之韻旣硬而且嫌剽竊辭以不能屢回强索終不能辭乃爲二疊以索其請兼呈申侍郞韋史錫▣金令公晩齋世均黃學士怡山鍾顯丁巳冬十月日也】
- 往與小溪宗人進士九鉉【景洛】拈退漁集相酬【十一月初六日】
- 翌朝南至又拈韻相酬
- 夜又拈韻得七五兩律
- 和小溪宗人拈退漁韻【臘月十六日】
- 又與小溪拈韻相和趙斗南寅奎亦至【戊午正月初十日】
- 翌朝又酬二疊
- 訪小溪酬和【正月念七日】
- 寒食享行出東門馬上口占【二月二十三日向順康園前李日發程】
- 過石高地【自東大門北距十里】
- 泰康兩陵過境【自石高地北距十里泰陵文定王后陵康陵明宗大王內外陵】
- 午憩免溪院店【自康泰陵北距十里】
- 夜宿順康院齋室【自免溪院二十里仁嬪金氏園所】
- 遊奉永寺【寺在園東一里許卽造泡寺】
- 過徽慶園【園在順康園西麓相去一里綏嬪朴氏園所】
- 夜發順康園回過鰕峴【南距兔溪院十里卽泰康兩陵之東也】
- 曉月訪匏洞僑舍【自鰕峴三十里】
- 過明德洞登水閣追感用前韻【在東小門外十五里】
- 入安巖洞登朴氏亭子和壁上韻【在東小門外五里】
- 【三月初八日】與碧洞宗人用鉉【京九石下】入桃花洞和又靑軒板上韻
- 夕與黃澗宗人石下和一律【四月十六日】
- 與石下拈淸律相酬【四月二十日】
- 翌日雨後又拈淸律得五篇永同沈【霞村】宜煥亦會
- 昭寧園端午享官紀行【五月初三日發程】
- 又與石下夕和一律【五月十八日】
- 石下舍戱和兒課咏驢【五月十九日】
- 小溪舍拈風皐韻酬和趙斗南寅奎亦至【五月念三日】
- 夕與石下呼韻相和【五月念八日】
- 夜與石下戱咏微風【六月初二日】
- 與石下霞村拈淸詩和三疊【六月初四日】
- 【八月初五日】與石下及諸益往三淸洞飮星祭泉戱和【金學士鉐韻】
- 復用前韻和有鉉【景三】宗人【六月初十日】
- 碧棲三聯【六月初十日】
- 月下與石下和一律【六月十三日】
- 追賦補闕【六月十八日夜獨吟一絶而不載可怪】
- 與石下拈淸律沈霞村亦至【六月二十六日】
- 石下婢夫林永根回甲供一卓戱用前韻【六月念七日】
- 往穎尾亭訪申尙書錫愚【七月初三日】
- 與石下及【松下李參奉鳳震石隱宋相璟景玉霞村沈宜煥拈淸律酬和七月六日】
- 七月七日兼値末伏石下以詩索和戱以酬之
- 夜與石下松下拈淸詩相酬【七月十二日】
- 與石下留別大興成進士龍修【石下妻弟報恩禹生炳履亦和七月念四】
- 秋雨中與石下拈淸詩撥悶【七月二十七日】
- 追賦釋菜享役【八月初五日】
- 留別石下慶州覲行【八月十一日】
- 憶石下【八月十九日】
- 入松石園【荷屋相公亭子其甥姪南台秉哲以騎判借住扶笻往訪八月二十一日】
- 敎開城留守南秉吉書【代校理姜長煥製】
- 敎黃海監司朴齊憲書【代製同上】
- 上吏判啓【吏判金台炳學十月二十八日】
- 上左閤心庵趙相公啓【十一月十三日】
- 題御賜白曆【十一月十八日冬至司憲府掌令時】
- 懿昭廟享官戱賦一絶【十一月十八日冬至】
- 和小溪【十一月念三日】
- 上領閤荷屋金相公啓【十一月二十八日】
- 與石下和崔愚山憲秀詩韻得一律【己未元夕】
- 又與石下拈崔愚山韻李松下無叅【正月初四日】
- 燕賀【幷識】
- 翼陵寒食享行口占【三月初四日】
- 贈別海州客閔益行【三月十五日】
- 入紅樹洞咏荷屋新搆亭子【三月二十四日在東大門外】
- 宣陵瑞陽享役紀行【前期二日五月初三日發行】
- 贈兵曹參判尙州李三億祭文【代趙監役龍熙作五月十九日】
- 南原官笛村吳生基常訪余旅寓備說其祖彦宙【號啞庵云】實行索余一言聊賦近體以贈之【五月二十一日】
- 上永恩國舅啓【領敦寧金汶根五月二十二日】
- 上吏判南台秉哲及訓將金台炳國書【六月初旬】
- 楓溪屋會諸益相酬【六月念六日】
- 出楊花渡訪判書箕晩【步何操亭楣上韻春山金相弘根江舍八月十三日】
- 乘舟楊花津
- 登泉食觀【一名同愛樓在玉壺洞今金國舅汶根亭子】次壁上韻【八月念一日】
- 追賦【純元王后己未十月初三日禫祀後初七日祔太廟自上幸行余以差備官捧金寶初六日進】
- 殷栗宰宗人在憲【文徵】週甲韻【十一月二十四日】
- 宣陵享役渡氷江舟中口占【十二月二十九日南至】
- 足成夢聯【臘月初三日夜夢得一韻頷聯記甚分明仍成全篇上三韻鴻筒風亦夢中韻【尾句隨意足成】】
