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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李鎔淳) 간찰(簡札)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이용순(李鎔淳) / 수취자 : 노진영(盧軫永)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5 X 33.9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정의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며 지난번 지은 시에 대해 의견을 말한 간찰

해제
모년 6월 14일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담제(禫制) 중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와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에 지은 〈소해정(蘇海亭)〉이란 시 가운데 초연(初聯)은 바쁜 가운데 잘못 쓴 것이라서 그렇다며 '원량(元亮)' 두 글자를 '연명(淵明)'으로 고치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은 더위를 먹었는지 수마(睡魔)를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이용순이 지은 〈소해정〉 시는 《蘇海遺稿附錄續集》에 실려 있는데, '원량' 두 글자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主翁亭子適成時, 三角山高必式宜. 滿庭趣癖元亮宅, 聯壁眞圖摩詰詩. 完蘇無恙安身策, 觀海爲工涉世期. 不市經綸開前業, 以淸養德恐人知."이다.
담제는 삼년상을 마친 그 다음다음 달 하순에 탈상(脫喪)하면서 지내는 제사인 담제(禫祭)를 지낼 때까지를 가리킨다. 소해정은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이 1930년에 세웠으며 그의 아호에 따라 이름을 지은 정자다. 노종용은 원풍정(願豊亭) 건립자인 농암(聾岩) 노재규(盧在奎 1836~1920)의 아들로서, 그의 선조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행적을 본받아 은둔소요(隱遁逍遙) 하였다. 노종용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등 한말 우국지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송병선이 자결하고 최익현이 일제에 잡혀 대마도에서 순절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광주 일곡동에 내려와 도의의 교를 맺어 학문을 논하고 전념하며 후진양성에 힘쓴 인물이고, 《소해유고(蘇海遺稿)》'가 전한다.
원문텍스트
[미상]
亢炎惱人 瞻咏政勞 謹不審
禫制上以孝連支 仁庇均休 溸
仰憧憧 不比例格而止也 向前構
付蘇海亭韻中 初聯怱忙間誤
記以然也 則元亮二字 以淵明改訂
看欣似好似好耳 弟狀飮暑
涔涔 日以睡魔爲友 是可曰陽界
味乎 自憐自憐 餘姑縮不備禮
陰六月旬四日 李弟 鎔淳拜拜

【피봉】
〈前面〉
光山郡芝山面日谷里
▣〔盧〕軫永 座下

〈後面〉
緘 潭陽大田面大峙里
李鎔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