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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조봉환(曺鳳煥) 상서(上書)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조봉환(曺鳳煥) / 수취자 : 강진현감(康津縣監)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58.4 X 43 / 서명 : <書押> / 인장 : 3顆(6.8×6.8)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정의

1877년(고종14) 11월에 화순에 사는 조봉환이 강진현감에게 엄동설한에 아사의 지경에 처한 유배죄인 아버지를 도와달라고 청한 상서

해제
1877년(고종14) 11월에 화순(和順)에 사는 조봉환(曺鳳煥)이 강진현감(康津縣監)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부친께서 지난 을해년(1875) 6월에 사림이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상소할 때 소두(疏頭)로서 참여하였다가 강진 고금도에 유배되었는데, 그 후 흉년을 당해 수 백 냥에 이르게 빚을 지고 있는 와중에 500냥을 베풀어 주셨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엄동설한에 아버지가 아사(餓死)의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본읍(本邑)의 사림(士林)과 종족(宗族)을 뒤에 적을 것이니 이들로 하여금 도와주도록 해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후록(後錄)에는 대구면(大口面) 계치(桂峙)의 조씨(曺氏) 문중과 본읍의 강진향교, 귤동(橘洞)의 윤진사(尹進士) 문중이 적시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가엾다고 탄식 한 후 '해당 진(鎭)이 어찌 이리 괄시하는지 모르겠다', '잘 지내는 방법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라는 내용으로 20일에 제사(題辭)를 내렸다.
원문텍스트
[미상]
和順居民 曺鳳煥 頓首百拜 泣血上書
右謹言 伏以情到極天 不得無爲親之乞 而負米懷橘 是爲古人之錫類也 民之父親 以乙亥六月伏 閤多士疏頭事 被
恩譴 而安置于古今島是乎所 本第窮寒 而無支供之路 乙亥秋冬 則以 營邑間顧助之澤 得爲圖生是白加尼 自
其後經大無之歲 三年間食債與救病之債 積至數百餘兩 而調過之望 束手沒策 今番 恤問 及於顑頷之中
至 惠以五百銅葉 飽德銘 恩 至今感祝萬萬 而仁恤之 澤 海與俱深 山與俱重 盖此久客情勢 雖平身
有難支保 而以一介寒士 居於絶島之安置 坐席未旋 而四顧無親 獨掌難鳴 爲子侍湯之情 益復如何哉 嚴
冬風雨 淚見病親之饑寒到骨 而不可坐俟奄奄 勢無捨路之山之理 而以其情地 則宗族稍饒之中 所當
顧助 以其事理 則自以道內事 萬人之罪 萃於一身 境內士林中 先可問助 而自
上處分减死罪人 俾免饑死之境 是爲施德好義也 玆以本邑士林與宗族中後錄 冒悚仰稟爲去乎 伏乞
洞燭敎是後 依後錄 嚴明分付官下人 于其所開示道理 俾有優助而得爲圖生之地 蒙受河海之 澤 千萬
伏祝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康津城主 處分 丁丑十一月 日 後錄
大口面桂峙曺氏門中
本邑鄕校中
橘洞尹進士門中

官[署押]

(題辭)
觀此所訴 矜
慘矜慘 徃陣情
境 則似不無
斗水之惠 而
該鎭豈如是
恝然乎 奠保
之方 惟在自
己事
二十日
[官印] 3箇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