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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장동식(張東植) 등 등장(等狀)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장동식(張東植) / 수취자 : 동복현감(同福縣監)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95 X 55 / 서명 : 綾州使[着押] / 인장 : 3顆(6.9×6.9)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 1850년 장동식(張東栻) 소지(所志)
  • 1859년 장동식(張東植) 등 등장(等狀)
  • 정의

    1859년 4월에 전라도 동복현에 사는 장동식, 장세옥 등이 능주목사에게 앞의 등장과 등출한 호적단자를 점련하여 입지 해 줄 것과 점련한 호적단자에 관인을 찍어 영구히 빙고(憑考)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

    해제
    1859년(철종 10) 4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에 사는 장동식(張東植), 장세옥(張世玉) 등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앞의 등장과 등출한 호적단자를 점련하여 입지(立旨) 해 줄 것과 점련한 호적단자에 관인(官印)을 찍어 영구히 빙고(憑考)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이다.
    장동식 등이 엊그제 자신들의 선조 문적(文蹟)을 고적(考籍)하는 일로 올린 등장(等狀)에 '청원한 대로 고급(考給)하라'는 뎨김을 받아, 고열(考閱)하는 곳에서 수 백년 전의 신적(信蹟)을 얻어서 쌓인 편(篇)과 축(軸) 중에서 하나하나 베껴 옮겼다. 이에 자손들의 마음이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보는 것과 다름 없어 번거롭게 다시 하소연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앞의 등장에서 고한 바 같이 『내보(內譜)』는 금석문(金石文)이므로 세계(世系)의 선후와 직함의 유무에 관인이 찍인 문서가 아니라면 종중 사람들이 다투고 갈라지는 단서가 없지 않았다. 이에 장동식 등은 앞의 등장과 호적단자를 점련해서 다시 정소(呈訴)하여 '일의 전말을 참작하고 이치를 따져 입지하고, 점련한 호적단자에 인장을 찍어 내려 주어서 영구히 빙고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등장을 접수한 능주목사는 '다행히 만력(萬曆) 연간의 호적(戶籍)이 있어서 신적(信蹟)을 고출(考出)하였으니 너희들이 정성을 쏟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유감이 없는 일이 있겠는가? 청원한 대로 베껴 옮긴 문서에 관인을 찍어 내주어 보청(譜廳)에서 빙고(憑考)로 삼게 하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내보(內譜)는 작성자가 부계 직계조상을 밝힌 것으로, 체제는 선대로부터 자기의 부(父)에 이르는 일직선상의 조상과 그 각 조상의 배우자를 세대별로 기록하고 그들의 전기사항을 밝힌 가승(家乘)과 같다.
    원문텍스트
    [미상]
    同福張▣▣張▣▣張東植張世玉等
    ▣▣(右謹)言再昨日良中民等以先祖之文蹟考籍事緣由齊訴而幸蒙依所訴考給之 題敎敎是乎故及其考閱之塲果得數百年前信蹟
    於連篇積軸之中一一謄出是乎則 城主之德有若海濶山高子孫之心無異披雲見天不必煩疂更陳是乎矣果如前狀所告內譜是金
    石之文而世系之先後職啣之有無若非印信文字則凡諸宗人猶不無争竸携貳之端故玆敢前狀與籍單帖連更訴
    特加參商敎是後事之顚末 論理立旨是白遣右籍單子打印以給以爲永久憑考之地千萬祝手爲只爲
    行下向敎是事
    綾州城主 處分
    己未四月 日

    〈題辭〉
    幸有萬曆
    年間帳籍考
    出信蹟非汝等
    精誠所到豈有
    此無憾之事乎
    依所訴謄出之
    狀打印以給憑考譜
    廳之地事
    初一日
    [官印]
    陵州使[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