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년 10월 28일에 작성한 입사(立嗣) 명문으로, 어느 집안에서 작성한 것인지는 미상이다. 고조(高祖)의 사손(嗣孫)인 대기(大基) 씨가 아들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 종사(宗嗣)를 의탁할 곳이 없자, 병기(炳基)의 둘째 아들인 상선(相善)을 후사로 세워서 향사(享祀)를 받들게 하는 것이 인정으로나 의리에도 맞을 것이라는 문중의 의견을 바탕으로 이 명문이 작성되었다. 사람에게 변고가 있으면 사당에 고하여 후사를 세워 그로 하여금 대신 잇게 한다는 우암(尤菴) 송시열이 말한 규례를 따른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부자(父子)는 사람의 대륜(大倫)이고, 양자로 나가서 다른 아버지를 섬기는 것은 인도(人道)의 지극한 변고이지만, 지극한 변고를 통해 큰 인륜을 대처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명을 지극히 신중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큰 인륜을 옮길 수 있는데, 부모가 없는 경우는 제 마음대로 남의 후사로 나갈 수 없고, 아버지의 명이 있는 경우라도 제 마음대로 계후(繼後)를 깰 수 없다. 우리나라 법전에 아비와 어미가 모두 죽은 경우는 일체 후사로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지만, 상황이 불쌍한 경우는 한쪽의 아비와 어미, 또는 문장(門長)이 상언(上言)하여 입후를 허락받는 조항이 있는데, 우리 종형(從兄) 부부가 모두 사망하여 받을 사람이 없으므로, 상황이 불쌍한 경우의 조항에 따라서 명문을 작성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훗날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바로잡을 것이라고 끝맺고 있다. 앞에서 말한 법전 조항은 《경국대전》 〈예전(禮典) 입후(立後)〉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 조항에, "적처와 첩 모두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 관아에 고하여 동성동본의 지파 자식 항렬의 사람을 후사로 세운다. 양가의 아비가 함께 명하여 후사로 세우되, 아비가 죽고 없을 경우 어미가 관아에 고한다."라는 조항과 "동종(同宗)의 장자를 후사로 삼으려는 경우 및 일방의 아비와 어미가 모두 죽은 경우는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