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년(庚申年) 8월 23일에 부안(扶安)의 유절재(留節齋)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경신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하서면(下西面) 석상리평(石上里坪)과 통정리평(通井里坪), 행안면(幸安面) 신기리(新基里) 후평(後坪) 등 세 곳에 있는 전답과 도조(賭租), 소작인(時作)이 기재되어 있다. 석상리평은 전답 7필지 30두락지로 5석 40두를 세로 거두었으며, 시작(時作)은 최경원(崔敬元), 최경선(崔敬先) 두 사람이다. 통정리평은 1필지 5두락은 1석 5두를 세로 거두었으며, 시작은 최성도(崔成道)이다. 행안면 신기리 후평은 1필지 7두락으로 1석 10두를 세로 거두었으며, 시작은 최응수(崔應守)이다.