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고종 25)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이풍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환부(鰥夫) 이풍식의 거주지는 창평현(昌平縣)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행정리(杏亭里) 오가작통 순번은 제2통 2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56세 계사생(癸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풍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통덕랑(通德郞) 낙승(洛承), 할아버지 학생 규현(奎鉉),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재원(在元), 외조(外祖) 학생 김상선(金商璇)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이풍식의 아내 양씨(梁氏)는 사망하였고, 가족으로 큰아들 유학 응태(應泰) 나이 32세 병진생(丙辰生)과 둘째 아들 유학 응국(應國) 나이 30세 무오생(戊午生)이 있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은 복금(卜今)이고 나이 46세 임인생(壬寅生)이다.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와 작성년인 '무자식(戊子式)'이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창평현령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기존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해호구상준인(丁亥戶口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이풍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정해호구상준인(丁亥戶口相凖印)'의 정해년은 1887년으로 호적개정 식년(式年)이 아니므로 1885년인 을유년(乙酉年)'의 오자(誤字)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