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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광주포충서원재회소(光州褒忠書院齋會所) 통문(通文)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광주 포충서원 재회소(光州褒忠書院齋會所) / 수취자 : 고부유림(古阜儒林)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103.8 X 56.2 / 인장 : 1顆(墨印, 6.5×4.0)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 1876년 유학 김곤(金坤) 등 상서(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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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7년 희현당도회소(希顯堂道會所) 통문(通文)
  • 1877년 전주수장관(全州首長館) 통문(通文)
  • 1877년 광주포충서원재회소(光州褒忠書院齋會所) 통문(通文)
  • 1878년 이이필(李以鉍) 등 상서(上書)
  • 1878년 이이두(李以斗) 등 상서(上書)
  • 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 1885년 충훈부호남소청(忠勳府湖南疏廳) 통문(通文)
  • 정의

    1877년 4월 21일 1877년 4월 21일 광주 포충서원 재회소에서 고부유림에 부안면에 사는 정은필의 순수하고 독실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서 그가 발탁되는 은전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

    해제
    1877년(고종 14) 4월 21일 광주 포충서원 재회소 17인이 고부유림(古阜儒林)에 부안면에 사는 정은필(鄭溵弼)의 순수하고 독실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서 그가 발탁되는 은전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서두에 "자하가 말하기를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부모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한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말하겠다"는 『논어』 문장을 인용하여 인효(仁孝)의 중요성을 언급한 뒤, 고부군(古阜郡)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16대조인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부터 8대조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까지 9대조의 계보를 열거하여 그가 명망있는 문벌 후손임을 말하였다.
    실재 정은필의 효행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집이 너무 가난하여 입에 풀칠할 계책도 전혀 없어 품팔이 하며 부모를 봉양하였다. 『시경』과 『서경』을 읽지 않았는데도 어른을 예의와 공경으로 대하고, 차례가 있음을 잘 알며, 어진이를 여색 좋아하듯 하였으니 이 사람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배움에 능한 선비라고 할 만 하다'고 칭송하였다. 또, '어버이가 여러 해 동안 병을 앓자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써서 온마음으로 치료하고,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면서 똥을 맛보고 안부를 살펴 거듭 나아지는 효험을 보았다. 부모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여 조문하는 자가 열복(悅服)하였다. 장례를 치른 뒤 묘 곁에 여묘살이 하며 하루에 3번 성묘하고 밤에 5번 일어나 살아 계실 때처럼 섬기니 정성이 하늘에 닿아 사물의 본성이 감발(感發)되었다. 이때문에 한 쌍의 백조가 몇 떨기 황국(黃菊)을 물고 세 때에 와서 위로함에 네 계절 내내 황국이 피었으니, 하늘에 근본한 효성이 아니라면 물성이 감흥했겠는가?'라며 그의 실적에 감탄하였다.
    이어서 정은필이 근 70세에도 부모 산소에 매일 성묘하여 산골짜기에 길이 생기고, 부모 기일 3일 전부터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죽을 때까지 부모를 잊지 못한 달효(達孝) 및 수신(修身)의 방도와 제가(齊家)의 절도, 접빈(接賓)의 예 등을 열거한 뒤 '빛나는 덕행이 한 성의 공의에 미쳤으므로 침묵할 수 없어서 이에 통문을 보내니 여러 선비들이 이 순수하고 독실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 특병히 발탁되는 은혜를 입으면 매우 다행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포충서원은 현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에 있는 포충사(褒忠祠)로, 임진왜란 초기 호남 지방에서 의병 7천 명을 모집하여 금산성 전투와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고종후·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안영 등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03년(선조 36)에 건립하여 사액받은 사당이다. 서원철폐령 당시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은 전라도 지방의 2개 서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폐사되었다가 광복 후 지역의 유림에서 재건립하였으며, 1974년 5월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원문텍스트
    [미상]
    通文
    右文爲通諭事子夏曰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雖曰不學矣吾必謂之學矣今此貴郡富安面士人
    鄭溵弼云歟其人系出東萊卽藝文館應敎諱 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
    十三代孫吏曺判書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通訓大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
    八代孫忠孝家風簮纓世德東 朝華閥南土望族也斯人粤自齠齡家勢極艱全無朝夕糊口之責身兼傭賃以供父母之養傷㦲貧也仲
    由之負米孝及竭力不讀詩■(盡)〔書〕禮敬長老能知有序賢比易色是可謂不學而能學之士矣其親沉病累年百方藥餌一心調治晝宵侍側
    甞糞察候以驗重歇乃至丁憂也泣血哀慕之痛吊者悅服遽經襄禮搆廬墓側日以三省夜以五起事死如生誠之所格物性應爲感發故
    一雙白嶌數叢黃菊三時來賀四節發英苟非根天之孝至於物性之感歟年將七旬每日巡山山磎成路至於諱日前三日行素治齋復如袒
    䄆〖括〗之日沒身不忘父母之達孝矣且修身之方戒子之訓齊家之節接賓之禮少無違越安分守拙棲息於山水之林下不求名譽賁然德行及於一省
    公議故不可含默玆以發文惟願 僉章甫使此純篤之宲蹟俾聞
    楓陛特蒙擢用之恩千萬幸甚
    右敬通于
    古阜儒林 丁丑四月二十一日 [印]
    光州褒忠書院齋會所發文 李喆相 奇昌衍 朴彰壽 高錫相 金貞鉉 李龍求 崔奎烈 宋祉源 朴命煥 吳應善 尹學鎭 白弘洙 高時旭 丁永坤 金在文 申正模 安永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