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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남원(南原) 견소곡(見所谷) 유학(幼學) 이광식(李光植) 등 통문(通文) 초(抄)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 작성주체 발급자 : 이광식 신광두 이진곤 등 5인
· 작성시기 壬午三月初六日 (1822)
· 작성지역 전북 남원시
· 형태사항 크기 : 73.3 X 42.4
· 소장처 현소장처 :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 원소장처 :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정의

1822년(순조 22) 3월 초6일에 남원(南原) 견소곡(見所谷)에 사는 유학(幼學) 이광식(李光植) 등 5인이 기지방(機池坊)의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의 초(抄)

해제
1822년(순조 22) 3월 초6일에 남원(南原) 견소곡(見所谷)에 사는 유학(幼學) 이광식(李光植) 등 5인이 남원 기지방(機池坊)에 사는 박인필(朴仁弼)의 효행을 널리 알려 포양(褒揚)을 받을 수 있도록 공의(公議)를 모우자면서 기지방의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의 초안이다. 밀양박씨(密陽朴氏) 강수공(江叟公)의 9대손인 박인필은 나이 17세 때 부친이 고질병으로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잘라서 달여 드시게 하였더니 쾌차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어머니도 병이 깊어 구할 도리가 없게 되자, 박인필은 이번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처음처럼 회복하였다. 남원의 유생들은 이 모두가 하늘이 박인필의 효행에 감동한 것이 틀림없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발문(發文)하여 공의(公議)를 모아 효자 박인필이 포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하였다. 이광식과 함께 통문을 작성하는데 참여한 사람은 신광두(申光斗), 이진곤(李鎭坤), 이지위(李之韡), 박혁(朴革) 등이다. 견소곡은 오늘날 남원시 대강면에 해당하는 곳이며, 기지방남원시 금지면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남원의 밀양박씨 문중에는 박인필이 작성했던 시권(試券)이 3장 전하고 있다. 문과에 급제하지 못했고,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지만, 박인필이 효자일 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인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를 임오년으로만 적고 있는데, 박인필(朴仁弼)이 부친의 친산(親山)을 쓰기 위하여 1824년에 산지를 매입하였던 점("1824년 박인필(朴仁弼)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참조)을 고려하여 이를 1822년으로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