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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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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전주장관 도회소청(全州長館 道會疏廳) / 수취자 : 고부향교(古阜鄕校)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98.9 X 55.1 / 인장 : 1顆(墨印, 7.4×5.4)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 1876년 유학 김곤(金坤) 등 상서(上書)
- 1876년 무성서원도회소(武城書院道會所) 통문(通文)
- 1877년 이최선(李最善) 등 상서(上書)
- 1877년 남원향중(南原鄕中) 통문(通文)
- 1877년 희현당도회소(希顯堂道會所) 통문(通文)
- 1877년 전주수장관(全州首長館) 통문(通文)
- 1877년 광주포충서원재회소(光州褒忠書院齋會所) 통문(通文)
- 1878년 이이필(李以鉍) 등 상서(上書)
- 1878년 이이두(李以斗) 등 상서(上書)
- 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 1885년 충훈부호남소청(忠勳府湖南疏廳) 통문(通文)
-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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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4월 전주장관 도회소청 선비 27인이 고부향교에 효의 지극한 정성과 수신의 큰 근본을 실행한 정은필이 아직까지 포장 받지 못하고 있어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이므로 함께 동참하여 이 실행이 초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 통문
-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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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고종 17) 4월 전주장관 도회소청 선비 27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효의 지극한 정성과 수신(守身)의 큰 근본을 실행한 정은필(鄭溵弼)이 아직까지 포장(褒獎) 받지 못하고 있어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이므로 함께 동참하여 이 실행(實行)이 초야(草野)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섬김 중 어버이를 섬김이 가장 크고, 지킴 중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데, 힘을 다해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효의 지극한 정성이고, 마음을 다해 몸을 지키는 것은 지킴의 큰 근본이다. 얼핏 듣기로는 고부군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처사 정은필은 동래(東萊)에서 계출(系出)한 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로 임금께 하사받은 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진사 임(任)의 11대손, 생진사 행통훈대부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우리나라의 거족이자 호남의 명망있는 문벌이다.정은필은 나이 겨우 열 살 때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어 음식을 올릴 방법이 전혀 없자 땔나무하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한결같이 어버이의 뜻을 봉양하였다. 갑자기 어버이가 병들자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써서 온마음으로 치료하였다. 어버이 상을 당하여서는 몸을 상하며 슬피 우는 소리에 사방 이웃에서 조문하러 온 자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소식(素食)하고 죽을 먹으며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으며, 기일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면서 장례 때처럼 슬프게 통곡하였으니 효의 지극한 정성이다. 일흔 살에 두문불출하며 은둔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말과 생각을 굳게 제재하였으니 지킴의 큰 근본이다. 말은 충성스럽고 행동은 독실하였으며, 집안을 다스리고 자제를 가르치는 절도는 당세 은거하는 선비이다.이 때문에 여러 차례 향도(鄕道)의 천망(薦望)에 올랐고, 예조에서 계사를 올렸으나 아직까지 성상의 은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니 공의(公議)의 흠전(欠典)이다. 이에 소청(䟽廳)에서 사론(士論)의 한목소리로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으로 통문을 보내, 이와같은 실행(實行)이 초야(草野)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줄 것을 촉구하였다.
- 원문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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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通文
右文爲通諭事鄒夫子不云乎事孰爲大事親爲大守孰爲大守身爲大盖事親竭力者孝之至誠也
守身盡心者守之大本也而側聞 貴郡富安面處士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舘應敎公諱承甫之十七
代孫大護軍諱絪之十六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五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四代孫吏曺判書 賜號楓
川公諱守弘之十三代孫進士諱任之十二代孫生員進士行通訓大夫諱孝孫之十一代孫參奉公諱確之十代孫甲山府
使諱緝之八代孫也而道義家風簮纓世德海東巨族湖南望閥也斯人粤自孩提誠孝根天仁善過人年甫十歲家
貧親老全無奉供之道樵山漁水可肩隱淮之蕫生越境有方不下負米之仲由怡悅承順一以養志遽當親癠百方藥
餌一心調治及其丁憂也哀毁悲泣之聲四隣來吊者莫不悅服行素食粥三年廬墓事死如生每當忌日前三日齋沐
哀慕悲號之痛復如袒䄆〖括〗之日孝之至誠也年高七十杜門蔵蹤不求名譽守口如甁防意如城守之大本也言忠行篤足
不入亂方口不道惡言齊家訓子之節可謂當世隱淪之士故累登於鄕道之薦 春曺之 啓而尙未蒙
天聼之恩宲是公議之欠典故際玆䟽廳士論齊聲 登聞之意玆以發通惟願 僉執史以若實行無
至泯沒於草野之地幸甚
右敬通于
古阜鄕校
庚辰四月日 [印]
全州長舘道會䟽廳發文多士 朴海昇 李啓鎬 崔遇亨 金龍洙 鄭海斗 金堯文 李秉德 安璣亨 李秉憲 趙鍾台 宋德洙 柳寅燁 朴蓍東 金龍祖 柳萬卷 金潤瓊 張時爀 成載奎 金漢龍 黃基煥 朴台東 李東鑚 朴時昌 南鑚 洪鍾浩 申興模 金相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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