- 荷屋金相公晬宴【十二月初四日】
- 和荷屋相公懸燈韻【懸燈山名在加平地山上石間泉夜飮可以療病云臘月十三日】
- 海藏申判書錫愚舍夜會江漢張五衛心學竹溪黃五衛鎭奎鶴圃權檢書喆仁同賦晉齊趙侍郞在應亦至【臘月念七日夕】
- 靖寢享行乘雪馬渡氷湖戱吟【臘月小晦】
- 上辛祈穀賡韻【庚申正月初六日】
- 御製【社稷親祭後以司謁口傳下敎曰承史閣臣雲寶劍兵㧾府堂上玉堂板上御製賡進】
- 御製【奉謨堂展拜後又製賜閣臣 正月初十日】
- 宣陵享行氷湖舟中戱賦一絶【三月十五日寒食】
- 代京畿儒生上言草【三月十九日】
- 雨中戱吟【三月念八日三疊】
- 用壁畵和水雲侍郞【參判在田字汝見自號水雲拈朱詩韻 閏三月十六日】
- 雩祀壇紀行【閏三月三十日】
- 騎驢過水踰店【四月十一日與李生仲明同行夜宿朴哥家東小門外可十里許】
- 毓祥宮端陽享行【與獻官尹承旨巴江秉鼎齋郞尹別檢竹史永善呼韻相酬】
- 貞陵仲秋節享兼忌辰享役【神德王后忌辰八月十三日兼秋夕祭】
- 入南水洞訪荷屋相公新構亭子【九月初五日二疊】
- 泰陵冬至享行路中凍脣强吟【十一月初十日】
- 戱續夢聯【十二月二十八日夢中偶得一聯走飛皆我笥流峙復誰琴旣覺而續之】
- 崇政殿受誓戒後述懷【十二月二十八日○來正月初六日上詣太廟上冊寶于純祖室兼行春享大祭】
- 貞陵正朝享役路中述懷【十二月二十九日八疊】
- 太廟春享大祭第九室享役【辛酉正月六日兼行純祖室上冊寶隨駕】
- 貞陵寒食祀官述懷【二月二十六日】
- 懿昭墓享役漫吟【忌辰三月初四日墓在敦義門西南五里】
- 雨中撥悶【三月十八日】
- 孝昌基天中節享役【墓在崇禮門南五里二疊】
- 騎省眞中酬和【金石莊明覺黃漢案伍姜蕙東鏞趙簑衣鼎鎬鄭錦農繓南石民大植金東嶺炳甲齊會金夢樵復均李東渚在容亦和五月初十日夕又和金石莊】
- 夜宿左巡廳戱和舊板上韻【六月初五日】
- 又宿左巡廳復用前韻【六月十三日】
- 釋菜享役【八月初一日】
- 翼陵秋夕享役【八月十五日】
- 上荷屋相公書【九月九日】
- 宣武祠享役【皇明楊經略鎬邢尙書价妥靈所初稱生祠堂云九月十二日中丁】
- 明陵翼陵展謁以騎郞隨鴐【恩彦君墓亦展拜九月十五日追吟】
- 太廟冬享功臣位將事後路中漫吟【十月初一日】
- 夜宿巡廳復續前韻【十月初四日】
- 長陵南至享役【仁祖大王陵仁烈王后韓氏祔十一月二十一日冬至前期進】
- 靖陵正朝享役【十二月二十九日前期進】
- 永寧殿攝行大祝【壬戌正月初八日以騎郞隨駕進純祖純元兩聖舟梁回甲上尊號】
- 木覓將事夜戱吟【二月初三日】
- 挽湖鹵客【二月初六日代洪敎官淳一作三疊】
- 儲慶宮享所狂吟【二月二十一日春分二疊】
- 昭寧園寒食獻官享役【時帶宗簿正三月初八日昭寧園距京七十里云】
- 昭寧園天中節又以獻官冒寒享行終夜
- 漢江祈雨遙和東坡韻【五月三十日祈雨祭以執禮出漢江二疊】
- 三政策【六月二十一日自宗簿書呈泮中】
- 釋菜享役【八月初七日】
- 毓祥宮秋夕話襟【八月十四日夜】
- 毓祥宮秋分前夜又以享官口號【八月三十日秋分】
- 御製北營君子亭駐蹕三廳試射【閏八月二十一日】
- 御製南漢駐蹕【仁陵酌獻禮後獻陵歷謁仍幸南漢山城九月十八日】
- 謹賡【北營君子亭三營試射韻曁南漢駐蹕韻閏八月念一日及九月十八日】
- 歸淵子李時燮進甲韻【自漢北僑居春川其子蕉史奎承邂逅逆旅誦其韻而索和今年九月卽六十二歲覽揆之甲云】
- 漢竹僑鍚斅追挽【十一月初二日十疊】
- 和申尙書韋史錫禧南草韻【十一月十九日十疊】
- 四敎齋永恩府院君六十二歲進甲詩【幷序】
- 貞陵將事之夜贈別李參奉泰應【臘月三十日一韻二疊】
- 新春偶吟【癸亥正月初一日】
- 漢江享役歸路口占【正月初八日】
- 度支直舍訪小溪九鉉夜與諸詩朋相酬【申白坡獻求徐石囱相祖朴弘庵慶壽趙斗南寅奎金石莊明覺柳雲樵諸人齊會正月十一日四疊】
- 孝昌墓寒食享節謹賡御製【二月十九日】
- 御製【奧昔正廟乙巳文孝世子冲岑方四歲始入學讀孝經自上親製一詩以誌喜命諸臣賡之】
- 懿昭墓忌辰享役【三月初四日忌辰】
- 過五間水門望訓練院有感【三月初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