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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이철현(李嚞鉉) 원정(原情) 1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이철현(李嚞鉉) / 수취자 : 종친부(宗親府)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73 X 50.5 / 서명 : 宗親府<押> / 인장 : 宗親府印 3顆(9.0×9.0)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 1866년 이철현(李嚞鉉) 원정(原情) 1
  • 1866년 이철현(李嚞鉉) 원정(原情) 2
  • 1867년 이철현(李嚞鉉) 원정(原情)
  • 정의

    1866년 4월에 담양부에 사는 동지중추부사 이철현이 6대조 묘소에 투장한 박흥준 등 4인을 유배하고 바로 관에서 묘를 파 옮기도록 관문을 보내줄 것을 종친부에 청원한 원정

    해제
    1866년(고종 3) 4월에 담양부(潭陽府)에 사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철현이 6대조 묘소에 투장(偸葬)한 박흥준(朴興俊) 등 4인(人)을 유배하고 바로 관에서 묘를 파 옮기도록 관문(關文)을 보내줄 것을 종친부(宗親府)에 청원한 원정이다. 이철현의 육대조(六代祖)는 성종(成宗)의 넷째 아들 완원군(完原君) 이수(李𢢝, 1480∼1509)의 손자이자 순흥군(順興君)의 아들로, 묘소는 담양 고지산면(古之山面) 학동(鶴洞) 뒤 기슭에 있어 수백 년 동안 수호(守護)하였다. 그런데 근래 담양부 서리 박흥준이 묘소의 주맥(主脉) 위에, 김영운(金英運)이 지척에 놓인 계체 옆에, 최인형(崔仁炯)이 단청룡(單靑龍)에, 순창(淳昌) 사람 김재우(金在愚)가 용미(龍尾) 위에 몰래 묘를 썼다. 이에 전라감영(全羅監營)과 담양부에 정소(呈訴)하여 독굴(督掘)하라는 처분을 여러 차례 받아냈다. 그러나 그들이 바친 다짐[侤音]과 수기(手記)가 축(軸)을 이루었으나 가난하고 힘없는 후손을 멸시하여 완강히 거부하며 옮길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이철현은 종친부에 원정을 올려 전라감영과 담양부에 관문을 보내 투장한 네 놈을 형장(刑杖)으로 추문(推問)하여 귀양을 보내고, 담양 고을에서 바로 투장한 묘를 파 옮기도록 처분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원정을 접수한 종친부는 4월 15일에 '하루속히 독굴하라는 뜻으로 해당 고을에 관문을 발송할 것'이라는 처분을 내리고, 종친부 당상이 서압(署押)하고 종친부 관인(官印)을 찍었다.
    이철현에 대해 『선원속보(璿源續譜)』 「완원군파(完原君派)」 권4에 '정조(正祖) 정축(丁亥)? 2월 4일생(生), 음동추(蔭同樞), 고종[當宁] 신미(辛未, 1871) 7월 29일 졸(卒), 묘(墓) 담양탄금정(潭陽彈琴亭) 축좌(丑坐) 덕행재묘갈(德行載墓碣)'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원문텍스트
    [미상]
    全羅道潭陽居同知李嚞鉉原情
    右謹言泣血憤寃事生之六代祖即
    宣陵第四男完原君之孫也順興君之子也墓所在於潭陽古之山靣鶴洞後麓而數百年守護矣挽近以來弱子孱
    孫爲遐土所欺▣(本)府吏朴興俊之主脉上偸葬也金英運之尺堦邉偸埋也崔仁炯之單靑龍偸葬也淳昌人金在愚
    之龍尾上偸葬也呼訴營邑督掘嚴題者非止一再而納侤音捧手記前後成軸矣噫彼四漢軰素是㐫獰
    豪强蔑視後孫之窮孱左右延拕一向頑拒頓無掘去之意以么麽之漢無難偸埋於王孫山所壓逼者豈不心寒
    骨冷哉伏乞 洞燭敎是後嚴關于本道監營與本邑上項四漢朴興俊金英運崔仁炯金在愚上使于 營門
    先治其蔑分之罪刑推定配自本 官即刻掘移之地千萬伏祝
    行下向敎是事
    宗親府 處分 丙寅三月 日

    〈題辭〉
    不日督掘之
    意發關該邑
    向事
    十五日
    [宗親府印]
    堂上[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