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9월 초3일에 염석수(廉錫洙)가 부안군(扶安郡) 연동평(蓮洞坪)에 있는 만자저전(滿字苧田) 3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부수(負數)로는 4부가 되는 이 모시밭을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270냥에 팔았다. 거래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매입자에게 모두 건네 주었다. 만일 차후에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는 서준경(徐俊敬)이 방매자 염석수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모시밭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모시밭은 앞서 1862년에 조육손(趙六孫)이 방매하였으며, 1898년에는 조백운(趙白雲)이 방매한 것으로 나온다. 거래가격은 1862년 50냥에서 1898년 220냥으로 올랐으며, 1904년에 와서 다시 270냥으로 크게 올랐다. 이렇게 보면, "1862년 조육손(趙六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와 "1898년 조백운(趙白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은 1904년에 작성된 이 문서의 구문기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시밭의 마지막 거래로 추정되는 1904년의 매입자는 이 문서의 소장처인 부안 선은동의 전주이씨가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