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5월 20일, 박병해(朴炳海)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흘러 상일(祥日)에 이른 상황을 전하고 이때 위문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전했다. 여기에서 언급한 상은 소상(小祥, 돌아간 지 만 1년 기일) 혹은 대상(大祥, 돌아간지 만 2년 기일)으로 보인다.
발신자 박병해의 거주지는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源泉里)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충신 증승지, 증호조참판 박지수(朴枝樹)와 효자 주부(主簿) 박천주(朴天柱)가 11대조와 12대조이다. 7대조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박필운(朴必運)이요, 통정대부(通政大夫) 박준각(朴準珏)의 손자이다. 1918년에 그의 생전 거주지인 원천리 1구에 세워진 '사인박병해행의송덕비(士人朴炳海行義頌德碑)'에 의하면 그는 훌륭한 명문의 후손으로 남에게 은혜 베풀기를 좋아했고, 1916년에 많은 돈을 내놓아 마을을 돕고, 1918년에도 돈을 내놓아 100호를 도왔기에 마일이 모두 칭찬하여 인인(仁人)이라 칭찬했다고 했다. 송덕비는 남평(南平) 문제보(文濟普)가 글을 짓고 광산(光山) 이철호(李喆鎬)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