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11월에 이용수(李龍洙)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육봉(六峰) 이종택(李種宅 1865~1942)의 문집 간행과 관련하여 보낸 간찰이다. 이종택은 본관은 함풍(咸豐), 자(字)는 형중(亨重), 호가 육봉(六峰)이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고, 만년에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에 온천정사(溫泉精舍)를 짓고 그곳에서 강학활동을 한 인물이다. 이용수는 육봉의 조카로서 선생 사망 후에 유집을 발간하고자 남산리 소남재(小南齋) 안에 정초소(正草所)를 두고 일을 진행하였다. 육봉 선생과 주고받은 문인 및 지인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고(本稿)를 가지고 와서 대조 확인을 함으로써 훗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수고롭더라도 이러한 뜻을 인근의 여러 문인들에게 알려주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초(正草)가 완전히 끝나면 관청의 허가를 받고 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더불어 금년 봄 문생(門生)들이 계회(契會)를 했을 때에 선임한 임원 명단도 후록하였는데, 감동(監董), 총무(總務), 상무(常務), 간사(幹事), 장재(掌財)로 총 19인이다. 육봉 선생이 1942년 향년 78세로 2월 29일에 졸하였고, 동년 11월에 바로 문집 간행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1944년에 발간된 《육봉유집(六峰遺集)》이 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