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열람
  •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1935년 임이택(林二澤) 서간(書簡)

1935년 임이택(林二澤) 서간(書簡)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임이택(林二澤) / 수취자 : 노진영(盧軫永)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4.9 X 33.6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정의

1935년 5월 23일에 시생 임이택이 노진영에게 경성 유학생활의 안부와 포부를 전한 국한문 혼용 서간.

해제
1935년 5월 23일, 시생(侍生) 임이택(林二澤)이 존장(尊丈)이신 노진영(盧軫永)에게 경성 유학생활의 안부와 포부를 전한 국한문 혼용 서간이다.
남쪽에서 훈풍이 부는 이때 농촌은 이앙으로 분주할 것인데 가뭄이 심하여 걱정이 많으실 것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즈음 상대와 집안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객지에서 먹고 지냄이 여전하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드릴 말씀은 상경을 하면서 의당 찾아가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편지도 드리지 못하고 2개월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편지 한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객지를 떠나 지내니 부모의 은혜가 바다와 산과 같음을 알겠다며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은 고시에서 말한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 관학(關學)을 함에 성공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돌아가지 않고, 뼈도 묻지 않는다. 인간세상 도처에는 청산(靑山)이 있다.'라고 한 대로 자신이 성공을 하지 않는다면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맹세 했다며 자신의 빈약한 집안 형편은 당신이 잘 살펴서 부조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발신자 임이택이 당시 거주했던 곳은 경성부 계동(桂洞) 15-11을 주소로 하는 극동연예공론사(極東硏藝公論社)였다. 그곳에서 발행한 세로줄 규격편지지 2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원문텍스트
[미상]
(피봉_앞면)
全南 光州郡 芝山面 日谷里
…▣軫永氏宅 入納
(피봉_뒷면)
京城府 桂洞一五ノ一. 一
極東硏藝公論社
林二澤 上書
昭和拾年六月貳拾參日

(簡紙)
(1)
薰風南來에 至於一草一木이 方流
陰濃하니 正是伸夏之節이오이다.
此時農村은 移秧에 奔走할 것인대 旱
魃에 甚하니 農軍의 煩腦가 不能無耳.
玆際에
侍體候 一向萬康하압시며 閤內諸節이
均安하압시잇가. 伏慕區區不任下誠之
至로소이다. 侍生은 客裡眠食이 如一하니
是爲伏幸伏幸이로소이다.
就伏白 上京之時에 宜當進拜謁이어늘
時間의 餘有가 無하와 不如意하와 一片之
紙札이라도 失禮之事올 記告코저 하얏드니
其도 亦遲滯하와 勿趨二箇月한 至於今애
僅僅問候하오니 罪悚不已오이다. 然而
客裡애 拘於諸事하야 抽身無暇하니
無所逃罪나 不避之事로소이다.
父母膝下에서 不羨之事하야 無意識
으로 一日一日을 浪遊消日이러니 自
離膝下로 當則困難하니 父母之恩
이 如山如海함을 今覺不已애 欲報罔極

(2)
이로소이다. 男兒當當하 如此之境遇을 當
하야야만 眞人間이 됨을 今悟에 人間味가
此處에서 發하나이다.
古詩에 「男兒立志出鄕關學, 若不成, 死不還.
埋骨, 豈唯墳墓地. 人間到處有靑山.」이
라하니 男兒處世上에 碌碌히 塵土에 뭇처 썩
어지고 말이요 分骨碎身하야도 不成功이면
不下鄕키로 盟山誓海하앗스니 若不成功
이면 何面目으로 故鄕의 山川을 對하며 父母와
友人을 對하리요.
貧弱한 侍生의 家形便을 잘 視察하와 扶助함
에 益益甚타하오니 不然이라 善知할바이오니
家事는 尊丈主게심을 밋고 侍生의 所關事만 熱
中이 하리오니 何日何時에 頭戴月桂冠하고 錦
衣還鄕하야 諸尊丈과 友人을 對하리요.
茫茫하오니다.
餘萬은 益益康健하심을 伏祝하옵고 不備
上白하압나니다.
昭和十年五月二十三日, 侍生 林二澤 頓首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