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10월 28일에 대전역(大田驛) 앞 춘일정(春日町) 2정목(丁目) 이기세(李起世) 방에 사는 재종질 이당(李鐺)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장동리(長洞里)에 사는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글씨가 탈색되어 매우 흐린 편이다. 두 달 동안 소식이 막혔던 중에 갑자기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삼가 감사하고 위로되는 마음 그지없으며 고요한 중에 체후가 편안함을 알았다는 등의 안부를 전하고, 재종질 자신은 더욱 수고로운 가운데 주간(主幹)하는 일이 자본이 적은 이유로 공비(公費)를 제공하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지남철(指南鐵)을 조각하는 일과 지남철의 품질을 가려 시가(時價)에 따라 2건을 부탁하는 것이 어떻겠는지 묻고, 혼처는 연산(連山) 김용기(金容基) 집안으로 일가의 반벌(班閥)이고 황강(黃岡) 이하 칠현을 배운 소몽조(所蒙祖)이며 규수는 나이 18세로 매우 아름답고 그 집안은 옛날 풍속을 지키는데 다만 소빈(素貧)하다고 하면서, 만약 300원을 보조하면 혹 잘 소개하겠다고 하였다. 종약(腫藥)을 걸러서 보낸다는 내용도 있다. 피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