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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1
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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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7월 29일, 족말(族末) 노병래(盧秉來)가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편지이다.상대 아버지의 죽음에 애통함과 작년 가을에 직접 뵈 온 뒤 편지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한스러움을 토로했다. 상대의 효심은 알지만 예제(禮制)를 잘 따라서 몸 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위문하고, 자신은 지난 2월 초부터 같은 군(郡) 내 교정면(交井面) 신씨(愼氏) 집에서 살면서 6~7명의 관동(冠童)들과 보내고 있다는 것, 본 집과의 왕래는 수개월에 한 번 정도라는 것, 그래서 자신이 예절을 못 차리게 되었다며 미안해했다. 또 길어 멀어 즉시 달려가서 곡하지 못하고 이렇게 위장(慰狀)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장지는 어디로 정했는지, 상대의 아이들은 아버지 모시고 공부 잘하고 있는지 등을 묻고 편지를 마쳤다.
- 원문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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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피봉_앞면)
全南 光山郡 芝山面 日谷里
盧 軫永 殿
(피봉_뒷면)
黃海 甕津郡 西面內 錢山里
貞峴洞
盧秉來 疏上
敬.
(중봉_앞면)
疏上
盧 碩士 大孝 苫前
盧秉來 謹封
(簡紙)
頓首再拜. 禮書之外, 復有何言.
患候雖云沈重, 意謂以若淸粹之氣節, 溫潤之德行, 百
歲康寧, 以待此生之一晋門屛, 復承
德音矣. 遽至於此, 今焉已矣. 何痛如之, 何恨如之. 秉來
自前秋拜辭之後, 常欲上書者久, 而於焉未遂于今. 雖
有莫及之嘆, 奈何. 伏惟
尊哀孝心純至, 哀慕諭節, 想必毁瘠矣. 伏願俯從禮
制, 勿犯古人傷孝之戒, 如何. 秉來 自二月初客居於同郡交
井面愼氏家, 與六七冠童, 以爲消遣法也. 而本第去來, 則
數月一番, 故前者 貴從前上禮書式, 不免怱遽失節,
惶恐惶恐. 今又以道途之遠, 不卽奔哭, 只以一紙替唁, 是豈百
世宗誼深知之道乎. 忉恒不已. 想應誠敬之所占得何處, 牛
眠之地否. 德門百靈所助自副, 古人所云吉人逢吉矣. 來惟
以此仰祝而已. 令允諸玉無瑕善侍善課否. 此總是急於
情私哀遑中, 敢此仰煩 恕諒焉. 封中誄詞一首, 以文短意
拙不能道 先德之萬一, 伏悚伏悚耳. 餘姑此, 不備疏上.
庚辰七月二十九日, 族末 秉來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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