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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천일관(千鎰貫) / 수취자 : 영의정(領議政)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104.5 X 62.5 / 서명 : 領議政 <着名> / 인장 : □…□ 3顆(적색, 정방형, 9)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민종기
· 연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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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 정의

    1891년 10월에 곡성현에 사는 유생 천일관·천일권·천일표 등이 영의정에게 전라도 곡성현에 관문을 보내 전교에 따라 잡역을 면제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

    해제
    1891년(고종 28) 10월에 곡성현(谷城縣)에 사는 유생(儒生) 천일관·천일권(千鎰權)·천일표(千鎰杓) 등이 영의정(領議政)에게 전라도 곡성현에 관문(關文)을 보내 전교(傳敎)에 따라 잡역(雜役)을 면제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명장(名將)으로 임진왜란 때 많은 전공을 세우고 조선에 귀화하여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진 천만리(千萬里, 1543~?)의 후손이다. 화산군의 후손은 종손(宗孫)·지손(支孫)·천얼(賤孽)을 막론하고 잡역을 면제하라는 전교와 완문(完文)을 내려 폐단 없이 잘 지켜지고 있었으나 근래 잡역과 여러 징구토색(徵求討索)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전교와 완문 및 앞뒤 문적(文蹟)을 점련하여 곡성 현감에게 청원하였다. 곡성 현감은 수교(受敎)와 완문이 명백하므로 정소(呈訴)에 따라 잡역을 면제해주고 침탈하지 말 것을 처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처분에 불과하므로 영의정에게 전라도 곡성현에 관문을 보내 전교의 뜻을 받들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영의정은 10월 16일에 전라감영(全羅監營)과 곡성 현감에게 '완문에 따라 잡역을 면제해주어서 원통함을 호소하게 하지 말도록 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당시 영의정은 문충(文忠) 심순택(沈舜澤, 1824~1906)이다.
    문서 배면에 적힌 '경술(庚戌) 십일월(十一月) 십삼일(十三日) 진시(辰時)'는 후대에 문서의 훼손된 부분에 종이를 덧대어 손질하면서 기록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만리의 본관은 중국 영양(穎陽), 자는 원지(遠之), 호는 사암(思庵)으로 명나라에서 귀화하였다. 1571년(선조 4) 무과에 급제한 뒤 1575년에 총절사(總節使)가 되어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원병(援兵)으로 조병영량사(調兵領糧使)가 되어 아들 천상(千祥)과 함께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조선에 왔다. 평양 전투와 곽산·동래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울산에서 전공을 세웠다. 왜란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서 살았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생각하여 화산군에 봉하고 전(田) 30결(結)을 급복(給復) 하였으며, 그의 아들 천상도 한성윤에 승진시켰다. 저서로 『사암천문집』이 있으며, 고성 호암사(虎巖祠)와 청도 황강사(皇岡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원문텍스트
    [미상]
    全羅道谷城儒生千鎰貫鎰權鎰杓等謹齋沐百拜上書于
    領議政大監閤下伏以生之先祖▣(花)山君諱萬里卽 皇明萬曆時名將也頃當壬辰日寇跳梁八域靑邱幾▣…▣浪羯塵而我先祖花山君奮義赴戰戰則必捷
    國家中興之勳亦一其力矣惟我 ▣▣(列聖)朝惜其忠義彰其功烈 特封花山君是如無論宗支賤孽勿▣▣(侵雜)役事 傳敎完文如彼▣…▣姓者所居
    列邑果無侵責之弊矣挽近人▣…▣雜役凢他徵索無日不甚去益罔涯夫如是則 列聖朝 傳敎之意果安在㦲不勝▣▣▣傳敎完文與前後文
    蹟帖連仰籲于 本官城主則 題▣受 敎與完文昭然依訴頉給俾無侵漁向事敎是是乎乃此乃一時之許題也切非百年之昭蹟也故▣(千)里褁足玆敢帖達于
    神明理燮首揆之閤下伏乞 特下嚴關于本道本邑一以奉 傳敎之優旨二以奠勳裔之殘居千萬伏祝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領議政大監閤下 處分
    辛卯十月 日

    〈題辭〉
    依完文頉給毋使
    呼寃宜當向事
    十六日
    本道監營
    本官
    [官印]
    堂上[署押]

    〈背面〉
    庚戌十一月十三日辰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