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순조 6) 12월 28일에 상전(上典) 최모(崔某)가 노(奴) 오장(五壯)에게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도록 전권을 위임하면서 작성한 패지(牌旨)이다. 상전 최모(崔某)는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부북에 있는 명자답(命字畓) 15마지기의 매입을 원하는 사람에게 시가(時價)대로 방매하고 이 패지에 따라 매매문서를 작성해 주라고 지시하였다. 패지는 배지(背旨)라고도 하였는데, 오늘날의 위임장과 같은 성격의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금전이 수반되는 거래 행위를 기피하여 자신의 노비에게 금전의 수수(授受)나 물건의 매매 등을 위임하였다. 이때 작성된 문서가 패지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