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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양상보(梁相輔) 등 상서(上書)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양상보(梁相輔) / 수취자 : 능주목사(綾州牧使)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110 X 58 / 서명 : 使<押> / 인장 : 綾州牧使之印 3顆(7.0×7.0)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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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1885년 7월에 양상보 등 13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

    해제
    1885년 7월에 양상보 등 13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능주 송석면(松石面) 묵곡(墨谷)에 사는 정의림(鄭義林)은 관찰사공(觀察使公) 정인진(鄭麟晋)의 18세손일 뿐만 아니라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의 고제(高弟)인데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았고 학문적 자질 또한 훌륭하여 경서와 역사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처음에는 석당(石塘) 정구석(鄭龜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가 약관이 되었을 때 기정진에게 배웠는데 20여 년쯤 되자 선생의 학문을 계승했다고 여겨졌다. 많은 선비들이 그를 따랐으나 단지 공자의 도를 실천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으며 이익을 쫒지 않고 탐욕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처럼 정의묵은 효행과 학행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아직까지 벼슬에 천거된 적이 없으므로 그를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양상보 등의 상서에 대해 능주목에서는 효행과 탁행은 진실로 흠모할 만하나 지금은 감영에 보고할 시점이 아니므로 우선 후일을 기다리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원문텍스트
    [미상]
    松石面化民梁相輔閔啓鎬尹滋鉉謹齋沐上書于
    城主閤下 伏以敦尙儒術 尊德崇賢 卽我列聖朝衛道興學之大政 而窮搜巖阿 擧賢進能 又是刺史守相薦剡鄕貢之先務也 本面墨谷鄭斯文義林
    卽故觀察使公諱麟晋之十八世孫也 故應敎公諱熊之十三世孫也 故判書永思公諱演之十一世孫也 蘆沙奇先生諱正鎭之高弟也 自在孩提 已有敦孝之
    心 事父母極盡誠敬 凡戲嬉言語大有動人者 而材器超越 天性好學 年甫六七 學通史 八九歲 涉獵經傳 一自就傳之後 博洽群書 深究問學之要 纔逾成童 不遠
    千里 負笈往從於石塘鄭先生門下 先生與之講論 大加獎許 學未成就 先生旣沒 弱冠執贄于蘆沙奇先生之門 先生一見其儀容端正言語純粹 許之以朋遠來之
    樂焉 服事二十年 得其宗旨 其箚錄中難疑答問 積成卷帙 而尤精於庸學性理之書 旣篤於存養修齊之要 則先生之道 賴以不墜 而依鉢之託 可謂得其
    人矣 又於世安堂金先生 全齋任先生之門 俱有書贄之禮 無不延見 而稱賞之坼湖嶺海之間 鴻儒碩士 與之從遊 與之書問 則可見其師友之正學問之博矣
    自蘆沙易簀之後 固守林樊門不受 徒所讀者 程朱之書 所樂者 孔顔之道 而不以名利易其操 不以貪窮動其心焉 則尤見踐履之篤 出處之正矣 及持
    父母之制 哭泣之哀 喪葬之節 務盡誠禮 居廬三年 身不釋衰 鄕里莫不觀感而欽慕焉 苟無篤學之實 而其孝如是乎 其學行也 孝行也 冠冕於南
    服而前等時 累被鄕薦是乎乃 終未見闡揚之擧 則士林之抑鬱爲當何如哉 民等居在一坊 旣飽其德 亦不無好賢之心 而終不可泯默 故玆敢齊籲於
    孝理文治之下 特念擧賢進能之義 鄭斯文義林之文學行義 卽爲報營 薦聞朝廷 得蒙闡揚之地 千萬幸甚 伏惟
    藻鑑
    乙酉七月 日 化民梁相輔 閔啓鎬 尹滋鉉 鄭鳳鉉 梁益煥 鄭在綱 梁斗默 金佑鍾 文命純 廉錫浩 吳在鴻 南相必 閔致伯 等

    (題辭)
    孝行學行 固所欽歎
    而報營今非其時 姑俟後
    日向事 二十一日

    使[着押]
    [綾州牧使之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