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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癸巳年) 백기현(白基鉉) 소지(所志)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작성주체 발급자 : 백기현(白基鉉) / 수취자 : 영암군수
· 작성시기 癸巳
· 작성지역 전남 영암군
· 형태사항 크기 : 54.6 X 33.8 / 서명 : [署押] 1개, [官印] 3개 / 인장 : 6.5*6.5(정방형) 적색 3개
· 소장처 현소장처 :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 원소장처 :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정의

계사년(癸巳年)영암군(靈巖郡)에 사는 백기현(白基鉉)수령에게 올린 소지(所志)

해제
계사년(癸巳年)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신풍동(新豊洞)에 사는 화민(化民) 백기현(白基鉉)수령에게 올린 산송(山訟) 소지(所志)이다. 백기현곤일시면 화암산(華岩山)에 고조와 증조묘를 모신 선산이 있어서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를 두고 관리해 왔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지고 자손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결국에는 산지기만 두고 5, 6대에 걸쳐 선산을 관리하여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화암에 사는 임가(林哥)란 자가 나서서 이곳을 자신의 선산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곳에 토단(土壇)을 만들고 경계를 정하고는 백기현의 선산을 빼앗았다.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그 임가는 다름아니라 증조때부터 자신들의 선산을 관리해 왔던 산지기였다. 그 산지기가 백씨 가문이 영락한 틈을 노려 선산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이에 백기현영암군수에게 소를 올려 저 임가를 잡아다가 법정에 세워 선산을 탈취한 죄를 엄히 다스려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수령백기현이 소지에서 주장한 것처럼 산지기가 선산을 탈취하였음이 분명하다는 제사를 내렸다. 백기현이 살았던 신풍동은 현재의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원문텍스트
[미상]
昆二始面新豊洞化民白基鉉
右謹言寃枉事民之高祖塚與曾祖墓在於昆一始華岩山而累代定山直守謢是白加尼門運衰薄
子孫零替散在東西只留山直禁養松楸于今五六代而不意今者花岩林哥稱以渠之先山是
如築其土壇定限界終奪民之先山世豈有無法之汗乎此林阡曾祖時守謢民之山直也以三四代山
直蔑視民之孑孑偸葬渠之父於民之先山跛崎渾奪五六代先山故緣由仰訴爲去乎洞燭敎是後右汗
捉致 法庭嚴治勒奪殘民先山之罪以雪幽明之寃千萬伏祝
行下向敎是事
城主 處分
[署押]
癸巳▣▣▣
[印][印][印]
(題辭)
該民如訴
五六代只
値山直見奪宜
當向事
卄九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