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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자 : 안익(安榏) / 수취자 : 김석사(金碩士)
· 작성시기 己巳八月二十二日 1869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4.4 X 44.7
· 소장처 현소장처 :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 원소장처 :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정의

1869년 8월 22일에 안익이 김석사에게 보낸 편지.

해제
1869년 8월 22일에 안익(安榏)부안(扶安)에 사는 김석사(金碩士)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피봉(皮封)에 '대효애(大孝哀)'라고 적은 것은 당시 김석사가 부친상(父親喪)을 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고 있었던 안익은 마땅히 상가로 달려가 문상을 하여야 하지만, 자식 둘을 잃은 처지여서 위로조차 드리지 못해 한스럽다고 하였다. 대신 상주(喪主)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평안하시길 빌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드님에게 따로 보낸 편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었다고 하였다. 같은 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안익이 이달 초에 천연두(天然痘)로 여섯 살 난 딸과 두 살 난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천연두는 홍역(紅疫)과 함께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대표적인 역병(疫病)이었다. 조선시대에 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의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뭏든 이로 미루어 보면 안익은 연장자인 김석사의 아들과 깊은 교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서간에는 작성연대가 기사로만 되어 있지만, 안익이 작성한 다른 편지에 이재원(李載元, 1831-1891) 대감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69년으로 추정하였다.
원문텍스트
[미상]
省禮千萬夢想外
尊先大人喪事夫復何言伏惟此時
仰尊體事萬支伏溯區區不任記下京鄕
路左末由趨慰此果相孚之誼耶仰嘆仰嘆
且身數不幸今月五日之內卽見兩慽豈
有如許厄運如許貌樣耶只自無言多小
事詳在於 允友書中耳心甚擾
不能施長餘姑不備疏上
己巳八月二十二日 記下 安榏 疏上

(皮封)
金碩士大孝哀前
省禮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