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헌종 2) 9월 11일 심덕원(尋德元)이 김사제(金思濟)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심덕원은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부득이하게 김사제에게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제방 안쪽의 칭자답(称字畓) 1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 가격은 마침 해당 부분이 붓으로 수정을 하여 판독이 어렵게 되었다. 몇 냥인지는 알 수 없고 나머지는 5전(錢)이 분명하게 적혀 있다. 매도인(賣渡人) 심덕원은 구문기(舊文記)를 잃어버려 신문기(新文記)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 김사제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심덕원과 증필(證筆)은 유학 하문칙(河文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매수인(買受人) 김사제는 당시 상중(喪中)이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