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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2
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2
-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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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김성기(金成基) / 수취자 : 노진영(盧軫永)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5.2 X 17.9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 1943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 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1
- 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2
- 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3
- 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4
-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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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에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내용의 간찰
-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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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9일에 정읍군 칠보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전에 부친 서신은 잘 받아보았는지 묻고, 본인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선고(先考)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은 진행방침이 거의 섰다고 하면서, 서원 주벽(主壁) 이하 칠현(七賢)의 자손 중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과 영천(靈川) 신잠(申潛)의 자손에게는 부탁할 필요 없고, 눌암(訥菴) 송세림(宋世琳) 집안은 그 집안에 유력한 권리인이 있으므로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성재(誠齋) 김약묵(金若默)과 명천(鳴川) 김관(金灌),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과 묵재(默齋) 정언충(鄭彦忠) 집안도 부탁을 하면 수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군경(郡警) 두 청(廳)의 일은 자신이 유림들과 담당하여 책임을 지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일이 어렵긴 하지만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액서원에 배향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승낙하는 비용으로 2백원을 이 서신을 보는 즉시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돈은 추향(秋享)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원답(院畓) 개축비(改築費)로 쓸 계획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형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는 자신에게 원지(院誌)의 판각비용으로 20원을 빨리 보내주라는 뜻으로 권유해주기를 몹시 바란다고 하였다. 《무성서원지(武城書院誌》에 의하면 김성기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정읍에 거주하였으며, 1932년에 무성서원의 색장(色掌)을 맡은 적이 있는 인물로 나온다. 노진영의 선고는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을 가리킨다.
- 원문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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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日前付郵書 仰想入覽矣 謹更請
經體萬旺 寶節均休 仰頌無射 弟
功服人 方以寒感見苦 自憐自㭗
耳 就先生事 庶有進行之方
針 而自院主僻以下七賢子孫中
孤雲靈川子孫 不必委託 宋訥菴
家 則其門內有力權利人 何負於
責任 兩金氏丁鄭家 亦如右委
託 受諾 郡警兩廳事 鄙弟
與儒林 擔當責任爲意 則事雖
難矣 似爲圖謀 而大抵千秋血
食賜額院配享事 豈可容易
耶哉 非人揚解事者 不能者矣 至
於武城院配享通章 則自貴邊
善文之人許 全?碍眼文字 只以
道德文章辭意善述抄件惠送 如
何如何 且承諾二百円金 覽此書卽
時速惠 如何如何 秋享費未堪中 因
於院畓改築費 悉用計耳 諒
哉 如何如何 貴隣鄭玩杓兄許 我二
十円剞劂費速送之意勸言 亦爲大
望 那兄言內 與仁兄協議付送云
矣 然則受賜大矣 餘立俟不備上
甲申正月九日 弟功服金成基拜拜
【피봉】
〈前面〉
光州府大正町一三一
▣…▣軫永兄殿
〈後面〉
井邑郡七寶面二
里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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