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월 29일에 이경백(李京伯)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밭을 담보로 하여 금전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표(手標)이다. 이경백은 자식의 혼인 문제로 긴급하게 돈을 쓸 일이 있어서 돈지리(頓池里) 전평(前坪)에 있는 보리밭(麥田) 6마지기와 하곡(夏穀)을 담보로 하여 아무개에게 50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매달 이자(利子)로 6푼(分)을 주고, 빚은 오는 4월 그믐 안에 갚을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기한이 지나도 빚을 갚지 않으면 이 문서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