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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기노선(奇老善) 부호군정공묘갈명(副護軍鄭公墓碣銘)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시문류-묘문
· 내용분류 개인-전기-묘문
· 작성주체 발급자 : 기노선(奇老善)
· 작성시기 辛未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4.6 X 136.0
· 소장처 현소장처 : 정시해 후손가 / 원소장처 : 고창 일광기념관 정시해 후손가
· 참고문헌
  • 정의

    1931년 기노선이 찬한 부호군 정염 묘갈명

    해제
    부호군 정공(鄭公)은 이름은 염(恹), 자는 우확(于廓)이다. 척려(脊膂)의 힘이 뛰어났으며, 지력을 갖추고, 항상 강개하였으며, 큰 뜻으로 문(文)을 버리고 무과 출신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공은 더욱 힘써 마침내 백형과 하며 떨쳐일어나 병사와 무기를 정리하여 자신이 먼저 수많은 적을 대적하였다. 적을 추적하여 무령에 이르러 성을 지키는데 같이 한 자가 침랑 이굉중(寢郞李宏中), 생원 이응종(生員李應鐘) 등 몇이었다. 그 일이 무령과 송사읍의 두 읍지(邑誌)에 실려 있어 근거가 될 수 있다. 향년 75세로 졸하니 효종 임진년이다. 기원(綺源)과 휴창(休暢) 두 문인(文人)이 그들의 선조 호군 공의 행장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 '우리 선조를 장사지낸 지 지금 300여 년인데 아직 한 조각 비석도 없어 필부의 무덤과 다를 것이 없다. 후손들이 비석을 마련하려고 하는데 그 주검을 식별할 것이 없다.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우리 친족 휴석(休碩)이다. 문중 어른들이 우리 두 사람을 시켜 그대에게 글을 청하게 했다.'라고 하니, 나는 선대부터 좋은 관계라 사양하지 못하고 쓴다.
    원문텍스트
    [미상]
    副護軍鄭公墓碣銘
    天將大難 必先生戡難之才 以了一時事
    是以粤在壬丁年間 忠勇輩出 敵愾捍
    艱 期欲掃淸氛祲 而竟不售志 以着奮
    義 諸公丹書鐵券 顧分儻來 而賞不
    稱功乖三百年 鬱而未伸 護軍鄭公其
    一也 公諱恹 字于廓 晉陽氏 以高麗侍中
    藝爲始祖 世稱柏谷先生 中世有諱需
    大學士菁川君 諡文英 諱乙輔 三重大匡都
    僉議上護軍 諡文良 諱璜 尙書僕射 諡
    忠莊 直黜武靈 是爲南下之祖 生諱咸道
    始仕 國朝三子同朝 四所有亭 傳至諱繼
    童 世宗朝 官贊成 高祖宰舜 水軍節制 曾
    祖億錄 中廟原從勳 祖崙石 察訪 考克
    一副護軍 妣礪山宋氏 咸陽吳氏 幷有婦德
    公生 萬曆戊寅 吳氏自出上庠世英 其外大
    父也 公膂力絶倫 且負智略 常慷慨 多大
    志舍文而武出身通籍 豈先見島釁一心
    報圖 非素蓄積耶 方國家艱虞 宗社
    幾墟 所需用 惟忠臣義士 而所試於公者 不過
    副護軍而止足 今志士解軆 而公則彌厲
    遂與伯兄恬 奮然起義 繕卒乘資 械餉
    部署畧定 身先驅勉以賈膂勇 非有
    萬敵之勇 眼空賊陣者 卒不得一當突 以
    手劒八險 如平地追賊 至武靈以守其城
    所與偕者 寢郞李宏中 生員李應鐘
    數輩 而事載武靈松沙兩邑誌中 可據
    也 享年七十五 卒於 孝宗壬辰四月二十六日
    葬在靈光馬村面 君洞西麓 巳坐原 淑夫
    人廣州李岡壽女 靜淑有女士行 公後五年 忽合雙
    窆 男期孝通德郞 其悌節制使 期信 女
    適金南冑 李時奉 長房孫冕周儀周
    皆以孝聞 賓周 女適 羅佶 李之詢 吳大
    休 二房孫 式周秀周翊周 三房孫 弘周德
    周仁周 師事 尤齋宋先生 明經行義 亟
    被師獎 女適金振熙 安埧 姜達周 曾玄
    以下益蕃衍 不能盡述 日綺源休暢兩文人
    以其先祖護軍公之狀 來余曰 吾先祖之葬
    今十餘世 尙闕一片石 與匹庶塚無異 後
    孫是悼 方謀伐石 不以識之尸 其事者吾族 生
    休碩其人 門父老使吾兩人 請文於吾子 子其
    闡之 不佞於丈人家 有先人之好 不敢以不
    文辭 銘曰
    見今滄攘 九原若作 以公所抱 庶
    伸討復 今也則無 保障無策 終
    天不死 如公毅魄 宜佑大東 永奠
    邦籙
    辛未 竹翠川 下澣
    德陽 奇老善 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