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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8년 이시용(李時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8년 이시용(李時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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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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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분류 |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 · 내용분류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 · 작성주체 |
발급자 : 이시용(幼學李時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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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기 |
咸豐八年戊午二月二十日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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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지역 |
전북 부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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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태사항 |
크기 : 38.0 X 39.4 / 서명 : [着名]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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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장처 |
현소장처 :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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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장처 :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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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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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철종 9) 2월 20일에 유학(幼學) 이시용(李時容)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내평(長水內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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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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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철종 9) 2월 20일에 유학(幼學) 이시용(李時容)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내평(長水內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 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장수내평의 궐자답(闕字畓) 3두락지로, 부수로는 11부 7속이 되는 곳인데, 이 중 3복이 진탈(陳頉)로 빠져 실제로는 8부 7속이며, 매매가격은 50냥이었다. 진탈은 경작하지 않고 묵혀둔 곳으로 조세 대상에서 제외된 곳을 가리킨다. 이시용은 구문기가 다른 전답의 문서에 함께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유학(幼學) 이시백(李始白)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장수평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서는 "1878년 강치언(姜致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887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이기도 하다. 즉 1878년이 강치언이 같은 논을 팔 때, 그리고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같은 논을 팔 때 매입자에게 건네준 구문기였다. 진탈로 3복이 빠진 것도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논이 1858년에는 50냥이었지만, 1878년에는 25냥으로, 그리고 1887년에는 30냥으로 거래가격이 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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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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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八年戊午二月二十日 前明文
右明文事傳來耕食是如可要用
所致伏在上東長水內坪闕字畓三
斗落卜數十一負七束內三負陳
頉實八卜七束庫乙價折錢五十兩
依數捧上爲遣本文記他田畓幷
付故未得出給新文一張右人前
永永放賣日後如有異說持此文
相考事
畓主幼學李時容[着名]
證筆幼學李始白[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