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우리 경공(京公)의 제향이 흩어지고 족보도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근래 각 파의 족보는 가승(家乘)의 규모에 불과하여 각 파가 같지 않고 조각나서 계통이 없기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근자에 경성에서 본파를 일체 합한 족보의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는 우리 가문의 효제와 친목상에 당연한 도리이나, 우리 족속은 저 대동보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두 통의 통지한 말과 같아 각 군의 모든 족속 내에서 향응하고자 하였다. 서울의 여러 곳에서는 각 단자가 다 이르렀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단자를 정비하고 8월 기신제에 참여하였다. 바라건대, 귀 파의 모든 어르신은 같은 파이고 더욱 친하니 같은 목소리로 서로 응하여 종사가 완결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발신인은 이종원 외에 규순(奎淳), 묵재공(黙齋公) 사손(嗣孫) 성순(聖淳), 건순(健淳), 상기(相璣), 상룡(相龍) 등이다. 별지가 있는데, 주변 각처에 이 뜻을 다 알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