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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유명보(柳命輔) 등 상서(上書)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유명보(柳命輔) / 수취자 : 순상합하(巡相閤下)
· 작성시기 辛未 (1931)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96.5 X 114.0
· 소장처 현소장처 : 신영남 후손가 / 원소장처 : 고창 평산신씨 신영남 후손가
· 참고문헌
  • 정의

    1931년 2월에 나주(羅州) 유학자 유명보(柳命輔) 외 47명이 순상합하에게 고창지역의 사인 신종팔의 효행을 알리기 위해 보낸 상서

    해제
    나주(羅州)‧장성(長城)‧무장(茂長)‧고창(高敞)‧고부(古阜)‧흥덕(興德)‧부안(扶安)의 유학자 유명보(柳命輔) 등 총 48명이 신종팔이 효행으로 포상을 받지 못한 것을 순상합하(巡相閤下)에게 글을 올려 알리는 것이다. 높은 행실과 탁월한 공적을 쌓은 자 고창지역의 사인 신종팔(申宗八, 1818~1895)의 효행이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에 드러내길 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신종팔은 3세에 아버지를 잃고 계모의 손에 길러졌다. 어린 나이지만 거상(居喪)의 예절이 장성한 사람과 같이 노련했다. 이웃 마을의 사람들이 하늘이 낸 효자라고 감동했다. 신종팔이 장성해서는 계모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여, 입에 맞고 즐기시는 음식을 끊임없이 공급하는데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상시에 잡다한 일을 시켜도 계모의 말을 어기지 않았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피눈물을 흘리며 삼 년 동안 예절에 의하여 따라 행동했다. 신종팔의 행실이 이웃 마을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순상합하(巡相閤下)도 보았듯이 마을에서도 크게 원하는 것임을 알고 계시니, 처분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글이다.
    원문텍스트
    [미상]
    羅州幼學柳命輔等 謹再拜上書于
    巡相閤下蘭生谷裏香播萬口松鳴磵邊風傳十里物亦然矣 而況人之有高行異蹟者乎 今此高敞士人
    申宗八之孝行實蹟 如夜中之燭 則其爲美也 豈特如谷蘭與磵松而已 □夫孝也者 人子之所當爲
    而然而表而顯之者 乃惜其人 人之未能盡爲 而勸而效之也 三代之賓興 漢唐之貢擧 皆先於孝
    行 則伏願
    閤下 以此垂察焉 士人申宗八 故家世族 系出平山壯節公崇謙 思簡公浩後也 八代祖侃 七代祖應 貞俱以孝行爲參奉 六代祖弘漑以主簿 當丁酉倭變戰亡南原 名載鐵券 其考命周與兄命相
    事親極孝 友愛惇篤 鄕閭之所共稱也 今此申宗八誠孝原於其先世 而家訓至今不朁者 豈非
    所自來乎 斯人也三歲而失恃 率育於繼母 十歲而孤 雖在幼穉之年 而能執居喪之禮 晨昏
    哭泣之節 無異於先成之人 則鄕隣之人 孰不曰 天生之孝乎 及其成童 奉養繼母 極其甘毳 雖 祈寒盛暑 夙夜溫淸之道 一不少懈 平日所做之事 不違母氏之性 累憂母病 誠能格天 得效
    於難救者數矣 而年高棄世 則泣血三載 動遵禮節 猗歟休哉 在古則補王祥在今 則補申
    生古人之孝 多出於義母之下 則今此申宗八之孝 豈讓於古人乎 至於惇於族 和於隣接於人
    皆以敬與信 而少無怠慢 則此亦孝之所由而然也 又當再昨大歉之年 家無優積 而少有嬴
    餘 則以濟塡壑之命 洞開蝸室 而故舊與流焉 饘粥隨有則能盡六行六德之道者 於
    申宗八見之矣 生等旣在章甫之列 如此特異之行義 不可舍黙 故玆以齊聲仰籲於
    觀風察俗之下 伏願
    巡相閤下 考其實蹟兼廉於坊曲 以爲 啓達 而無至泯沒 祈恳屛營之至
    閤下處分
    辛未二月 日 羅州幼學 柳命輔 金宗極 洪樂龍 金龍光 沈之允 高尙說
    長城幼學 金明休 奇一相 金必斗 金 鋹 邊相文 朴以惇
    康以道 姜在碩 李東臣 吳仲達
    茂長幼學 金邦璟 金命來 曺命新 柳相澤 朴壽邦 林宇八
    趙慶來 安萬祿 朴廷賢
    高敞幼學 姜 潗 洪禹導 崔允孝 崔擎大 鄭亨文 金章佑
    興德 高得賢 柳光賢 金義集 蔡膺河 金 坊
    古阜 高喆彦 崔善性 金樂東 朴光晦 宋持坦 羅世孝 黃彦垕
    扶安幼學 柳光憲 金斗七 崔鎭廈 金孝彦 金正相 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