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7월 27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아이가 돌아오는 편에 서신을 받지는 못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염려가 되었고, 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지금은 어떠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모쪼록 잘 조섭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아우 부자(父子)가 염병 증세로 거의 죽다 살아났고, 지난달 24일에는 넷째 매부(妹夫)인 상주(尙州)의 정서방(鄭書房)의 상변(喪變)을 당했는데 동기간의 비통한 심정은 차치하고라도 연로한 부모님의 기력이 손상되어 몹시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종씨(從氏) 상(喪)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라 놀랐다고 하였다. 집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인데 전혀 공부한 바 없이 허랑하게 여름 석 달을 보냈다고 한탄하고, 며느리의 신행을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10월 18일이 좋다고 하는데, 혹 구애되는 면이 있으면 다음 달 초에 평성(坪城)의 인편이 있다고 하니 그때 의향을 말씀해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