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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희현당도회소(希顯堂道會所) 통문(通文)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희현당 도회소(希顯堂道會所) / 수취자 : 전주장관(全州長館)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82.6 X 54 / 인장 : 1顆(墨印, 5.1×4.5)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 1876년 유학 김곤(金坤) 등 상서(上書)
  • 1876년 무성서원도회소(武城書院道會所) 통문(通文)
  • 1877년 이최선(李最善) 등 상서(上書)
  • 1877년 남원향중(南原鄕中) 통문(通文)
  • 1877년 희현당도회소(希顯堂道會所) 통문(通文)
  • 1877년 전주수장관(全州首長館) 통문(通文)
  • 1877년 광주포충서원재회소(光州褒忠書院齋會所) 통문(通文)
  • 1878년 이이필(李以鉍) 등 상서(上書)
  • 1878년 이이두(李以斗) 등 상서(上書)
  • 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 1885년 충훈부호남소청(忠勳府湖南疏廳) 통문(通文)
  • 정의

    1877년 1월 희현당 도회소 선비 31인이 전주장관에 고부군에 사는 정은필의 순수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감영과 예조에 아뢰어 그의 행실을 드러내고 그를 발탁하게 하여 민몰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

    해제
    1877년(고종 14) 1월 희현당 도회소 선비 31인이 전주장관(全州長舘)에 고부군에 사는 정은필(鄭溵弼)의 순수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감영과 예조에 아뢰어 그의 행실을 드러내고 그를 발탁하게 하여 민몰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서두에 '민자건의 효는 『논어』에서 일컬어졌고, 동중서의 행실은 한유의 찬(贊)에서 드러났으나 효와 행이 모두 아름다운 행적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순수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이 모두 아름다운 실적을 갖췄으니 지금까지 이에 견줄 사람이 없다'고 그의 실적을 높게 평하였다. 이어서 '그의 계보는 동래에서 나온즉 홍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로 임금께 하사받은 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 생진사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충효의 명성이 있는 남쪽의 명문가임을 언급하였다.
    정은필의 효행과 독행(篤行)에 대해 '인효(仁孝)를 타고나 어렸을 때부터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절도를 스스로 깨우쳤으며, 조금 장성해서는 어버이가 늙고 집이 가난하여 낮에는 물고기 잡고 땔나무 하고, 저녁에는 베를 짜 좋은 의식으로 봉양하는 데 힘썼다. 여름에는 잠자리에서 부채질하고, 겨울밤에는 온돌을 따뜻하게 지폈으며, 한결같이 뜻을 봉양하였다. 부모가 여러해 병을 앓자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구하여 온마음으로 치료하고, 똥을 맛보고 안부를 살피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하늘과 산에 제사지내며 지극한 정성으로 천명(天命)을 기도했던' 실적 및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장례에 예를 다하고, 매일 소식하고 죽을 먹으며 3년 여묘살이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70세가 다 되어가는데도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생긴 일, 젊었을 때부터 노성하여 의를 행하고 선을 닦고, 안분자족하며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며, 자질을 가르칠 때 항상 성선(性善)과 효제(孝悌)의 도를 칭한 일 등의 일화를 하나하나 드러냈다.
    끝으로, 한 성의 사림(士林)이 모두 모인 곳에서 침묵할 수 없어 통문을 보내, 여러 군자들이 이처럼 순수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감영과 예조에 아뢰어 그 행실을 드러내고 그 사람을 발탁하여 민몰되지 않도록 한다면 다행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희현당은 현재 신흥중고등학교 있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에 있었던 정자로, 관찰사로 부임한 김시걸(金時傑, 1653~1701)이 학교를 일으키고 지방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1701년(숙종 27)에 건립한 학당이다. 이후 퇴락하여 1907년경에 미국인 선교사가 기독교 학교인 전주신흥고등학교를 세워 3.1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소실되었다.
    원문텍스트
    [미상]
    通文
    右文爲通諭事閔子之孝穪於魯夫子之論董生之行著於韓文公之賛而曾未聞孝與行兼美之蹟而今此古阜郡
    士人鄭溵弼純孝篤行并美宲蹟稽古亘今無雙一人矣系出東萊弘文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
    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
    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忠孝風聲名閥世德蔚于南土斯人也自在孩提
    天賦仁孝愛親敬長之節自悟自警稍至長成親老家貧晝以漁樵夜以織梱克奉口軆之養夏日扇枕冬夜燃突怡悅承順
    一以養志其親沉病累年百方藥餌一心調治甞糞察候暫不離側祝天祭山至誠禱命天年有限竟至殞絶也泣血殫誠子羔之孝也襄
    奉盡節季良之忱也三年廬苫行素食粥終始不懈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自小少老大心存戒性志在定已行義修善祖述堯舜
    之道追慕程朱之學篤老操履知足安分遠謝公門不求名譽齊家庭訓子侄言必稱性善孝悌之道是以鄕剡之論
    道院之議不謀同辭如出一口則其在一省士林僉會之地不可含默玆以發通望須僉君子使此純孝篤行稟告于 棠軒
    春曺闡發其行擢用其人毋至泯沒之地幸甚
    右敬通于
    全州長舘
    丁丑正月日 [印]
    全州希顯堂道會所發文多士 李継浩 蘇敬述 金斗源 林彰洙 鄭濟黙 崔龍煥 高龍鎭 南濟 黃載淵 尹正鉉 朴始浩 權相奎 盧學秀 吳永泰 邊琦容 奇光衍 宋永豊 金文海 柳恒豐 林璟相 李章漢 金性淵 姜昌壽 許杓 洪秉一 趙炳鎬 白鳳洙 金永朝 曺世浩 任泰憲 金炳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